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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mmersea Jun 06. 2022

에어컨을 틀지 않는 대학원생

전 괜찮습니다.

  부모님은 에어컨을 잘 틀지 않으셨다. 에어컨이라는 가전은 거실 모서리에 배경처럼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에어컨을 틀어준 날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평소에는 절대 에어컨을 틀지 않으셨을 것이니 분명 열대야가 심한 날이었을 것이다. 에어컨을 틀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언니와 나는 일사불란하게 작은 틈도 허용하지 않을 기세로 집안에 있는 문이란 문은 다 닫았다. 안방 문, 작은 방 문, 베란다 문, 화장실 문, 창문... 그리고 맑고 경쾌한 소리를 부모님이 깔아주신 모시 이불 위에서 에어컨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삐빅."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 천국이 있다면 아마 에어컨을 튼 그 순간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센스쟁이 엄마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수박 한 통을 꺼내 우리 앞에 대령해 주셨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옹기종이 모시 이불 위에서 수박을 먹으며 열대야를 이겨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대한민국에 살며 머리를 가장 많이 써야 하는 고등학생 3학년이 되었을 때에도 가족들은 일정 시간과 온도가 되면 작은 방에 모였다. 평소 여름 날씨에는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선풍기를 틀며 공부를 했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작은 방 천장에 자석처럼 붙어있는 작은 에어컨을 틀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 고3 학생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심하게 떠들지는 않고 에어컨 아래 벽에 다리를 올려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발가락 끝이 서늘한 공기 때문인지 피가 올라가지 못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찌릿 한 느낌을 받을 때쯤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틀어 더위를 피했었다.  


  에어컨은 정말 더운 날이 아니면 틀지 못했다. 집에서는 에어컨보다는 선풍기 위주의 삶을 살았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도 에어컨은 중앙 컨트롤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파워 냉방 혹은 희망 온도를 18도로 설정해도 여름철 에어컨 적정온도에 맞춰 틀어졌다. 물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지 못한다는 것에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입을 모아 선생님께 너무 더워 공부를   없다며 우는 소리를 했었다. 그리고 집에서는 에어컨이 있는데  틀지 않냐며 화를 내기도 했었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다. 내가 조금 불편한 것을 참으면 지구에게 이롭다."


  어릴 적 에어컨을 틀지 않아 불만이 많았던 나도 이제는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다. 어렸을 때 아빠의 말이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여름에 길을 걷다 보면 매장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매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아스팔트의 효과로 더 더워진 길 위에서 에어컨 바람을 잠시라도 쐴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다. 에너지를 이런 식으로 낭비하고 에어컨을 틀어 발생하는 열로 주변이 더 더워진 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인데.  


  한 여름 연구실은 내가 어느 계절에 머물고 있는지 헷갈리게 만든다. 분명 땀을 흘리며 학교에 도착했는데 연구실 문을 열면 사람들이 긴팔을 입고 있다.  나는 슬그머니 에어컨 리모컨을 들어 온도를 올리고 바람 강도를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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