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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갱 Aug 14. 2023

격렬한 통증은 결국 하나만 남는다.

어느 순간 하나의 고통만 남는 지점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함께.

얼마 전 계단에서 크게 넘어졌다. 그것도 아주 크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중이라서 쓰레기를 안고 떨어졌다는 점이고, 나쁜 점은 쓰레기가 플라스틱 옷걸이를 비롯한 딱딱한 플라스틱 쓰레기만 두 봉지라 오히려 쓰레기에 부딪혀서 생긴 상처가 큰 점이다. 턱도 살짝 찢어지고 양쪽 어깨와 팔꿈치는 그대로 높은 높이에서 체중을 다 받아서 근육과 인대 타박상이 심해 팔이 접히지도 않을만큼 부었다. 턱은 그래도 한두바늘 꿰매고 나서 그저 그랬는데 팔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어떻게 하질 못하고 그저 진통제를 먹으며 붓기가 가라앉는 걸 기다려야 하는게 가장 불편했다. 오히려 처음 하루 이틀은 음, 이정도면 그 높이에서 떨어진 것 치고는 운이 좋군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양치질을 하려고 팔을 올리는게 힘들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일주일 정도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면서 다른 일정들도 다 미뤄지게 되고, 그로 인해 짜증은 났지만 신기하게도 돌아보면 조급함으로 인한 패닉이나 다른 증상이 없었다. 신체적 고통이 정신적 고통을 이긴 걸까. 다른 이유로 받던 스트레스도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팔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데, 몇 달 뒤가 뭐가 문제고 일정이 한 달 쯤 미뤄지는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오히려 그냥 팔이 떨어져 나가거나 이 고통이 조금이라도 잠잠해지기만 바라게 되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수면제는 먹어왔지만, 확실히 평소보다 발 밑이 꺼지는 기분이라던가, 눈 앞이 깜깜해지는 순간들이 적은 건 신기했다. 그런 것을 느낄 여유가 없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다른 곳으로 신경이 더 집중시키라는 말이 감정공부학교에서 강조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긴 하다. 사람은 두 가지 격렬한 통증이나 감정을 동시에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집중이 다른 곳을 향해 있을 때와, 다른 고통을 향해 있을 때는 분명히 다르다. 다른 고통을 향해서 하나만 느끼는 경우에 찾아오는 외로움은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며칠이 지나있고, 아무도 돌봐줄 수 없으니 방은 다시 엉망이 되어 있고, 이러나 저러나 아파도 꾹 참고 해내야 하는 일들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해칠때도 심리적 고통이 이미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있는 상태이고,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구해달라고,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나 스스로는 지금 이 상황을 혼자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력함이 밀려오는 그런 외로움이었다. 세탁기를 한 번 돌리는 것 조차 무력함에 그저 빨래더미를 바라보고 있는, '하기 싫다'라는 느낌과는 다른 그런 느껴본 사람만 아는 무력함. 하지만 동시에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같잖은 자존심으로 버티고 또 버틴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 처럼 고통과 외로움을 오롯이 혼자 짊어지면서. 그리고 그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손가락이라도 움직여보려고 마음먹지만 그럴때마다 구역질이 올라온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격렬한 통증은 하나만 남는다. 그 하나만 남는 지점에서 찾아오는 외로움이 깊어지면 신체적 고통을 잊고 심리적 고통으로 넘어가게 되고, 그 외로움이 신체적 고통으로 넘어가게 되면 잠시 마음을 잊을 수 있는 것 처럼. 외로움과 함께 항상 어느 한 가지의 통증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언젠가는 이 짐을 나눠질 누군가를 영원히 기다리면서도 절대 나눠지지 않을거라는 걸 스스로 아는 아이러니 속에서 오늘도 구역질을 참아가며 하나라도, 단 하나라도 지금보다는 나아지려고 애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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