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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Dec 05. 2021

신은 우리의 세상에 관여할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리뷰


어느 날 서울 한복판에 괴생명체가 나타나 한 사내를 공격한다. 괴생명체는 사내를 이리저리 던지고 휘두르다가 결국 불에 탄 듯 재가 된 시신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종교단체 '새진리회'에 따르면 그 괴생명체는 지옥의 사자이고 죄인에게 지옥의 고통을 선사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새진리회'의 말을 믿지 않지만 서울 한복판에 벌어진 일을 보고 조금씩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두 아이를 둔 한 엄마는 어느 날 자신이 3일 뒤 지옥의 사자에게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그녀는 살 방법을 찾기 위해 '새진리회'를 찾아가고, 이것이 사람들이 신의 의도를 믿게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새진리회'는 그녀가 지옥의 사자에게 시연받는 모습을 온 세상에 생중계하려고 한다.



정말 지옥의 사자는 존재하는 것일까? 신은 왜 사람들을 그렇게 끔찍하게 죽이는 것일까?



본 리뷰는 드라마 <지옥>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6부작의 드라마이다. 연상호 감독이 직접 연재한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데, 1부와 2부로 구성된 원작과 같이 드라마도 전반부 3부와 후반부 3부가 4년간의 시차를 두고 다른 인물을 통해 다른 주제를 다룬다.


<지옥>의 3화까지는 신이 실제로 죄인들을 심판한다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에는 시청자들 또한 <지옥>에 등장하는 군중들과 똑같이 사자들의 존재와 '새진리회'의 교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드라마를 보게 된다. 비록 첫 장면에 등장한 사자들의 모습은 충분히 초현실적이었지만,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CG나 연출된 상황이 아닌지 의심도 든다(실제로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는 드론과 홀로그램을 통해 악당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생중계가 펼쳐지는 박정자의 실시간 시연 장면을 통해서야 우리도 <지옥> 속의 다른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사자들이 진짜라고 믿게 된다.



모두가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신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신은 인간의 세상에 관여를 할까?
그렇다면 왜 죄를 짓고도 잘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일까?


<지옥>의 전반부 메시지는 이 의문에서 시작한다. '새진리회'의 의장인 정진수를 통해 우리는 모두 신이 죄인들에게 벌을 주는 것이라고 설득당한다. 정진수는 방송을 통해 "우리에게 악을 방치할 권리는 사라졌고, 선을 행할 의무만 남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정의'에 대한 가치관을 통해 이렇게 신이 범죄자를 죽음으로 처벌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신에게 죽음을 당할까 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세상은 과연 행복할까?
아니면 범죄자를 대신 처벌해주고 직접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주는
신을 받들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이런 고민을 던져준 뒤, 정진수 또한 죽음의 사자에게 시연을 당하며 <지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정진수는 사실 20년 전에 이미 고지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무작위로 신에게 죽임을 당하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질 것을 염려해 이것이 신의 의도라고 포장한 것이다.


어쩌면 죄를 짓지 않았다는 정진수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4년이 흘러 <지옥>의 후반부가 시작되고, 태어난 지 3일 된 아이가 신에게 고지를 받으면서 신이 죄인만 심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그 사이 '새진리회'는 전 세계의 절반이 믿을 만큼 엄청난 권력을 가진 조직이 되었다. 정진수와는 달리 '새진리회'를 통해 명예와 권력을 얻고자 하는 2대 의장에게는 신의 진짜 의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신의 의도가 무엇이든 죄 없는 아이가 신의 심판을 받는 것을 숨겨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지옥>은 전반부에서는 신이 죄인을 심판한다는 가정하에 "죄인을 죽음으로 심판하는 것이 정의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면, 후반부에서는 이처럼 실제 신의도와는 상관없이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새진리회'의 이야기를 다룬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군가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질까?


<지옥>은 드라마를 통해 이 답을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후반부에서는 신의 시연이 아무런 의도가 없음이 명확해지지만, 전반부에서 우리는 어느새 정진수의 말에 현혹되고 있었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시연당한 남자와 박정자를 보며 우리는 모두 그들도 어떤 큰 죄를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두 남자에게서 두 아이를 낳아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박정자.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동정받아야 할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는 어느새 정진수에 현혹되어 그것이 박정자의 극악무도한 범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버렸다. 이는 우리 스스로 거짓된 교리를 믿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왜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지 직접 느껴보게 한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마지막화까지 쌓아 올린 주제의식에 비해 결말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연상호 감독은 택시기사의 말을 빌려 주제를 전달하려고 한 것 같다.


저는 신이 어떤 놈인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


<지옥>에서는 막상 신의 시연이 왜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실마리도 제공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 시즌을 위해 남겨둔 것일까, 아니면 택시기사의 말처럼 애초에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전자라면 최소한 다음 시즌에서 밝혀질 것이라는 힌트라도 나왔어야 했다. 그리고 후자라면 결말의 의미는 다소 퇴색된다. 마지막에 사자들은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건 부모를 대신 죽이고 원래 시연 대상이었던 아이는 살려준다. <부산행>이나 <반도>에서 보여준 연상호 감독의 신파적 요소가 그대로 나타났는데, 애초에 시연이 그저 신의 장난일 뿐이었다면 마치 신이 감동한 듯 아이를 살려주는 것은 다소 모순되는 설정이다. 다음 시즌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면, 시연이 그저 신의 장난인 것처럼 보여주었어야 주제가 더 부각되었을 것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는 한 남자가 '이 이야기가 끝날 때 당신은 반드시 신의 존재를 믿게 된 것'이라면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 준다. 사실 그 이야기는 그가 직접 신을 만났다거나 신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이야기의 주제는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신의 존재를 믿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믿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후반부에서 보여준 <지옥>의 주제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으나, 어느 종교에서든 신을 직접 보거나 신을 만날 수는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종교를 믿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고 삶에 활력소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어차피 신의 존재를 볼 수는 없기에, 거짓된 교리로 다른 목적을 갖는 종교도 분명 존재한다. <지옥>에서는 지옥에 간다는 대사만 등장할 뿐 지옥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지옥처럼 느껴진다. <지옥>은 죽음의 사자가 나타나 누군가를 지옥으로 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건을 이용해 현세마저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정진수를 비롯한 '새진리회'의 말처럼, 신이 무작위로 사람들을 지옥으로 데려간다면 세상은 분명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오래전에도 영문도 모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 세상이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모두들 자연재해를 막고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이 일련의 사건은 분명 세상에 큰 혼란을 주겠지만, 힘을 합쳐 원인을 밝히고 피해를 막으려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이 사건이 하나의 종교가 되어 시연당한 이들의 가족들도 모두 고통받으며 사는 세상보다는 덜 '지옥'같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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