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화분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니정 Aug 03. 2024

꽃집

<화분> 1화

처음에는 그냥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믿었다. 첫 직장이니만큼 상사가 미운 것은 당연하다고 일전에 취업한 친구 찬미가 별이를 위로했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는 그나마 희망은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대리를 향해 입 모양으로 욕을 해도 안 걸렸다. 이 방법은 찬미가 알려준 거였는데, 당시엔 콧방귀를 뀌었는데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심지어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하면  일주일간 대리를 안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별이는 일부러 코로나에 걸린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자기도 했지만 옮기는커녕 괜히 회사랑 멀어서 아침에 지각해서 대리한테 또 깨지고 말았다.


“은별 씨, 회사가 장난 같아? 아직도 대학생처럼  교수님한테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면 되는 줄 알아?”


대리는 꼭 이렇게 사람을 갈궜다. 어린것이 죄인 것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인 점을 콕 집어서 특히 비꼬곤 했다. 별이는 억울했다.  “대리님은 첫 직장이 없으셨어요?” 특유의 비꼬는 말투를 따라 하며 당장이라도 따져 묻고 싶었지만, 꼭 이럴 때마다 취직했다고 좋아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시발”


요즘 별이의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었다. 어째서 나는 이런 어른으로 성장한 걸까? 별이는 자책했다. 사실 취직만 하면 뭐든 잘 될 줄 알았다. 엄마가 입이 닳도록 말했던 ‘안정’과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에 대한 환상이 자기도 있었으니까. 이제 막 1년 차였다. 1년 차 신입. 별이는 하루하루를 견뎠다. 아침에는 얼른 퇴근시간이 되길 바랐고 저녁에는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날도 똑같은 기분이었다. 똑같은 야근, 똑같은 늦은 퇴근시간, 똑같은 퇴근길. 다른 게 하나 있다면 항상 비어있던 집 앞 골목길 상가에 꽃집 하나가 새로 생겼다는 것이다. 별이는 꽃을 매우 좋아한다. 예쁜 화분을 모으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고, 대리가 계속 이딴 식으로 굴면 그냥 때려치우고 꽃집을 차리는 것이 로망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2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늦은 퇴근길 골목을 유일하게 비춰주던 가로등 불빛이 묻힐 만큼 꽃집의 존재는 강렬했다. 꽃집의 간판이나 내부의 불빛이 밝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홀린 듯 들어간 꽃집 내부는 무언가 특이했다. 문을 열자마자 짤랑-소리를 내는 종소리와 코를 찌르는 인센스 냄새, 바닥은 물론이고 천장까지 뒤덮여있는 식물들. 조금은 오싹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동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서자 usm선반에 가지런히 정리된 화분들이 가격표를 달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카운터는 있었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기요…”


기어가는 목소리로 주인을 불러봤지만 10평 남짓한 공간에 분명 별이는 혼자였다.  별은 구경이라도 하고 나가자 싶은 마음에 눈길을 선반으로 다시 돌렸다. 분명 난생처음 보는 꽃들이었다. 화분의 디자인도 좀 독특한 편이다. 외국에서 들여온 제품들인가? 자세히 보려고 선반 앞에 더 가까이 섰다.  가장 마음에 드는 화분 앞에 선 은별. 선인장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한 이상하지만 귀여운 식물이었다. 화분을 들어 가격을 확인했다. 가격 택에는 가격 외에 수상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60,000

-구매자 외 사용금지

-선물 금지


별이는 경악했다.


“이 쪼꼬만 한 게 6만 원?”


진짜 별이 손바닥만 한 화분이었다.


“요즘 물가 진짜 장난 아니네.”


중얼거리던 별이는 가격 밑에 문구들이 참 수상했다. 선물은 왜 안 되며 구매자 외 ‘사용금지’? 사용이라니. 식물도 생명체인데.. 꽃집 사장의 마인드가 자신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너무 예쁜 걸.


“이걸 사 말아..”


고민만 10분째. 다른 꽃들도 둘러보지만 이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휴대폰으로 통장 잔고도 한 번 확인하고.. 이거라도 안 사면 내일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며 합리화를 한다. 결제 방식은 QR이었다. 6만 원을 송금하고 화분을 소중히 안아 꽃집을 나선다. 그때는 몰랐다. 이 화분이 어떤 화분일지, 은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수, 금 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