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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Dec 22. 2020

식상해도 식상하다 말할 수 없는 시간여행의 끝판왕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다크> 리뷰

본 리뷰는 드라마 <다크>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중년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남자의 아들인 요나스는 이로 인한 충격으로 몇 달간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한편 이들이 사는 빈덴 마을에서는 한 소년이 의문의 실종을 당하게 된다. 요나스와 친구들은 실종된 소년이 숨겨둔 대마를 찾으러 마을에 있는 한 동굴로 향한다. 그런데 이들은 동굴에서 나타난 알 수 없는 소리와 기이한 현상에 겁에 질려 도망치게 되고, 이때 요나스의 친구인 미켈도 실종된다. 미켈은 이 동굴을 통해 33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 그는 주인공 요나스의 아버지가 되고 33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시간이 만들어낸 빈덴 마을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크>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비극과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이다. <다크>는 처음에는 2019년을 배경으로 시작해서 타임머신을 통해 33년 전 이야기와 66년 전 이야기가 교차되며, 나중에는 99년 전과 33년 후까지 총 5개의 시간대가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친구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동시에 딸이 되는 등 마을 사람들의 가족관계가 복잡하게 얽힌다. 시간이 단순히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수직으로 내려오는 가족관계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사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너무도 많다. 그래더 이상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참신한 설정이 나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시간여행 관련 작품을 많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인데, 실제로 드라마 <다크>에 쓰인 시간여행 관련 설정들은 대부분 기존 작품들에서 이미 다루었던 설정들이다.


마을의 한 장소가 타임머신의 역할을 한다는 설정은 한국드라마 <터널> 등 다양한 작품에서 볼 수 있고, 시간여행으로 인해 가족관계가 얽힌다는 내용은 영화 <타임 패러독스(소설 "All You Zombies" 원작)>에서도 이미 다루어졌다. 과거를 바꾸려고 애써도 바뀌지 않고, 오히려 그 행동이 이미 발생한 과거의 원인이 되어버린다는 역설은 이미 많은 작품에서 다뤄진 설정으로 영화 <타임랩스>, <타임크라임> 등에서 볼 수 있다. 시즌3에 등장하는 다중우주의 설정은 영화 <데자뷰(2006)>,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에서도 쓰였고, 결말 부분은 영화 <나비효과(2004)>의 감독판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런데 <다크>는 기존의 작품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모든 설정들을 결합해서 '시간여행물의 끝판왕'을 만들어 버렸다. 어떻게 보면 이미 다른 작품에서 쓰인 소재들을 총집합시킨 듯 하지만, 기존 작품들의 방식을 답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존 작품을 만든 작가와 감독에게 "너희는 이 정도까지는 생각 못했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만큼 <다크>의 강점은 바로 탄탄한 극본에 있다. 기존의 시간여행 관련 작품은 보통 두 개의 시간대만을 가지고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언급한 <터널> <데자뷰>가 그렇고, 한국 작품인 드라마 <시그널>과 넷플릭스 영화 <콜>도 그렇다. <다크>도 마찬가지로 시즌1 초반에는 2개의 시간대로 시작되는 듯하더니 어느새 3번째 시간대가 등장하고, 결국 어디가 끝인가 싶을 정도로 세계관이 넓어진다. 그와 동시에 각 시간대별 이야기들이 짜임새 있게 얽히고, 과거 사건과 미래 사건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많은 떡밥이 던져지고 회수된다. 그래서 <다크>의 설정들이 비록 신선한 설정은 아닐지라도, 감히 누구도 '식상하다'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다크>에서는 시간여행에 대해서 판타지적인 요소를 버리고 어느 정도 과학적인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애초에 현대 과학으로는 시간여행이 불가능하지만, <다크>에서는 과거 시간대에 원자력 발전소가 설립되는 것에서부터 차근차근 독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하고, 과학자 탄하우스의 존재가 더해져 보다 보면 마치 과학적으로도 있을법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모든 건 어디서 시작했는가?
우리가 모든 것의 기원을 과연 알 수 있을까?
 아니면 기원 이전의 기원도 존재하는가?
시작과 끝이란 것이 존재는 할까?
아니면 모든 게 끝없는 반복에 얽혀서
시작과 끝이란 단어가 그저 동일한 순간을 달리 말하는 것 아닐까?



<다크>를 관통하는 큰 주제 중 하나는 '우리의 기원의 시작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대사도 등장하고, 드라마 속에서도 역설적인 기원을 가진 사람이나 사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샤를로테와 엘리자베트는 서로가 서로의 딸이다(그렇다면 이들의 기원은 누구인가?).

과학자 탄하우스는 책을 쓴 적도 없는데 미래에서 온 클라우디아가 미래에 그가 발간한 책을 전해 주고, 그는 그 책을 그대로 발간한다(이 책의 기원은 무엇인가?).

요나스는 아버지 미하엘이 자살하기 전으로 가서 그의 유서를 보여주면서 자살하지 말라고 말한다. 자살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미하엘은 그 유서를 보고 똑같은 유서를 쓴 후 자살한다(이 유서와 미하엘의 죽음의 기원은 무엇인가?).



<다크>는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특히 등장인물의 이름을 '아담', '에바', '노아' 등으로 표현하여 이 질문을 창세기를 통한 종교적 비유로 표현하였다. 주인공인 요나스와 마르타가 나중에는 인류 최초 인물인 '아담'과 '이브(에바)'가 되고, '노아'는 '아담'의 하수인으로 빈덴 마을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게 만들고자 한다.


사실 우리 인류는 인간 이전의 것에 대해서는 본 적이 없다. 신이 창조했거나 진화에 의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결국 가설과 학설에 의한 것일 뿐이다. 어쩌면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에는 실제로 인간이 타임머신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이 타임머신을 타고 수백만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여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면, 인류의 기원은 과연 무엇일까?




<다크>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선뜻 추천하기 힘든 드라마이다. 짜임새 있는 대본과 떡밥 회수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하다. 하지만 <다크>를 보려면, "너무너무 어려운 드라마"라는 것을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애초에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다크>는 그 무엇과 비교해도 가장 어려운 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시간대만 해도 너무 많은데 시간대에 따라 배우들도 달라지고, 가족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흐름을 놓치기 쉽다. 그리고 독일 드라마 특성상 호흡이 길고 어둡기 때문에, 이런 장르에 낯선 시청자라면 쉽게 진입하기 어렵다.


생각해보면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가 아니었다면 드라마 <다크>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크>는 내용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적어도 가족관계도는 띄워두고 여러 번 돌려가며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 내용의 드라마가 지상파에서 방영했다면 인기를 끌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지상파에서 방영한 타임워프 소재의 드라마 <카이로스>는 웰메이드라는 평이 많지만 장르 특성상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이 한 번에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복선이나 떡밥을 넣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OTT 서비스 속에서는 언제든 드라마를 멈추고 돌리고 반복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보고 이해할 정도로 친절한 드라마를 만들 필요는 없다. 특히 주인공의 행동을 직접 선택하는 인터렉티브 영화인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지상파에서는 불가능한 신선한 시도로 영화와 게임의 장르를 허물기도 했다. 앞으로도 <다크>와 같은, 친절하진 않더라도 더 짜임새 있는 드라마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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