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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May 27. 2021

집을 사고 싶다.

서울에서 태어만 나도 동수저인 건에 대하여

회사 지원의 사택에 산지도 오 년째. 집을 떠난 후로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집이기 때문인지, 관사에 애착이 많이 가기도 했다. 청소도 열심히 했고 여름에는 곰팡이 제거에 겨울에는 결로 제거로 힘들기도 했다. 그 전 까지는 높신 분들만 살던 집이었기에 전반적인 상태는 깨끗했지만 20년 된 아파트 특유의 구식이라는 느낌은 언제나 남아있었다.


만약 다시 서울로 가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7년 전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대로 오피스텔이나 하나 사놓을걸 그랬나. 그동안은 월세로 받고, 다시 들어가면 되었을 테니. 새삼 어머니 말 들어서 아쉬울 거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월세나 전세로 살 생각밖에 못했는지. 다시 서울로 올 것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당시의, 1억도 채 모으지 못한 나는 서울의 집값이 정말 무서웠다.


그래서 집을 사고 싶다. 세상에 매물로 나오는 집은 정말 많은데, 정작 나는 여러 가지 조건 상 사기가 애매하다. 사실 단독주택을 사고 싶다가도, 단독주택에 들어가는 유지비를 생각하자면 너무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인터넷에 나오는 많은 인테리어 후기는 본인의 공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고 나는 그럴 시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드니까. 가장 좋은 것은 아파트를 사는 것이겠지만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대로 날아가버린 아파트값은 일개 공무원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여전히 내가 결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고 그래서인지 더욱 나 자신의 보금자리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집값은 오르지 않겠지만 단독주택을 살 것인가, 혹은 무난하게 아파트로 갈 것인가. 아버지의 성향을 짙게 가지고 있는 내가 아파트에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아버지는 본인의 드림하우스를 착착 일구어 나가고 계시니.)


이런저런 푸념이 있지만 결론은 그것이다. 서울에서 살자니 참 힘들다는 결론. 지방이라면 어떻게든 뭐라든 좀 사보겠는데 서울은 삶의 질을 따지자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부동산조차 싼 게 비지떡이라는 명언이 통용되는 세상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서울에 사는 것만으로도 '동수저'라는 말도 떠오른다. 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특히 나같이 연고 없는 지방러에게는 더 그렇다. 아무리 허름한 집이라도 '서울'이니까. 음, 그렇다고 보기엔 쪽방촌은 더욱 힘들긴 하겠지만, 그조차 부산의 쪽방촌에 비하면 환경이 나은 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에서 머물렀던 첫 집은 친구의 월세집이었다. 많은 민폐를 끼쳤지만 당시의 나는 나 살기에도 바빴고, 친구는 그것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었다. 그 후에는 네 평 반의 원룸. 동향의 직사각형 방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사는 것은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자는 공간과 쉬는 공간이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부터다. 다음으로 옮긴 6평 정도의 북향 원룸은 그래도 꽤 살만했다. 주방과 세탁기가 분리되어 있었고(냉장고가 방안에 있기는 했지만) 분리형이기 때문인지 그나마 원룸 특유의 불안감은 없었다. 집주인분도 좋은 분이었다. 최소한의 옵션도 있었으니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잘 살고 떠난 셈이다. 가격 대비 크기 때문인지 방도 빨리 나갔으니 더 좋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런 집에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원 '룸'에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집'에 살고 싶은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원룸은 꽤 편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회초년생이 되어 처음 살았던 집은 중문과 베란다, 식당용 베란다가 있는 빌라형 사택이었고 나름대로 방을 꾸밀 수 있는 소소함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첫 원룸생활에 만족했는데 그 원룸이 그렇게 큰 편이라는 것을 서울에 가서야 알았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 세 가지가 의식주라는데, 그중 '주'가 보장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각박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러니 집을 사고 싶다. 직장을 가기에도 편하고, 내 한 몸도 편하게 뉠 수 있고, 쉬고 싶을 때는 빛을 바라보고 어느 날 화장실 창문을 환기하려고 열었을 때 쳐다보는 눈이 없고, 도둑이 들까 전전긍긍하지 않고, 편하게 '내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집.


그래, 그런 '집'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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