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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Mar 23. 2024

망고라이팅을 멈춰주세요

망고. 이 두 글자에 설렜다면 삐빅, 당신은 아마도 정상입니다. 베트남에서 살게 됐다고 했을 때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이제 망고는 실컷 먹을 수 있겠네’였다. 싸고 단 생망고가 지척에 있는 망세권(망고+역세권의 줄임말). 모두가 부러워하는 일이었다.



길거리 과일상을 만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망고를 두고 흥정하곤 했다. 사기 없이 샀을 때 1kg에 4만 동, 한국 돈으로 한 개에 2000원쯤 하는 가격이었다. 노란 망고와 나무 식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사람들이 부러워서 난리였다. 뿌듯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작 나는 망고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망고를 싫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싫으니까 싫지, 같은 유치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두리안 향에 유난히 민감한 편인데 망고에서도 비슷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씹는 맛이 없는 식감과 물기가 적으면서 단 과육 역시 내 취향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망고를 사랑했다. 빙수집에 가면 망고 빙수를 시켰다. 동남아 최고의 기념품은 건망고였으며 망고젤리 열풍이 불었다. 왠지 망고를 좋아해야 할 것만 같았다. 다들 그러니까.



집에 전시품 비슷하게 있던 망고가 잘 숙성되어 노란빛을 선명하게 띌 무렵부터 문제가 생겼다. 집에만 들어오면 망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향이 강해 방향제가 따로 없었다. 이 자연이 내린 디퓨저는 유통기한을 넘기면 초파리 부화장으로 변모할 테다.



온갖 이국의 벌레들이 꼬일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망고를 집어들었다. 엉성하게 칼로 썬 망고를 집어들자 손목으로 과즙이 줄줄 흘렀다. 너무도 큰 크기에 개그콘서트 갈갈이에 빙의하여 앞니로 망고를 갉아 먹었다. 음, 냉동망고보다 맛있긴 하지만 역시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다.



끈적해진 팔뚝을 포함해 노란 국물이 흥건한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갈비를 뜯느라 무리했는지 입가가 쓰렸다. 좋아하지도 않는 과일을 먹으려고 이 고생을 하다니. 망고를 사 먹은 다섯 번째 날. 오늘도 별로였다.








운동 후에 먹는 맥주 한 잔이 싫다. 살찌는 맛의 밍밍한 탄산을 먹는 것은 괴롭다. 친구가 인생영화라며 극찬하던 영화 ‘ㅇ’은 너무도 잔잔해서 정신을 차리려고 계속 몸을 뒤척여야만 했다. 과하게 화려하다며 버리라고들 했지만 난 그 호랑이 티셔츠가 참 좋다.



나를 알아가는 일의 시작은 호불호 파악이 아닐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적으도 행복과 더 자주 포옹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망고를 그만 살 때가 왔다.


(망고 라이팅: 망고 +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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