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이제는 치즈를 당당히 한식 재료의 반열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한식의 5대 재료는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그리고 치즈라고. 우리는 모든 음식에 치즈를 올렸으며 심지어 밥 위에도 치즈를 올려 먹는 유구한 민족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생각해 보니 맞다. 어느 음식점에 가도 치즈를 얹은 퓨전 메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치즈 토핑은 기본 토핑 중 하나이지 않나.
그런데 나는 치즈를 싫어한다. 치즈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싫어한다. 아마 많은 이들은 내 갑작스러운 취향 선언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 답하겠지? 그러나 내가 “제가 프랑스에서 좀 살았거든요” 라 말하면 반응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프랑스는 치즈가 유명하지 않나?”, “프랑스인들 주식이 치즈 아니야?”, “엄청나게 다양한 치즈가 한국보다 몇 배는 싸다고 하던데” 등등 프랑스에 있었으면서 치즈를 왜 안 먹어 봤냐고 거의 따지듯이 물어보는 사람도 몇 봤기 때문이다.
느끼해서, 특유의 냄새가 익숙하지 않아서, 입에 남는 느낌이 싫어서 등등 내가 치즈를 싫어하는 이유는 참 많다. 이렇게 치즈 극혐론을 펼치는 내가 유일하게 입에 대는 치즈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fromage ail et fines herbes라는 치즈다. 사실 이건 치즈라고 일컫기도 좀 애매하다. 크림치즈의 한 종류로 일반적인 치즈보다 숙성 기간이 짧기 때문에 특유의 꼬릿한 냄새나 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이 치즈도 내 자의로 먹은 건 아니다. 반강제로 먹어 본 치즈인데, 사정은 이렇다. 함께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친구 중 한 명이 치즈의 나라 프랑스에 온 주제에, 그것도 그 도시를 대표하는 치즈가 있음에도 입에도 대지 않는 나를 가엽게 여겨 던져준 치즈가 이 마늘 치즈였다. 그녀는 갓 나온 따끈한 바게트를 크게 찢고 마늘 치즈를 곱게 펴 발라 나에게 하사해 자신의 눈 앞에서 먹으라고 협박했다. 이것 조차 안 먹으면 너는 프랑스에서 유학 할 자격도 없다는 눈빛으로 몰아 붙여 거부할 수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먹어 본 치즈 맛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 보자면 알싸하고 뭔가 익숙한 느낌이 나는 게 좀… 맛있었다…
왜일까? 베이글에 크림 치즈 발라 먹는 것도 안 좋아해서 생 베이글로 씹어 먹던 나였는데, 왜 그건 또 맛있게 느껴졌을까? 치즈를 발라 먹었던 바게트가 따뜻하니 맛있어서? 아니, 이것 보단 한국인의 얼이 담긴 내 최애 향신료 마늘이 들어가 있어서 거부감 없이 쉽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고작 마늘 하나가 들어 갔을 뿐인데, 그냥 치즈에서 고작 ‘마늘’ 치즈가 된 것 뿐인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리고 또 슬프게도 마늘 치즈 같다. (누구는 인생을 초콜릿 상자 같다고 하던데…)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고 짜증나는 거 투성이지만, 그러는 와중 나에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것들 덕분에 아무렇지 않게 어쩌다 가끔은 웃으면서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 나간다. 날 좋은 날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드는 낮잠, 우연히 발견한 내 취향의 노래, 쿠폰과 적립금 영끌해서 산 셔츠…
이런 게 내 인생이라는 치즈에 마늘 같다는 거지.
Boursin의 마늘 치즈가 단연 1위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다. 치즈퀸, 마켓컬리 등에서 Tartare, Madame loik 브랜드의 마늘 치즈를 맛볼 수 있으니 꿩 대신 닭이라도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보길 바란다. 맛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