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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Feb 18. 2024

갑작스러운 문자.

어느 날이었다. 그 문자를 받은 것은.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 같이 술을 먹고 힘든 시절을 공유했던 친구에게서 너무 오랜만에 문자가 왔다. 아마도 내가 결혼한 뒤 아이를 셋 낳고 정신없는 삶을 사느라 바쁘게 된 후로부터였을까. 아니면 그 친구가 정상적인 회사 생활을 접고 수학 학원을 차려 원장이라는 삶을 산 뒤부터였을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게 그 친구는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조금 '시니컬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그리고 역설적으로 '가장 나 다운 모습으로 있게 지켜봐 주는 태도로' 나를 자유롭게 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전화해도 그다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냥 그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또 제일 가까운 느낌의, 내 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을 함께 한 유일한 친구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던 그였다. 

그런 그로부터 근 6-7년 만인가에 문자가 왔다. 그것도 저녁 10시에. 

난 웬일이지? 결혼한다는 건가? 라며 반갑게 문자 내용을 열어서 봤다. 


"XXX군이 영면에 들어 내일 발인합니다. oo 병원 xx 호실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길 바랍니다." 


난 얼어붙어서 잠시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 너무 오랜만에 주변 이웃들에게 그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같이 수학 과외 전단지 붙이러 다니던 대학시절 이야기를 꺼냈고, 수학 과외가 필요하면 내 친구가 있노라 이야기를 했다. 

나는 요즘 힘이 들어 오랜만에 머리를 커트를 쳤고, 내 삶을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몰라,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해봐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나 시니컬하지만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였기에. 인생 또한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로 그래도 국내에서 나가던 대기업 파트장에서 '전업주부'로 인생을 재설정해서 인생조차 정신없고 힘들던 시기, 그때에 문자를 받은 것이었다. 


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하는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더 가까운 사람으로 치자면 나의 친오빠가 오래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번엔 또 느낌이 색달랐다. 굳이 말하자면 색다른 느낌의 슬픔이랄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빛깔의 감정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편하게 느꼈던 친구가 갑자기 또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냥 정신없이 무조건 내일이 발인이라니 그전에는 가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맡기고 그 장례식장으로 친구들과 함께 향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그 어머니가 작은 쪽방에 갇혀 울다 잠들었다 하셨다. 나는 감히 그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근 20여 년 전 다 큰 아들을 잃고 정신을 반쯤 놓았던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했고, 내 친구가 그의 어머니에게 어떤 아들이었는지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난, 두려웠다. 그 슬픔의 크기가. 그리고 그 절망감의 깊이가. 물론 내가 들어가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면 그 어머니는 더 크게 울부짖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비겁하지만, 난 그 슬픔과 절망을 감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한 번 겪어 보았고, 그 시절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약해져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 고등학교 시절 절친의 어머니를 만나 뵙지 못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동창들과 내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식장에서 만나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 사는 근황들을 물으면서, 서로 하나도 안 변했다 , 아니 변했다, 안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상하게 허리가 뻐근해져 왔다. 목 뒤까지 뻗뻗해지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제 가봐야겠다. 나 허리가 너무 아파.. 

그렇게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다른 남자 동기가 외쳤다. 


너 우리 회사 다니지? 


아. 아니, 나 오늘 퇴사했어. 몰랐구나? 나 이제 그냥 직업 없는 주부야. 


씁쓸한 웃음을 뒤로한 채 돌아 나오면서 생각해 보니 그랬다. 시험 봐서 들어갔던 특수 고등학교. 그 1학년 학생들이 모인 자리, 다들 대기업, 공사, 공무원, 한의사, 사업가, 건축가 등 직업이 번드르르했다. 다들 사회적으로 한 자리씩 꿰차고 있었다. 그런데.. 아.. 난 직업이 이제 없구나. 그냥 나는 이제 아이 셋 엄마에 누군가의 아내이자 아줌마로 남겠구나. 이제 사회적 역할은 이곳에서는.. 나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더 이상해졌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근하게 느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그 장례식장에서 하게 된 이상한 동창회(?), 그리고 거기에서의 나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자각. 그 셋의 콤비네이션의 시너지 효과는 상당했다. 집에 돌아온 그날 밤, 일이 터졌다. 


난 그날 밤 급성 허리 통증으로 일어나지 못했다.
아니, 내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비명을 질러댔다. 
조금도 움직일 수도, 뒤집을 수 조차 없었다.  
허리를 쓰지 못한 채, 응급 상황으로 동네 병원에 실려갔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어린아이들 셋과 함께. 


그 날, 나는 무척 두려웠다. 내 몸을 영영 쓰지 못하고 그대로 장애인이 되는 구나 느꼈다. 

나는 남은 평생을 이렇게 식물인간처럼 온 몸의 근육을 쓰지 못하고 그대로 하반신 마비가 되는구나.. 라는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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