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장래 May 06. 2024

사람이나 개나

당신 인생의 줌 인은 몇 배입니까

동남아시아의 개들이 으레 그러듯, 뱀뱀이 역시 느긋했다. 청량한 하늘을 뚫은 햇빛이 연초록 잎들을 훑고 나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종국에는 본인 털에 내리쬐는 데도 태평하다. 사람이 지나가든 차가 스쳐가든 그저 엎드린 채 등을 긁어주는 손길을 즐기고 있는 모습에 저런 삶의 태도는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현실의 나는 마사지 예약시간에 쫓겨 사라져야 했지만 말이다.


 





발리 마사지는 오일을 담뿍 바른 손바닥으로 온몸을 쓸어내리는 동작이 특징이었다. 아주머니의 푹신한 손이 적당한 압력으로 팔다리를 누르며 지나갔다. 피가 통하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지다가 문득 뱀뱀이가 떠올랐다. 만져주면 좋다고 꼬리를 흔드는 뱀뱀이나 마사지사의 손길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나 뭐가 그렇게 다를까.




많은 일들이 그랬다. 축구공 하나에 22명의 선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매달려 있고, 그걸 또 목이 빠져라 열광하고 있는 몇 만 명의 관중들이 있다. 우붓 원숭이 공원에서 본 고구마를 두고 다투던 원숭이들과 비슷한 모양새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늘리겠다고 아등바등 사는 일과 겨우내 도토리를 저축하는 다람쥐와 무엇이 크게 다를까. 외계인이 봤다면 거기서 거기 취급을 할 것 같았다.




인생 참 부질없다고, 예전의 나는 그렇게 결론 내리곤 했었다. 요새는 다르다. 세상 달관한 부처처럼 말해봤자 나는 인간이다. 오늘 먹은 나시고랭에 함박웃음을 짓고 비행기 탑승수속 줄이 길면 괴로워하는, 일희일비가 오지는 사람이다. 내 삶의 화소는 1배다. 성인군자처럼 0.5배로 달관하며 살아가지도, 좀생이처럼 5배로 돋보기를 당기고는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아니다.









호찌민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하늘 위로 올라가자 유람선과 건물들이 미니어처가 되어 한없이 귀여워졌다. 모든 것이 한 줌인 것을, 이 세상에 내 집 하나 없다며 우울해했던 날들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고, 지상에서 살아간다. 어쨌든 비행기는 착륙한다. 정겹게 나를 반겨줄 월세방에 포근해하며 너구리 한입에 감격해야지. 그게 딱 내 수준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이란 단어는 기억을 미화시키고 생각을 많게 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