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가 시니어가 되기까지
최근 마카롱 베이킹 수업에 다녀왔다. 1, 2시간이면 달콤한 마카롱을 먹어볼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5시간 뒤에서야 마카롱을 먹을 수 있었다. 그간 나는 요행을 부리며 살아왔는데, 베이킹 수업에서는 그런 요행을 부릴 수 없었다. 반죽이 부풀고, 마카롱 꼬끄를 굽고, 식히고. 거쳐야 할 과정도 많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 않나. 오랜 기다림 끝에 먹은 마카롱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마카롱이 이렇다면, 발효빵은 더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천연 발효빵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다. 인내하고 기다린 자만 맛볼 수 있다는 천연 발효빵. 인공 효모 이스트를 빼고 시간과 인내를 더한다. 이 묵직하고 깊은 풍미를 내는 발효빵은 반죽이 부풀어 오르기까지 알반 빵보다 5배 이상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풍미가 뛰어나고 훌륭한 감칠맛을 가졌기 때문이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훔치려고 한 빵도 바로 이 천연 발효빵의 한 종류인 캄파뉴다. 책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발효빵 레시피들을 보고 있자면 침이 절로 돌면서도, 발효빵을 만드는 오랜 시간을 견디는 저자의 자세에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일도 이 발효빵을 만드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릴 때부터 단기완성, 속성 코스라는 키워드에 환장했었던 나는 첫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뭐든지 빨리 배우고,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하는 성격을 가진 탓에 조그마한 여러 성취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지루했고, 속이 탔다. 어떤 조직이든 회사는 주니어에게 큰 일을 맡기지 않는다. 주니어가 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선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숨에 시니어급의 스킬과 노하우를 갖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소위 짜친다고 하는 일들을 반복하고, 잡무란 잡무는 다 하게 되는 이 시기를 어떻게 잘 보내는가가 중요했다.
발효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빵은 맛이 없다. 주니어 시절이 고되고 길게만 느껴져도 이 시기가 없다면 성장도 없다. 일잘러가 되기 위해선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요령 부리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천천히 성실히 일하는 것, 그것이 회사라는 빵집에서 내가 구울 수 있는 빵이 아닐까. 그렇게 묵묵히 일하다 보면 언젠간 나도 시니어로서, 밀도 높고 깊은 풍미를 가진 일의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글은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