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룡 Mar 21. 2021

게임에 참가해도 죽고, 거부해도 죽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아리스 인 보더랜드> 리뷰


아무 의욕도 없이 무의미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아리스와 두 친구들. 오늘도 그들은 도쿄의 한 번화가에서 사고를 치고 경찰을 피해 공중화장실에 숨는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 세상은 그대로인데 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사라졌고, 넓은 도쿄에는 그들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곧,  모두가 사라진 도쿄를 배경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하지만 모든 게임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게임 참가를 거부해도 죽는다. 그들은 과연 살아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본 리뷰는 드라마 <아리스 인 보더랜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모두가 사라져 버린 도쿄에서 목숨을 걸고 게임을 펼치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장르는 일본에서는 매우 흔한 장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일본 영화만화에서 익숙하게 봐 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일본 영화 <배틀 로얄>과 만화 <라이어 게임>,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이 있다.

 

하지만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위에서 언급한 기존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첫 번째 차이점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맞게 전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큰 스케일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의 전반적인 느낌은 <라이어 게임>과 같은 기존 일본 작품보다는, <헝거게임>이나 <메이즈러너>와 같은 할리우드 작품과 더 비슷하다.


특히 도쿄의 사람들이 사라져 버리는 순간의 연출이 압권이었다. 시부야의 번화한 거리에서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텅 빈 거리를 발견하기까지, 약 4분 30초 정도의 장면을 싱글테이크로 연출하였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당연히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주인공들과 똑같이 무언가에 홀린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차이점은 게임 자체보다는 '서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작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동안의 일본 작품은 대부분 긴 서사보다는 한 화에 담기는 게임이나 사건, 에피소드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서 언급한 <라이어 게임>이나 <도박묵시록 카이지> 작품 전반에 걸친 서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각 화에 담긴 게임이 핵심인 만화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만화인 <포켓몬스터>, <짱구는 못말려>, <명탐정 코난>등도 마찬가지로 서사보다는 각 화에 담기는 사건에 집중한다.


이처럼 사건 중심의 이야기는 언제든 TV에서 방영할 때 그 회차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 속에서는 대부분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몰아보는 것이 쉽기 때문에, 이에 맞게 <아리스 인 보더랜드> 또한 게임보다는 서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추리소설도 과거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과 같이 사건에 집중하는 정통 추리소설이 유행이었다면, 지금은 <용의자 X의 헌신>과 같이 서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추리소설이 더 인기가 많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OTT의 장점이 더해져 <아리스 인 보더랜드>가 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단점 또한 여기에서 발생한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1은 총 8부작인데, 5화까지는 한 회당 한 번의 게임이 등장하고, 점차 서사의 비중이 커지면서 후반부인 6화부터 8화까지는 세 회차 동안 하나의 게임을 룬다.


문제는 이 게임들이 자체로서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라이어 게임>이나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보면 주인공이 게임을 분석해서 결국 게임의 허점이나 필승법을 찾아낸다. 독자들도 게임에서 반드시 이기는 방법은 없을까 함께 추리하면서 보다가 주인공이 필승법을 찾아내는 것을 보고 희열을 느낀다.

  ※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중국 영화 <동물세계>로 리메이크되어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 1화의 '죽느냐 사느냐'게임에서 위의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고심 끝에 필승법을 찾아내는 장면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라이어 게임>과 같은 두뇌게임이 펼쳐질 것을 기대했는데, 이런 종류의 게임은 딱 1화뿐이었다. 뒤로 갈수록 게임은 그저 서사를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다. 3화에 등장한 '숨바꼭질' 게임은 마치 필승법이 있을 것 같은 기대만 주고 허무하게 끝나 버리기도 했다. 특히 5화에 등장한 '전구 게임'에 나오는 문제는 웬만한 퀴즈 책에는 모두 실려 있을 만큼 유명한 고전 문제인데, 이 문제로 하나의 게임을 구성한 것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서사에 집중하다 보니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각 캐릭터들의 과거를 충실히 보여주면서 캐릭터를 구축한다. 이 캐릭터들은 게임 속에서 혼자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버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기도 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게임들은 두뇌게임을 기대한다면 실망하겠지만,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게임을 대하는 모습 속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4화에 등장한 '디스턴스 게임'은 사실 모두가 살 수 있는 필승법이 있는 게임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주인공이 목숨 걸고 다른 참가자를 구하려고 한 덕에 모두가 살 수 있었다. 



후반부에 주인공이 '비치'에 들어갔을 때부터 게임은 비중이 적어지고, 어딘지 모를 이 최악의 세상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뀐다. '비치'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자포자기한 사람들이 순간의 쾌락만을 좇는 곳이었다. 우리나라 영화 <반도>의 631부대처럼,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점차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볼 수 있었다.


'비치'의 리더인 '모자장수'나, 온몸에 문신을 하고 있는 '사무라'의 모습은 실사 드라마 치고는 매우 과장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과장된 연출이 싫어서 일본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영화에도 한국식 신파가 있듯 일본 작품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대로 오락영화(드라마)로서의 재미와 긴장감은 일본 작품을 따라올 만한 게 없으니까.





드라마의 제목인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영문 제목은 'Alice in Borderland'이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제목이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이므로 이를 패러디한 것이다. 갑자기 이상한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서 영문도 모르고 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동화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한글 제목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익숙하기 때문에 '아리스 인 보더랜드'라는 제목만 보고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원작 만화의 제목은 한국에서 '임종의 나라의 앨리스'로 표현하고 있다(물론 한국에서 정식 출판된 것은 아니므로 이것도 공식적인 이름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한국 제목을 '임종의 나라의 앨리스'나 '경계의 나라의 앨리스', '죽음의 나라의 앨리스' 등으로 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쉽게 떠올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시즌제 드라마로서의 결말이 매우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각 나라의 문화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사람들은 시즌제 드라마가 시즌에서 어느 정도 시즌의 내용이 마무리되기를 원한다. 드라마에서 많은 떡밥을 던져두었다면 그중 대부분은 시즌 내에서 회수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일부 중요한 떡밥은 다음 시즌으로 넘길 수 있겠지만, 시즌의 내용은 시즌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에서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는 게 바람직한 시즌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기묘한 이야기>를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각 시즌의 결말 때문이다. <기묘한 이야기>는 시즌이 끝나도 계속해서 궁금증만 생길 뿐 도저히 회수되는 떡밥이 없었고, 시즌 중간화 결말이나 마지막화 결말이나 차이가 없었다. 시즌1부터 마지막 시즌까지 정주행한다면 상관없겠지만 시즌과 시즌 사이는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하므로, 이전 시즌의 내용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 다음 시즌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시즌제 드라마의 이상적인 결말을 보여 주었다. 시즌 마지막회에서 시즌의 내용은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던져둔 떡밥을 대부분 회수하고 조금은 남겨 두면서, 다음 시즌에서 그 떡밥을 풀어나갈 것을 예고해 주었다. 이제 시즌2의 '보더랜드'에서 새로운 게임을 즐길 준비가 되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를 바꿨더니 딸이 사라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