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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특한 버라이어티 Mar 06. 2021

십만 번의 헛된 수고

오체투지, 목적없는 그 행위

"중장, 이리 나와보세요.

오늘은 시장에 들러 과일과 꽃을 사 와 불전에 공양을 올리도록 하세요"


네팔을 다녀와 청전 스님을 뵙고 100일 기도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릴 때까지만 해도 "절"이라는 것을 달라이 라마의 사원에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말씀을 들은 스님께서는 곧 평소에 알고 지내시던  티베트 스님께 부탁을 하여 절판을 구해 오셨다.

1,000배의 오체투지를 하려면 하루의 거의 절반 이상을 절판에서 지내어야 하는데 절을 하는 동안 맑은 정신을 유지하며 하려면 아무래도 내 방에서 조용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스님의 배려가 있었다.



티베트 스님이 가지고 오신 절판을 방문 앞의 난간에 올려놓고 손을 다치지 않기 위해 까끌까끌한 절판의 표면을 하루 종일 사포로 문지르고 오일로 닦아낸 뒤 방으로 들여왔다.


짐이라고 할 것이 따로 있지도 않은 완전 미니멀한 방의 한쪽 벽면을 불단으로 만들어 삼존불을 모시고 시장에 들러 과일과 꽃을 사 와 불단에 올려놓으니 오체투지를 하기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루에 오체투지로 1,000배를 올린다는 것.


오체투지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입장에서 하루 1,000배를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몰랐던 첫날은 잠도 오지를 않았다.

뜬눈으로 밤새  뒤척거리다가 결국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정갈한 마음으로 몸을 씻고 촛불 하나 켜 놓고 절판 앞에 서서 절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스스로 마음먹은 하루의 할당량을 마쳐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절은 하나의 수행이 되기보다는 절을 하면서 횟수를 헤아리는 마음에 집중하게 되었다.


1배, 2배...

습이 붙다 보니 절을 왜 하는지에 대한 기본 마음가짐보다는 그 회수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널뛰며 움직이고 있는 잡념을 없애고 절을 하는 그 마음에 집중을 하고자 하였지만 잡념은 잡념대로 널뛰면서 한 번씩 일어섰다 엎어지며 오로지 횟수에만 집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꾸준히 백배를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파악이 되고 난 후부터는 굳이 횟수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명상을 할 때는 내 마음을 그저 들여다보라는데...

절은 또한 몸으로 하는 명상이라지 않은가.


무엇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절이 아니었으니 머릿속을 사정없이 오가는 온갖 쓸데없는 생각들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나가면 나가는 대로 그렇게 새벽 4시부터 시작한 "절 수행"을 400배쯤 마치었을 즈음, 이미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 스님께서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아침 9시.

청전 스님께서 입재기도를 해주시기 위하여 가사 장삼을 두르시고 친히 내방으로 건너오신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인데 입재기도를 올려야지요"


초와 향의 불이 켜졌고 자리를 잡고 앉으신 스님의 목탁 치는 소리와 염불로 입재기도가 시작되었다.


사전에 과일이며 꽃이며 사다 불전에 공양 올리라는 말씀은 있으셨지만 이같이 감사하게도 입재기도까지 친히 올려 주시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하루  정해놓은 숫자의 절반 가까이를 채웠고 몸은 이미 흥건히 젖어왔는데 입재기도를 마치신 후, 스님께서 말씀을 이으시며 나가셨다.


"이제부터 100일 기도 시작입니다. 중장, 절을 시작하도록 하세요"





1,000배를 한 번에 다 하지는 않았다.


몸에 체력이 붙으면서는 쉬임 없이 한 번에 1,000배도 가능은 하였지만 100일 동안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정해두고 분배를 해서 하는 방법을 택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까지 절 수행을 하고 7시에는 사원에 나가 코라를 돌고 법당 청소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경을 읽고 점심공양을 하기 전까지 절 수행을 한다.

점심공양은 청전 스님의 처소로 가서 스님께서 손수 차려놓으신 공양을 함께 한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또다시...




다람살라에 있는 동안 법당의 청소를 위해 매일 들르는 사원과 가끔씩 아랫마을로 Tofu와 채소를 사러 나가는 일 외에는 문밖출입을 하지 않았지만 스님의 처소에서 다람살라에 오는 객들을 맞이하면서 세상 소식을 전해 듣는다.


동안거, 하안거를 마치고  인도로 순례 여행을 오며 다람살라에 오시는 스님들.


그분들 중에 다람살라에 오시면  청전 스님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날에는 점심공양 자리의 숟가락, 젓가락이 한 벌 더 늘어나게 된다.


영어 소통이 어려우신 스님들은 같이 환전소에 가서 환전을 거들어 드리기도 하고 달라이 라마의 법회가 있는 즈음에는 스님들의 편의를 위해 미리 근처의 숙소를 예약을 해 놓기도 하였다.  


스님께서 계시는 동안은 점심공양을 늘 함께 했고 겨울이 되어 스님께서 한국에 일이 있어 잠시 들어가신 동안은 청전 스님의 주선으로 다람살라로 겨울을 나러 오신 티베트 노스님들과 함께 점심과 저녁을 해 먹으며 ""만 내 방에서 하고 밤에는 스님의 처소를 지키며 잠을 자는 생활이 이어졌다.


다람살라에 그토록 많은 스님들과 손님들이 방문을 하였어도 스님께서는 당신이 자리를 오래 비워도 방을 내주시지는 않았는데 그 방을 내게 지키라 하고 내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라다크.


지난 3월, 한 겨울인 그곳에 가서 고산병에 걸려 병원을 두 번이나 갔다가 결국 5일 밤낮을 코피 터져가며 죽음을 실감하다 쫓겨 내려온 바로 그곳...


그 라다크에서도 더 들어가는 오지의 사원에 티베트 스님들이 계시다.


모두들 나이 70이 넘으신 노스님들..


겨울이 지나고 육로가 풀리는 계절이 오면 라다크로 의료 봉사 활동을 떠나시는 청전 스님께서는 그곳의 나이 드신 노스님들을 해마다 겨울이 되기 전, 그나마 겨울나기 수월한 다람살라로 모셔 오신다.


원래는 해마다 6분의 노스님들이 오셨다는데 올해는  3분의 노스님이 오셨다.

라종곰빠에서 오신 스님 두 분, 그리고 통대곰빠에서 오신 스님 한분.


해발 3,500 m 이상의 고지인 라다크,  

그리고 그 라다크의 중심지인 레까지 오려면 버스로 또 이틀을 타고 나와야 하는 쟌 스카..


북인도에서 추운 겨울울 나기 위해 다람살라로 여름에 내려오시는 티베트 스님.


그 가운데 라다크, 쟌 스카 저 너머 오지인 통대곰빠에서 오신 통대스님이 제일 나이가 젊어 짜이를 만들고 하루 두 끼, 뚝바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하는 등 온갖 잡다한 일은 모두 통대 스님의 몫이었다.


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하루 종일 절을 하며 남는 시간,

통대스님과 같이 밀가루 반죽을 수제비 떠 만드는 티베트 음식 뚝바를 만들어 하루 두 끼 공양을 올려야 하는 티베트 노스님분들과 겨울을 함께 난다.


라종곰빠에서 오신 두 분 스님 가운데 한분은 한 해가 다르게 몸이 약해지신다고 하셨다.



작년에는 수제비도 두 그릇씩 비우셨다는데 이제 양이 많이 줄으셨다.


몸 움직이는 것이 수월하지 않아 항상 천천히 천천히...

른 아침,

새벽길에 다 같이 도는 코라도 못 돌고 꼭 해가 뜬 이후 아침을 드시고 천천히 거동을 하신다.


아침은 코라길에 남갈사원앞에서 사 온 한 개에 2루피(40원) 짜리 빵과 짜이 한잔..

점심은 애기배추를 삶아 밥에 얹어 먹고 저녁은 수제비...


청전 스님께서 잠시 한국에 들어가시면서 노스님들 드시고 싶은 음식 여쭤봐서 마음껏 사 드시게 하라고 용돈을 주시고 가셨지만 그 맛있다 하시는 인스턴트커피 한잔, 계란 하나, 사과 하나 마음 놓고 사달라 하시지를 못하신다.


이틀 전, 눌어붙기만 해서 더 이상 사용을 안 했던 인도제 프라이팬을 가지고 달걀 프라이  3개를 해서 가져다 드렸더니 수저도 없이 그저 손가락으로 그렇게 맛있게 드실 수가 없으시다.


무릇 비구는 승복도 입고 있는 한벌이면 족한 법이라던데 지금 이곳 다람살라에 오신 지 보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 때 꼬장 가득한 입고 계신 그 승복 한 벌뿐, 다른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지 못했다.


방에 들를 때마다 누워 계신 법 없이, 늘 염주 또는 경전을 들고 염불을 하시는 분의 노스님.


항상 침대맡에 앉아 창문 너머 저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염불을 외는 티베트 노스님의 눈에서 나는 오늘 "무상"이라는 말을 감히 떠올려  본다.


해마다  라다크 저 너머 오지로 봉사활동을 다녀오시면서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삶의 현장을 직접 보아오신 청전 스님.

그래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들을 향한 도움의 발길을 멈출 수가 없다 하시며 겨울이 되면

티베트 노스님들을 다람살라로 모시고 와 겨울을 나게 하시는 청전 스님.

그리고 세분 스님의 삶!


곁에서 같이 생활을 하며 지켜보게 된 스님들의 삶에는 탐욕이 없었다.


욕심 없는 무소유의 삶.

계. 정. 혜 삼학을 지키며 다람살라에서 19년을 올곧이 수행을 해오신 스님,  청전 스님을 옆에서 모시고 지내온 시간은 삶의 더없는 행복의 시간이었다.




매일 저녁식사 후,

창문 너머 별들을 바라보며 티베트어 단어를 한마디 한마디 가르쳐 주시던 통대스님.


그때는 또다시 들를 일이 있을 줄 알았지요 라다크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당신이 거주하고 계신 잔스카 저쪽 너머 통대곰빠에 놀러 오라시던 통대 스님...


라다크 저쪽 스카가 그리 쉽게 마음 내어 갈 만한 거리인가요. 스님,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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