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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세션>  연극으로 힐링했던 날

연극 <라스트 세션>을 보고

  

연극 <라스트 세션> 서울 종로구, 대학로 '티오엠' 1관 


   아침 글쓰기 주제가 '관심(關心)'이었다. 관심이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신경을 쓰거나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을 뜻한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무엇에든 관심도 많은 사람이다. 특히 직업이 책과 관련되니 매사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다.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 문어발도 부족할 것이다. 


  지난 휴일 아침, 일찌감치 중고나라에서 사놓았던 연극 티켓으로 남편을 유혹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거절하며 말했다.

  “처제랑 가. 지난주에 ‘마티스 전시회’ 같이 가줬잖아. 연극 별로야. 더구나 ‘프로이트와 루이스’ 둘만 나와서 주구장창 토론한다며….”     


  동생한테 얘기했더니 좋다고 했다. 역시 동생 희야는 나와 문화예술 생활을 같이 공유할 수 있어 좋다. 사랑스런 동생이다. 동생과는 수시로 책. 영화, 연극, 뮤지컬, 전시회, 여행 등을 함께하거나 이야기꽃을 피우니 대화가 마르지 않는다. 물론 취향이 조금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휴일 점심식사는 남편과 자주 가는 칼국수집에서 가리비칼국수를 포장해 시어머니 집에서 함께 먹으며 놀았다. 어머님이 맛있게 드셔서 우리 부부도 덕분에 더 맛있게 먹었던 점심이었다. 남편이 친절하게 전철역까지 태워다 줘 조금 편하게 역에 도착했다.

  “남편, 진짜 서울 혜화역까지 안 데려다 줄 거지? 흥! 그래도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하며 차문을 닫으니 남편이 어이없다며 웃었다.

그에게 손을 흔들고 전철을 타러 가는데 봄날처럼 날이 따스했다.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마치 그 길이 사뿐사뿐 청춘으로 돌아가는 마법의 길처럼 느껴지며 붕 뜨는 마음을 안고 간만에 서울행 전철을 탔다.


  모처럼 일찍 서둘러 나왔더니 너무 일찍 도착했었다. 카페에 들어갈까 고민하다 마로니에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동생과 만나기로 한 별다방 앞 인도에는 천막 노점상을 즐비했다. 몇 해 전까지 이 길에서 휴대폰 악세사리를 만들어 팔았던 고향 친구를 떠올렸다.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 그만두고 타로카드 천막집들을 구경했다. 타로카드 마스터 혼자 앉아있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무슨 마음에 그렇게 불쑥 용기가 났는지 모르지만 그런 내 행동에 나도 속으로 놀랐다.

  “안녕하세요? 타로점 보러 왔어요. 여기 앉으면 되나요?”     

  나는 둥근 테이블을 마주하여 앉아 있는 타로카드 마스터를 보며 플라스틱 빨간 의자에 앉았다.

  “네, 무엇을 보고 싶어서 왔나요? 고민이 있나요?”     

  솔직하게 말하려 목 언저리가 간질거렸다. 아마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뭔가에 불안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미소와 온몸으로 말하는 나는 두 손으로 흔들며 말했다.

  “아니요, 지인을 기다리는데 그냥 심심하고, 타로점이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요.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건데 궁금하고 떨리네요.”     

  마스터는 손놀림도 능수능란 여유롭게 카드를 스르륵 펼쳐 놓더니 3장만 고르게 했다. 고르고 나니 다시 다른 유형의 카드를 보여주고 또 3장을 고르게 했다. 나는 매우 심혈을 기울여 처음 가운데 끝으로 나눠서 심혈을 기울여 골랐다. 그러자 마스터는 태어난 년 도와 시간을 물었다. 뜨악해하고 물으니 명리학(命理學)을 공부해서 사주(四柱)도 본다고 했다. 가만 보니 타로카드 마스터가 연세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꽤 오래 이 일을 했다고 하니 급 신뢰감이 생기고, 마스터에게 관심이 갔다. 그녀는 내가 잘 모르는 한자들을 썼다. 그리고 손가락들을 엄지와 부딪쳐 가며 뭔가를 계산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 마스터의 모든 몸짓이 신기방기 했다.  

  

  드디어 내 카드를 펼쳐 놓고 이야기를 해줬다.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다.

“매우 좋다. 지금 하는 일이 뭐냐면서 매우 잘 선택한 일이다. 천직이다. 그래서 금전운도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스트레스가 많다. 단, 올해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것이 좋을 거 같다....”   

  나는 마스터의 말을 듣고 얘기 나누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해본 일이니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허락해줘서 사진도 찍고 나왔다. 



  1만 원으로 누군가에게 수퍼비전 심리상담을 받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갖고 있던 이런저런 고민이 스트레스로 나타났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의 어떤 마음이 천막을 걷고 들어가는 용기를 냈을까 싶기도 하며, 나를 더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추진하던 일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 자신감이 생기는 느낌도 들고 맑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단, 구설수를 조심하라고 해서 살짝 신경이 쓰였지만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타로카드는 명리학(命理學)과 닮았었다. 명리학은 사람이 태어난 년(年),월(月),일(日),시(時), 사주(四柱)에 근거해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타로는 타로카드로 내담자가 어느 시기에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까운 미래를 바라보고 나름의 해답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양한 관점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나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런 타로점을 보고 예민할 필요는 없다. 자신을 더 다지고, 가는 길을 세심하게 살피며 나아가는데 작은 재미로 접근해도 좋을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별다방에서 동생을 만났다. 아직 시간이 있어 우린 카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그간 근황 이야기를 하고, 시를 이야기하며 수다 시간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게 만났다고 아쉬워하며 공연장을 찾아 나섰다.


희야가 꽂혔다는 시 함께 낭송
티오엠 공연장 앞에서 희야, 이런 동생이 있어 고맙다


  <라스트 세션> 티오엠 1관 연극 공연장에서 공연 중이었다.  “라스트 세션(Last Session)”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연출은 오경택 연출가가 맡았다. 오경택 연출가의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와 <벚꽃 동산>을 봤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라스트 세션>은 2020년에 이어 다시 올려진 공연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은 신구 배우님, 그리고 요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매우 핫한 오영수 배우님이 더블 캐스팅됐다. 루이스 역으로는 배우 이상윤, 연극배우 전박찬이 더블 캐스팅됐다.   












신구 배우님과 전박찬 배우님이 오늘의 출연진


  나는 고민하지 않고 신구, 전박찬이 캐스팅된 날을 선택했었다. 공연장 오기 전 동생 희야는 오영수 배우님을 보고 싶다고 그 배우가 공연하는 날 가자고 했지만 ‘구관이 명관이다.’라고 일축했다. 신구 배우는 2020년 <라스트 세션> 초연 때부터 프로이트 역을 맡았으니 당연히 찰떡처럼 연기는 믿고 봐도 될 것이라 했다. 상대 역인 루이스 역을 맡은 배우 역시 이상윤 배우보다 연극무대에 오래 섰던 전박찬 배우가 더 좋다고 설득했다. 티켓을 내가 샀으니 보고 싶으면 오고 그렇지 않으면 지인과 보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자매가 같이 봐야 더 재미있게 보지 않겠냐며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역시 동생은 이렇게 문화생활에서 나와 맞는 부분이 많아 좋다.    

  

  연극을 보기 위해 객석에 앉고 보니 기억이 새로웠다. 시야 확보가 잘되는 공연장,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몇 해 전 두서너 번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에쿠스>, <그와 그녀의 목요일> 등 몇 편의 공연을 봤던 곳이다. 연극 전문 공연장답게 객석에서 무대를 잘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공연을 기다리며 객석을 둘러보니 코로나19 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만석이었다. 물론 여기에 나와 동생도 일조했다. 티켓을 들고 기념사진도 찍으며 공연 시간을 기다렸다.     

프로이트의 서재가 무대에 그대로 재연되어 있었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무대는 프로이트의 서재로 이뤄졌다. 이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가 상담도 했던 곳이고, 죽음도 이곳에서 맞이했기 때문이다. 시대적 배경은 1939년 9월 3일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날이다. 영국이 독일군에 최후통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도 독일과 전쟁을 선포한 날, 그날이 시간적 배경이 된다.      


  연극은 무신론자인 80대 정신분석가로 유명한 프로이트가 유신론자인 40대 영문과 교수이며 유명한 작가 C·S 루이스를 초대하고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프로이트가 루이스를 기다리는 장소는 그의 서재다. 무대는 정말 그럴듯하게 프로이트의 서재처럼 꾸며져 있다. 그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영국으로 망명할 때 가져왔던 골동품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 유명한 소파가 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의 서재가 그대로 재연되어 신기하고 놀라웠다. 상담할 때 내담자들이 좋아하며 편하게 대했던 강아지 ‘요피’는 루이스가 들어올 때 기다렸다는 듯 짓는 소리만 들리지 서재로 들어오는 신은 없다.     


프로그램 책자를 구입했는데 사진 출처임

  

작가 아맨드 니콜라이의 <루이스 VS 프로이트>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만나게 되었다면 어떤 토론을 했을까.’라는 전제하에 두 세계관의 관점을 다뤘다고 한다. 이를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라스트 세션”을 통해 무대 위에 형상화한 것이다. 연극에서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한다. 우주적 존재인 창조주 신은 존재하는지에 대해 토론하는데 우주에서 나 혼자라는 사실을 직시하라던 프로이트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꼭 이렇게 말한다. 오 ‘주여! 신이시여!’를 남발한다. 양심, 고통, 행복, 기쁨, 죽음, 사랑, 성, 죽음, 억압 등 여러 주제를 바탕으로 열띤 토론을 벌인다. 토론하는 주제들이 자칫하면 무겁고 지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는 것이 좋다. 중간중간 유머가 담겨 있어 90분은 요즘 아이들 말로 순삭 한다.     

<루이스 VS 프로이트> 아맨드 니콜라이 글 / 홍승기 번역 / 홍성사 2019년

  연륜과 연기력으로 똘똘 뭉친 신구 배우님의 프로이트 역은 마치 정말 프로이트가 살아있다면 그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프로이트 역할에 빠져 있다. 토론하는 연기나 보철판을 뺄 때 리얼한 연기는 신구 배우는 유머까지 더해져 재미가 배가 된다. 전박찬 배우가 맡은 루이스는 대사도 많지만 그 많은 대사에도 발음이 너무나 정확하다. 그래서 귀에 속속 들어온다. 은근 당돌하고 열정적인 루이스가 되어 있다. 그러니 두 사람의 합이 좋았고, 연극에 몰입도가 높았던 가 보다.   

공연을 마치고 신구 님, 전박찬 님

  연극을 보고 나면 딴 세상에 갔다 온 거 같다. 그들의 연기에 빠져 있다 나오니 현실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서로 조심하며 극장 문을 나서고 있다. 동생과 나도 현실로 돌아와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시간이 여유 있었다면 식사하며 연극 후기를 나눴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나야 뚜벅이지만 하필 동생이 도시 주차난 때문에 차를 가져오지 않아 여유 부리며 어딜 들어가 차를 마실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톡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신구 배우님의 배우로서 연륜이 느껴지는 연기며 전박찬 배우를 칭찬하며, C.S 루이스가 썼던 판타지 동화 <나니아 연대기>를 소개해주다 보니 집에 도착했었다.      

라스트 세션 프로그램 소개하는 책에 연기 연습 중인 장면이 있어서 찰칵했어요.

  이렇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문화예술 정보를 공유하고, 마음을 터놓고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생이 있어 좋다. 우리 둘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 많아 좋다. 지적 호기심을 채우며 마음이 풍성해진 휴일이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 일주일의 피로가 풀리고 맞이하는 새로운 한 주가 행복하고 기운차다. 힐링하는 마음 백신을 맞고 새롭게 한 주를 시작하는 기분이다. 나 스스로 자기치유의 길을 찾아나갔다가 치유하고 들어가는 홀가분한 마음이다.  부디,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잠잠해져서 관람객 모두 편하게 이런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길……. 문화예술 생활을 함께하는 동생이 있어 행복한 날...^^

<라스트 세션> 프로그램 소개 책에 연기 연습 중인 두 배우 모습, 현장감 느껴져서 찰칵


 딸 윤이 영국 가기 전 선물했던 가방을 들고 외출함을 보여주기 위해 부러 기념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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