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룡 Aug 15. 2021

랜선으로 떠난 베니스 여행

1인칭 스트리밍의 마법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이 달라진 게 어느덧 1년 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마음껏 해외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발발한 초기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머지않아 해외여행은 금지령이 떨어졌다. 법적으로 금지가 아니라고 해도 양 국가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려면 사실상 직장인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영화 <오케이 마담> 스틸컷


많은 사람들은 일시적인 조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외여행은 꿈만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제주도나 강릉 등 국내 관광지로 인파가 몰리고 있다.


그렇게 해외여행에 대한 추억이 잊혀갈 무렵, 이제는 실제로 가지 않고도 해외를 구경하는 랜선투어가 등장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들어보지 못했을 매우 생소한 단어였다. 만원 초반 정도가 보통 가격이었는데,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해외여행을 송출하는 것 같았다. 코로나19 이전에 해외 각지에서 가이드를 하던 한국인들도 많았을 것이므로, 그 사람들이 여행사를 통해 랜선투어를 진행하는 모양이다.


방구석에서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이 신선하긴 했지만, 영화 한 편보다도 비싼 가격에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 휴가철이 되었지만 여행은 더 먼 일이 되어가고 있고, 해외여행이 고파진 나는 다시 검색창에 '랜선투어'를 검색해 보았다.



몇 달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랜선투어가 등장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여행사들의 랜선투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어서인지, 무료로 랜선투어를 진행하는 곳도 있었다. 무료 랜선투어 중 마침 예전부터 가 보고 싶던 베니스가 있었다. 무료라면 한번 해보고 재미없으면 끄면 되니까. 베니스로 랜선투어를 신청하고 시간에 맞추어 컴퓨터를 켰다.


랜선투어는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해외 현지에 거주하는 가이드가 실시간 여행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정해진 시작시간에 맞추어 가이드의 인사로 랜선투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가이드의 1인칭의 시점을 보며 함께 베니스의 거리를 걸었다.



유튜브 채팅과 함께 진행되면서 가이드는 중간중간 채팅 내용에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여행한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모니터를 사이에 두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베니스 거리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유럽 전역이 한 때 코로나로 초토화되었는데, 베니스 거리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이탈리아는 코로나 백신의 2차 접종률이 60%를 넘어 집단 면역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의무가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이전부터 가보고 싶던 베니스였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더욱 천국처럼 느껴졌다. 당장 베니스로 여행은 가지 못하더라도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이런 날이 올까?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베니스 시민들 (2021.08 현재)


투어를 진행하면서 가이드는 베니스의 역사나 명소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유럽에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을 진행하다 보니 중간중간 끊김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생소한 이탈리아의 역사인데 중간중간 끊기면서 들으니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투어는 90분 동안 진행되었는데, 실시간 방송이기 때문에 나에게 90분은 베니스에서도 90분이었다. 리알토 다리와 산마르코 성당 등 핵심적인 명소를 함께 걷다가 투어는 어느새 끝이 났다. 90분 동안 실시간으로 투어를 하니 아무래도 다양한 명소를 둘러볼 수는 없었다.



TV에서 하는 해외여행 방송과 비교했을 때, 랜선투어는 무엇보다 1인칭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어떤 장소를 바라볼 때 1인칭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3인칭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감이 들 수밖에 없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게임도 '리그오브레전드'와 같은 3인칭 게임과 '서든어택'과 같은 1인칭 게임으로 나눌 수 있다. 드론으로 촬영하듯 위에서 캐릭터를 보여주는 3인칭 게임과 달리, 1인칭 게임은 캐릭터가 맵(장소)을 바라보는 시각 그대로 화면을 보여준다. 만약 내가 게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상상해본다면, 3인칭 게임에서는 수백 번 플레이한 장소도 매우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1인칭 게임이라면 이미 와본 장소인 것처럼 익숙하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의 여행 프로그램과는 다른 '1인칭 스트리밍의 마법'이 아닐까? TV 프로그램처럼 드론을 통해 화려한 광경을 한눈에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여행이 고픈 현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지금 해외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을 줄 수 있는 1인칭 스트리밍 방송이 더욱 필요했던 것 같다.



랜선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코로나19가 이런 일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사실 나도 무료이기에 체험해본 것이지, 정가를 주고 또 랜선투어를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랜선투어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언젠가 해외여행이 다시 재개된 이후에도 랜선투어를 통해 다음 갈 여행지를 고르는 등 랜선투어가 우리 일상 속에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긴 공항을 걸으면서도 즐겁고, 좁은 이코노미석 의자에 몇 시간 앉아 있어도 행복했던 해외여행이 그립다. 머지않아 랜선이 아닌 내 발로 걷는 해외여행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덜인싸'들의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