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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May 26. 2024

마 코브라 생식기 먹어봤나

우기가 시작됐다. 동남아의 우기는 좁은 면적에 비가 한바탕 쏟아져 내리고는 금세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아기자기한 모양새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직접 맞이해보니 사뭇 달랐다. 온동네 하늘이 우중충했으며 크고 또렷한 번개가 수시로 하늘을 길게 갈랐다. 아직 무릎까지 차오르는 도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여전히 나는 우기를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익숙해졌다 생각했지만 따져보자면 나는 여전히 베트남을 몰랐다. 그러니까 코브라 생식기를 만나지. 물론 이곳은 과일 스무디 집이므로 내가 시킨 음료가 이 낯선 동물의 더더욱 낯선 신체 부위일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어쨌든 파파고는 그렇게 통역했다. 구글 번역기마저 과일 스무디 집에 어울리지 않는 답을 내놓아 나로서는 불안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태국 여행을 갔을 때 전통 음식만을 시키다가 며칠 뒤에 허벅지가 반쪽이 됐던 경험이 있다. 본의 아니게 금식 수행을 했던 이후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피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어쩔 수 없었다. 베트남어로 적힌 메뉴들은 애초에 모두 생소했으며, 그나마 발음할 줄 아는 멜론 스무디와 레몬차는 없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메뉴판에 코를 박고 괴로워하는 까막눈 외국인이 안쓰러웠는지 친구들이 망꺼우라는 것을 추천해 주었다. 별 수가 있나. 코브라 생식기라도 우선 시키고 봐야지 뭐.






알고 보니 망꺼우는 석가(슈가애플)라는 과일이었다. 작년에 베트남에서 유행했던 음료였다고 한다(한국으로 치면 얼그레이하이볼 같은). 유행에는 다 이유가 있다. 달달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지극히 내 취향이었다. 타의적 도전 덕에 맛난 음식을 알게 되었다.    


달콤한 코브라 생식기 스무디를 빨아먹으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만큼 깜짝 선물이 날아온다는 진리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상자 안에는 초콜릿이 아니라 바퀴벌레가 들어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 서프라이즈가 주는 짜릿함이 더 끌린다.    



생경함을 무릅쓰고 페이스북으로 연락한 덕에 지금의 현지 풋살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용기를 낸 끝에 호찌민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재미를 누렸다. 풋살 경기가 끝나고 위생이 의심스러운 노점상에 앉아 스무디를 마시며 흡족해한다. 임용고시를 칠 때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한 일들이 참 많이도 펼쳐졌다.




코브라 생식기 마시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관성이란 게 참 무서워서 요즘 들어 다시 익숙함만 쫓고 있었다. 도전이 안겨줄 멋진 기적들을 놓칠 수는 없지. 정신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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