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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mmersea May 08. 2022

대학원생의 필기구는?

옆에 있는 것.

  초등학교 때 필통은 형형색색의 필기구 때문에 늘 빵빵했다. 필기구 종류가 너무 많아 필통 지퍼가 견디다 못해 터지는 날도 있었다. 점점 필통의 사이즈가 커져 나중에는 필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요즘 미니 백 같은 사이즈 필통을 들고 다녔었다. 그 많은 필기구를 갖고 필기구의 사전적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필기는 열심히 하지 않아 아빠에게 놀림을 받은 적도 많았다.      


“필기구가 그렇게 많은데 꽁~부는 안 하나?”      


안 했다. 향을 열심히 맡았다. 당시 유행했던 필기구는 ‘미피 펜’이었다. 초등학생 눈에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귀여운 토끼 캐릭터를 갖고 있었는데 이 귀여운 캐릭터 펜은 심지어 향이 났었다. 향이 너무 좋아 빙글빙글 선을 그려 향을 맡기도 했지만, 향에 취해 머리가 아픈 적도 있었다.      


  단출하지만 팬시하게.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3 볼펜, 노란색 형광펜, 그리고 테이프 화이트만 들고 다녔었다. 더는 향이 나는 필기구를 선호하지 않고 볼펜 심이 얇디얇은 볼펜을 선호했다. 얇은 심으로 대표적인 브랜드는 ‘하이-테크였다. 하지만 실수로 볼펜을 책상에서 떨어트리면 심장 떨리며  부분을 들여다봐야 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볼펜 심이 꺾이거나 안으로 들어가 잉크가   남아 있어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취민인 볼펜이었기 때문이다. 볼펜 가격도 있는 편이라  눈물을 머금고 다시 구매했었다. 필기    적었을  더는 화이트 잉크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테이프 화이트도 용돈을 잡아먹는 필기구였었다. 죽죽- 테이프를 긁다 잘못하면 테이프가 엉키거나 테이프가 말리지 않고 삐져나올 때가 있는데 고치겠다는 생각을 갖고 어쭙잖은 실력으로 화이트를 뜯으면 그날은 리필용 테이프로 갈아 끼워야 하는 날이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새 필통과 볼펜을 구매했었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 중에 필통을 열 일은 없었다. 대부분 필기는 노트북과 패드를 사용하고 연구 노트 작성은 연구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사용했다. 현장에 나갈 때도 굴러다니던 볼펜 몇 개를 현장 가방이 필통인 것처럼 집어넣고 필요할 때 가방을 뒤적인다. 이렇기에 필기구에 대한 애착이 대학원에 와서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제 더는 필기구에 관심이 없어진 줄 알았지만, 박사과정의 막바지가 되어가니 욕심나는 필기구가 생겼다. 이름이 적힌 만년필이다. 분명 사용할 일이 많진 않겠지만 내 마지막 필기구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때부터 구매했던 그 많고 많던 필기구들은 어디 갔을까? 어느 날 본가에 가니 엄마가 저것 좀 처리해달라며 작은 박스 하나를 가리켰다. 그 안에는 지금껏 내가 구매했던 필기구들이 모여있었다. 아빠가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고 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처리하지 않을 것을 인지했기에 자리를 잡고 행주로 필기구들에 쌓인 먼지를 제거하고 종이 위에 잉크가 잘 나오는지 확인 후 상태 좋은 아이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조용히 연구실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며칠 후 책상을 보니 그 많고 많던 필기구들이 사라진 상태였다. 필기구들이 버려지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었음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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