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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e May 28. 2020

직장인과 작가 사이에서

투잡 체험기

휴직 기간 동안 글을 썼고 출간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휴직이 끝나 회사에 돌아온 나는 본의 아니게 투잡을 갖게 되었다. 출간 절차에 무지했던 탓이다. 초고는 초고일 뿐, 출간을 하기 위해 원고는 계속 발전해야 했다. 나는 복직하여(타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연고 하나 없는 부산에 혼자 살 집을 구하고, 새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집에 돌아와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원고를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했다. 뿐만 아니라, 출판사에서는 얼마 후 한 가지 계약을 더 제시했다. 몇몇의 작가들이 함께 하는 여행 에세이를 기획 중인데 나에게도 그 기획에 참여해달라는 것이었다. 각각 다른 주제로 여행과 관련된 에피소드 여덟 꼭지를 써달라고 했다. 프로 작가들 틈바구니 속에서 초보 작가(아직 출간도 하지 않은)인 나에게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하면서도 혹여나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나를 좋게 봐주셨으니 이런 기회를 준 것이겠지? 브라질에서 배운 똥 배짱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은 한쪽으로 치운 뒤 실익을 챙기기로 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직장인과 작가 생활을 동시에 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생업'을 마친 뒤 퇴근 후에는 글을 쓰는 작업을 하는 생활 말이다. 투잡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직접 경험해본 뒤에야 이 세상의 모든 멀티잡러들에게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낯선 지역에, 낯선 사무실에, 전무후무한 코로나 19라는 사태로 늘어만 가는 회사 일까지. 휴직한 2년 동안 쓰고 싶을 때만 글을 쓰며 백수 생활을 즐겼던 나의 일상이 급작스럽게 바뀐 것이 좀 버거웠다. 이에 더해, 집에 돌아와서까지 다시 한글 프로그램을 켜야 하는 작가 일이라니.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걸까? 아니면 다들 이렇게 사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쉬어서 감을 잃은 걸까?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찌 되었든, 마감 기한까지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에 조급함을 느낀 나는 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뒤로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나는 마감 기한은 꼭 지키고 싶었다.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밤 시간밖에 없어요. 그러니 봐주세요."라고 말하기가 죽도록 싫었다.


나도 우리집 고양이처럼 격렬하게 멍때리고 싶었다.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주어진 상황도 열악했다. 브라질에서부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삿짐과 남편이 없는 집은 휑했다. 서울에 있는 남편과는 주말마다 만나는데, 우리는 서로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한 주는 서울, 다른 한 주는 내가 있는 부산. 이렇게 번갈아가며 만나기로 했다. 이와는 별개로 또 다른 곤욕스러운 일이 있었다. 원래 나는 듀얼 모니터와 별도의 키보드로 작업을 하곤 했는데, 아직 짐이 오지 않은 탓에 작은 노트북으로 글을 써야 했다. 엔터도 잘 눌러지지 않는 오래된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작가라는 직업을 우습게보는 것 같아 새로운 노트북을 샀다. 평일 낮에는 회사 사무실에서, 주말에는 월 2회씩 왕복 여섯 시간을 기차 안에서 보내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나는 손에 익지 않은 새 노트북을 들고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일을 했다. 마감 시한은 빠르게 다가왔다. 나름 쉬지 않고 일을 해서였는지 기한을 맞춰 원고를 제출할 수 있었다. 아, 끝났다. 끝난 건가? 나 이제 좀 쉬어도 되나?



며칠간 평온한 일상을 즐겼다. 퇴근 후 집에서 밀린 드라마를 보며 치킨도 시켜먹었고, 장도 잔뜩 보아 요리 실력을 틈틈이 쌓아보았다. 세상에!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후 오타 확인 등등 사소한 작업들도 있었지만 이미 한번 힘들게 굴려진 나는 '이 정도쯤이야' 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그때는 그토록 힘들었는데, 지금은 어떤 요청이 와서 다시 퇴근 후 일을 하는 시간이 오는 것이 반가웠다. 이 일이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나는 ‘생업’인 직장인과 ‘좋아하는 업’인 작가 중 그 무엇도 버릴 수 없기에 투잡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것 같다. 이 도전에 굿럭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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