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한다는 것
처음 이 문장을 곱씹을 무렵, 가장 먼저 떠오른 정의는 회사에서 인정받고 상사의 업무지시에 따라 융통성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동시에 불현듯 뇌리를 스친 건 '난 수동적인 삶을 목표하고 살았는가?' 라는 문장이었다.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에서 저자는 나 자신보다 더 나은 완벽한 사수는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 존재했던 '사수'라는 존재를 '좀 더 쉽게, 덜 귀찮게'라는 핑계로 내가 아닌 남에게 찾았는지도 모른다. 대학시절 창업동아리에 들어갔을때에도 내가 스스로 창업아이디어를 내기보단 이미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싶었다. 또한 현재 대기업에 입사예정인 이유도 스타트업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교육을 받고 싶은 욕망이 큰 파이를 차지했다. 자꾸만 좋은 상사, 완벽한 사수, 체계적인 교육을 찾았던 건 다름아닌 완벽해지고 싶어서였다. 스스로가 아닌 남들의 생각에 짜여진 틀안에서 인정받고 수동적인 내가 되어가면서 말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파고들다보니, 나의 색깔이 아닌 어딘가에 종속되어 획일적으로 그리고 생각의 문이 닫힌 채 살아가는 축 늘어진 직장인 '이성현'의 모습이 나타났다. 누군가의 아래에서 일한다는 것, 조직에 속해 조직의 업무를 한다는 것이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삶으로 연결된다고 결코 생각치 않는다. 다만, 조직에서만 겪을 수 있는 노하우와 내 고유의 색을 적절히 섞어간다면 '나'라는 사람은 조직이 아니더라도 나로써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잘하고 싶다 = 인정받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일을 잘하고 싶은 욕구는 메슬로우의 5단계 욕구 중 '자아의 욕구'이다. 인정받는 것만큼이나 다시 날 열정에 태우는 요인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혹은 무너지더라도 계속 나아가기 위해선 목표가 아닌 목적을 반드시 함양해야할 것이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 인정을 받기 위한 목적 즉, 나만의 가치관이자 내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목적이 될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엔 대학생들은 무엇을 하고싶은지 궁금했고, 대학생시절엔 회사원들은 어떤 목표가 있는지 항상 물었다. 내가 현재 목표하고 있는 것이 해소되거나 사라진다면 행복함과 동시에 공허함, 그리고 불안함이 닥쳐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목적이 중심이 되지 않은채 난 이 불안함과 두려움을 맞이하지 않으려 미리 준비하고 쉴새 없이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물론 이 과정에 있어서 새로움을 맞게 해준 상황과 사건들도 있었고 그와 동시에 고장이 찾아왔다. 쉼없이 달리는 것보다도 삶의 방향성을 체크하고 성찰하며 인생을 살아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멘토, 나는 어떤 멘토가 스스로에게 되어줄 것인가?
다양성으로 가득 찬 생각의 관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에게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 바운더리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입밖으로 꺼내고 딱딱하게 굳어진다면 고정관념 혹은 꼰대가 되는 것이다. 결국 더 넓은 생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창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험의 바운더리를 늘려나가야만 하고 그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것은 '독서', 그리고 '독서이후의 행동'이다. 아직은 회사 내에서 너무나 막내이기 때문에 적응의 기간과 조직과의 어우러짐이 중요한 시기이지만서도 '독서'를 통해 나의 행동과 모습을 성찰하고 삶에 녹여보려는 다짐을 굳게 하는 하루이다.
가장 확실한 멘토는 누군가가 아닌 '나'라는 사실을 잊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