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은 장기간 지속된 억울감과 스트레스가 적절히 해소되지 않고, 분노, 불안 등의 심인성 증상과 가슴 답답함, 상열감, 목의 이물감 등의 신체 증상을 야기하는 증후군을 말한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도 한국 문화와 관련이 있는 분노 증후군으로 등재됐다.
화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감정을 잘 억제하는 사람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희생하고 자아실현의 기회를 잃었던 중년 여성에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여성호르몬의 분비 변화가 급격히 나타나는 폐경기 즈음에는 각종 갱년기 증후군이 동반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 대응력 저하로 화병의 발현 양상이 보다 뚜렷해지기도 한다.
화병은 한방 신경정신과 학회에서 제시한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를 통해 합병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1. 내 삶은 불행한 편이다.
2. 한스러워지는 때가 있다.
3. 내 인생이 서글퍼진다고 느낀다.
4. 나는 서러움을 느낀다.
5. 나는 억울하게 느낀다.
6. 나는 신경이 아주 약해져서 마음을 가눌 수 없다.
7. 나는 손발이 떨리고 안절부절못한다.
8. 나는 나 자신에 실망할 때가 많다.
9. 얼굴에 열이 자주 달아오른다.
10. 가슴속에 열이 차 있는 것을 자주 느낀다.
11. 무언가 아래(다리 또는 배)에서 위(가슴, 얼굴, 머리)로 치미는 것을 자주 느낀다.
12. 화가 나면 손이 저리거나 떨린다.
13. 소화가 잘 안되고 체하는 편이다.
14. 몹시 피곤하다.
15.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 일반적으로 위 질문에서 7개 이상에서 '그렇다'라고 체크를 했다면 화병을 한번 의심해 보아야 한다.
화병은 보통 단계별로 증상이 변화한다. 분노기, 갈등기, 체념기, 증상기의 네 단계를 거친다. 분노기는 초기에 분노가 치미는 증상 또는 분노의 폭발이 특징이고, 갈등기는 불안하거나 쉽게 놀라는 등의 정신적인 증상을 보인다.
체념기는 분노를 억누르고 참지만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마지막 증상기에는 오랜 기간의 억울함이 가슴의 답답함이나 얼굴의 열감 또는 목에 걸린 느낌 등의 신체 증상으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시기이다.
대부분 많은 환자분들이 증상기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게 된다. 화병이 만성화가 되면 우울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고, 화병의 분노는 무엇보다도 고혈압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계 질환과도 관련이 크기 때문에 꼭 초기에 치료해야 된다.
한의학에서 화병은 정신과 감정을 주관하는 심장의 기능이 장기간의 울화와 스트레스로 인해 과열된 상태로 본다.
평소 쌓인 ‘화’는 우리 몸에서 ‘열’의 성질로 바뀌게 되고 이는 우리 몸의 자율신경을 조율하는 심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도한 열은 심장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고, 갱년기로 인한 호르몬 변화까지 겹치면서 갱년기화병과 이로 인한 여러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겪게 된다.
특히 화병은 소화불량, 가스 팽만 같은 소화기 질환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기울증’이라고 하여 ‘기가 막혀 있다’라는 표현을 하며, 담적과 연관이 있다. 즉, 스트레스 때문에 담적이 생기고, 더불어 갱년기 증상과 화병이 동반될 경우 담적을 개선해 주는 처방을 하면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
양방에서는 여성호르몬의 보충제를 통해 갱년기 증상을 개선한다. 하지만 자궁, 유방에 종양이 있는 경우 호르몬 처방이 어려울 수 있고 장기적인 호르몬제 복용은 다른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한방에서는 호르몬의 보충뿐 아니라 생식 기능을 조절하는 신장, 혈액순환과 열 조절에 관여하는 심장, 간 기능 등 여러 장기의 불균형을 개선하여 전신의 혈액순환을 정상화하도록 하고 있다.
화병은 오랜 시간 지속된 관계적, 심리적 억압에 기인한 질환인 만큼 정신의학적 문제와 다양한 신체적 문제를 면밀히 살펴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치료로 접근해야 한다. 울화를 유발하는 환경 및 원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더불어 개개인의 증상과 체질을 고려한 한약과 침구 처방으로 신체적 증상을 해소하고, 충분한 면담을 통해 심리적 억울함을 풀어나갈 수 있다.
또한 평소 스트레스가 많은 분들이나 갱년기 화병, 우울증이 있는 분들의 경우 열이 쌓일 수 있는데 이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져 있다는 것으로 심화가 쌓인 상태에서는 열이 계속 위로 올라 혀에 영향을 끼치면서 혀가 쉽게 마르고 침분비도 적어지게 된다. 특히 위장의 기능과 운동성이 저하되어 소화도 어려워지게 되고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미각 이상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소화 기능을 향상시키고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먼저 위장의 운동성과 기능을 회복하고, 심장과 비장의 열을 내려주어 항진된 교감신경을 이완, 부교감신경을 촉진시켜 자율신경계가 안정화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규칙적인 수면과 무리하지 않은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 구강 점막을 자극하는 짜고 맵고 신 자극이 강한 음식은 피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여 면역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상으로 화병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갱년기화병은 방치할 경우 자칫 고혈압 등 심혈관계 질환은 물론 우울증 등 다른 정신적 문제로 악화될 수 있어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과열된 심장을 가라앉혀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맞춰주고, 담적을 개선하여 위장의 기능을 강화하면 원활한 감정 조율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한의원에 내원하여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