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탈>과 <바비>를 보고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아마도 그 문장에 일상의 큰 부분을 의지하고 있거나, 반복해서 되뇌는 문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은 학부 때 <페미니즘과 영화> 보고서 제일 마지막 줄에 적었던 문장이다.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은 사회적 구조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단편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 맥락에서 비롯되어 있기 때문에 한낱 경험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로 다뤄야 한다. 이게 이 문장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엘리멘탈>과 <바비>는 개인적인 경험이 너무나 많이 떠올라서 그 없이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영화가 어떤 작품성을 띄고 만듦새가 어떻고 재미가 있든 없든 이 두 개의 영화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고, 한국계와 외국계 직원들이 극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구조였다. 나를 포함한 어린 동양인 여성과 남성들 그리고 나이대가 좀 있는 백인 여성과 남성들 이렇게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영어로 소통했으며, 영어 이름을 썼다. 이 전제 조건만 가지고는 그래서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회사에 일하면서 대략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A) 왜 영어 이름을 쓰게 하냐? 그게 너희 진짜 이름이냐? 아니다. 그렇다면 불공정하다. 너의 진짜 이름을 부르겠다. 하지만 발음을 내리 틀렸다. 발음을 매번 고쳐주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여 그냥 영어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다.
B) 어린 여성들과 어떻게든 연결점을 만들어 보려고 지나가다가 윙크를 하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성적인 어필을 받았다. 업무 외 개인적인 연락도 있었다. 나중에는 애인이 있는 척했는데, 거짓말이라는 걸 듣고 난 뒤 여기 아쉬워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왜 그랬어?라는 말을 들었다. 연락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백인 남자들이었다. 동양인 여성인 나는 괜히 백인 남성들과 엮여서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다.
C) 젊은 여성이 남자 상사에게 업무 요청을 하면 기분 나쁘다는 반응이 따라왔다. 최대한 업무 요청을 하지 않고 내 선에서 해결해야 했다. 이 항목은 외국인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이 세 가지 일 말고도 많은 일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만 추려본 것이다. 이 세 가지 일을 영화 속 장면에 적용해 볼까?
A) 왜 영어 이름을 쓰게 하냐? 그게 너희 진짜 이름이냐? 아니다. 그렇다면 불공정하다. 너의 진짜 이름을 부르겠다. 하지만 발음을 내리 틀렸다. 발음을 매번 고쳐주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여 그냥 영어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다.
-> <엘리멘탈> 첫 장면에서 아슈파가 원소들의 나라로 들어올 때 입국 심사관이 아슈파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하고 마음대로 정한 이름이 아슈파다. 못 알아듣는 이름은 자기들 식으로 부른다. 요즘은 서양식으로 성이름을 바꿔 부르는 것을 지양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름이 똑바로 불리지 못할 바에 그냥 영어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B) 어린 여성들과 어떻게든 연결점을 만들어 보려고 지나가다가 윙크를 하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성적인 어필을 받았다. 업무 외 개인적인 연락도 있었다. 나중에는 애인이 있는 척했는데, 거짓말이라는 걸 듣고 난 뒤 여기 아쉬워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왜 그랬어?라는 말을 들었다. 연락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백인 남자들이었다. 동양인 여성인 나는 괜히 백인 남성들과 엮여서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다.
-> <바비>에서 바비가 리얼 월드에 처음 들어왔을 때 화려한 옷과 롤러스케이트를 타면서 시선으로부터 위협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공사장의 아저씨들은 바비를 향한 성적인 농담을 멈추지 않는다. 켄은 시선에서 어떤 위협도 느껴지지 않는데? 하고 맞받아친다.
C) 젊은 여성이 남자 상사에게 업무 요청을 하면 기분 나쁘다는 반응이 따라왔다. 최대한 업무 요청을 하지 않고 내 선에서 해결해야 했다. 이 항목은 외국인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 <바비> 내 마텔 회사 all the way up의 고위 관료들은 남자뿐이었다. 비서가 여성으로 등장하는 연출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고위직에게 말을 거는 여성이 거절당하고 대기하는 것을 보고 켄이 여기선 남자가 권력이 있잖아?라고 감탄하며 가부장제를 배워가기로 한다. 비서 역할에게는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가, 바비 월드에 들어가서야 의견을 들어준다.
이뿐일까? 시작하자면 끝도 없다.
물과 불이 만나면 안 돼! 하고 외치는 앰버를 보면서 백인 남성과 사귀는 것을 소셜 미디어에 공개하면 동양인 여성이 욕먹는 일이 떠올랐다든지, 부모님이 너만을 위해 헌신하는데 기대를 저버리는 게 어떤지 넌 전혀 모른다는 앰버의 대사라든지, 부모님을 어떻게든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앰버의 욕망이라든지, 고립되어 있는 파이어 타운과 겹쳐 보이던 코리아/차이나 타운의 묘하게 썰렁한 분위기라든지. 치나!라고 부르거나 대뜸 놀래키고 도망가는 것처럼 동양인 여성으로 해외에 혼자 다니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위협들이 왜 위협으로 느껴지는지 설명해야 하는 일. 백인 여성과 동양인 여성은 또 다른 취급을 받는 사회.
살면서 숱하게 당했던 성희롱, 메일 게이즈, 여성에게 폭력적인 사회가 당연하다는 듯이 흘러갔던 사회적 사건들, 학부에는 여성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사회에 나가면 보기 드물어지는 고위 여성 관계자들. 여성은 보기 좋게 말라야 하지만 너무 말라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체중이 나가서도 안 되고 사람들의 적당한 욕망의 대상이지만 성적으로 문란하면 안 되고 야망이 있어야 되지만 적당히 모은 돈은 있어야 되는데 분별없이 돈을 써서는 안 되는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켜야 하는 그 모든 수식어들. 어린 여성 연예인이 유명해지면 신고식처럼 가해지는 지나칠 정도로 가혹한 폭언들.
나는 그런 거 못 봤는데? 내 주변에는 그런 일 없던데?라고 누군가 말할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미디어의 역할이다. 가장 개인적인 일이 가장 정치적인 일이라면 그 정치적인 일로부터 반추한 개인적인 경험 또한 귀하지 않을까.
영화를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엘리멘탈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기도 하며 영상미가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며 캐릭터를 원소 별로 잘 구축한 재밌는 영화다. 바비는 노래와 함께 춤추는 바비와 켄이 웃겨서 영화관에서 몇 번이나 웃음을 참지 못했고 사이사이 비꼬는 유머가 가득한 유머러스한 영화라고 봐도 된다.
그렇지만 이 두 영화는 그동안 겪었던 불공정한 일을 상기시키는 영화였고, 그때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우리의 잘못이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계기였다. 이런 게 예술의 역할이지 않나. 아무리 상업성을 띄더라도 이런 영화들이 나오는 게 반갑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멘탈과 바비는 제 역할을 다 했다. 더 바랄 수 있었지만 이만하면 됐다고 주변 사람들한테 추천할 수 있는 영화. 그런 영화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