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지인들 중 부부의 날이 몇 일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5월이 가정의 달인 것은 대부분 잘 알고 있고 어린이날이 언제인지는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힘들지만 부부의 날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부부의 날은 그 의미만알게 된다면 오히려 어린이날보다도 날짜를 기억하기가 더 쉽다.
부부의 날은 '5월 21일'인데 '둘이 만나 하나가 된 날'이라는 의미로 '21'로 정해졌다고 한다. 의미대로 쫓으면 기억하기 정말 쉽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날짜이다. 그러므로 지금 배우자가 있다면 잊지 말자. 21.21.21.내가 그 또는 그녀를 만나 하나가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럼 이제 와인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이렇게 의미있는 날, 이 세상 모든 부부를 위한 이 날에 역시 와인이 빠질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날을 위해 이왕이면 부부의 사랑이 담긴, 그런 이야기를 품은 와인을 함께 나누어 마시면 그 와인의 빛과 향기, 찰랑거리는 그 순간의 분위기가 서로의 눈빛에 녹아들어 더욱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설레임과 기대를 안고 소개하는 오늘의 첫 번째 와인은 미국 나파밸리의 명가 '덕혼'의 '패러덕스'이다.
'패러덕스(Paraduxx)'는 '한 쌍의 오리'라는 뜻의 'A pair of ducks ' 의 발음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레이블에는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는 한 쌍의 오리 그림이 있는데 매년 다른 화가들이 오리 커플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혼 와이너리는 1976년 댄과 마가릿 덕혼 부부가 미국 나파밸리에 설립한 곳으로 40여년이 지난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고품질의 와인 명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 레이블에는 다양한 오리들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오너의 이름에서 나온 아이디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와이너리 인근에 오리 서식지가 있어서 그 곳의 오리들을보고 받은 영감을 디자인화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와인에는 한 마리의 오리만 있는데 반해 '패러덕스'에는 오리 커플이 그려져 있다. 이 와인은 덕혼의 와인 중 최초로 이탈리아의 명품 와인인(가격도 초고가이다) 소위 '슈퍼 투스칸' 와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레드 품종인 진판델을 메인으로 카베르네 소비뇽과 블렌딩했다. 그래서 두 마리의 오리는 이 와인의 두 가지 품종을 나타낸다는 '썰'이 있고 또 다른 이는 '화목'을 나타내는 'A pair of ducks '에서 이름을 가져와 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둘 다 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진판델과 카베르네 소비뇽이 '화목'하게 블렌딩되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깊은 풍미를 가진 와인이 완성되기에 좋은 와인을 만들고 싶은 와인 메이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
연유가 무엇이든 간에 한 쌍의 오리는 '소중한 사람과 평생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소망을상징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를 생각하면 그 의미를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 전통혼례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나무로 만든 오리 한 쌍이다. 초례상에는 살아있는 오리나 기러기를 대신하는 목각 오리 한 쌍이 놓여있는데,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오리와 기러기는 연을 맺으면 서로에 대한 예의와 의리를 지키며 평생 함께하는 '지조있는' 동물로 여겨왔다. 그래서 새로 탄생한 부부 역시 이들처럼 백년해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목각 오리로 나타낸 것이다.동서를 막론하고 오리 부부가 의미하는 것은 엇비슷한 듯 싶다. 하긴,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고 성공적인 결혼 생활은 누구나 바라지 않겠는가.
자, 다시 패러덕스로 돌아가보자.
이 와인은 블랙베리, 블랙체리, 시나몬, 바닐라, 초콜릿, 건포도 등 무게감 있는 와인 특유의 향과 진판델에서 온 묵직하면서 달콤한 향이 조화를 이루어 복합미를 선사하며 부드러운 첫 모금과 적절한 잔당감과 타닌이 감도는 피니쉬는 만족감을 더해준다.
덕혼 부부는 프랑스 보르도를 여행한 후 그 곳의 와인에 깊은 인상을 받고 미국에서 와인 사업에 열과 성의를 다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시행착오를 기회로 바꿔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와인으로 널리 알려진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레이블의 오리 커플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한 덕혼 부부의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이룬 것이 아닐까.
두 번째로 소개할 와인은 무려 148년의 역사를 가진 와이너리의 작품으로, 바로 칠레 '산타 캐롤리나리제르바 드 파밀리아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이 와이너리는 1875년 '돈 루이스 케레이 코타포스'가 설립했는데 아마도 그는 지독한 사랑꾼이었던 듯 싶다. '산타 캐롤리나'라는 와이너리의 이름은 바로 아내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평생의 업적이자 가업이 될 와이너리를 아내의 이름으로 부르다니. 그리고 그 이름이 이 와인이 오르는 세계 곳곳에서 회자된다니. 부르고 또 불러도 너무 사랑스러워 그리운 이름이었나 보다.
이 와이너리의 수많은 와인 중 이 와인을 추천하는 이유는 포도가 자란 지역 때문이다.
칠레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포도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아콩카과 밸리, 콜차구아 밸리 등 여러 대표적인 생산지 중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자라는 곳은 마이포 밸리인데, 이 와인, 즉 '산타 캐롤리나 리제르바 드 파밀리아 카베르네 소비뇽'이 바로 그 유명한 마이포 밸리의 포도로 만든 것이다. 이 곳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민트향의 풍미를 지닌 고품질의 향과 맛을 자랑하는데, 개인적으로 와인을 공부하면 할수록 (물론 와인 맛을 완성하는 조건과 변수는 너무나도 많지만) 생산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와인을 고를 때 품종을 고르면 그 다음으로는 생산지를 보는 편이다.
'산타 캐롤리나 리제르바 드 파밀리아 카베르네 소비뇽'은 같은 품종의 다른 칠레 와인들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라는 평이 있기도 한데 그래서 오히려 블랙베리, 블루베리, 바닐라, 은은한 민트의 향과 함께 부드럽게 다가오는 와인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투박하게 훅 치고 들어오지 않기에 더욱 정겹고 반갑다.
산타 캐롤리나의 이름에 스며든 이야기를 들려주며 와인을 천천히 잔에 따라준다면, 연애시절 보았던 아내의 반짝이는 눈빛을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평론가이자 작가였던 '앙드레 모로아'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알맞은 짝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맞은 짝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내 곁의 배우자를 바라보자. 나는 그 또는 그녀에게 알맞은 짝일까?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실망하지 말자.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