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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Mar 10. 2024

엄마 사용법을 아는 아들

일요일 저녁이 끝나갈 무렵, 밖에 있던 호링이가 전화했다.

「엄마 지금 쉬고 계세요?」

「어? 그렇지」

나는 하던 일이 있었지만, 아들이 내게 바쁜지 물을 때는 무언가 부탁할 게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저 집에 거의 다 왔는데요. 소화할 겸 좀 산책하려고요. 혹시 같이 가실래요?」


옷을 챙겨 입으며 호링이와 걸으러 나간다고 하자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 좋겠네. 산책하자는 사람 있어서. 아들이 엄마 사용법을 잘 아는 거 같아」


호링이는 그날 학교 선배와의 만남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어 했다. 아들은 이야기를 마치더니 누군가에게 설명하면서 머릿속이 정리되었다며 홀가분하다고 했다. 나는 가벼운 외투를 입고 나갔던 터라 금방 한기를 느꼈지만, 이야기를 끊지 않으려고 기다렸다가 말을 꺼냈다.

「호링아, 너무 춥다. 나머지 얘기는 집에 가서 차 마시면서 할까?」

「그만 들어가자. 근데 얘기 다 해서 차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엄마가 산책을 좋아하니 같이 걸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성토대회 끝났으니 티타임은 거절하는 게 깍쟁이 짓일까? 남편은 호링이가 엄마를 이용한다며 빈정댔지만, 내 눈에는 선을 지키며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을 챙기는 호링이가 나쁘지 않게 보였다.     


돌돌이와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학기 말이라 기숙사에서 짐을 빼는 시기가 바로 다음 날로 다가온 때였다. 돌돌이는 기말고사를 치르느라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있었다. 며칠 전 이사와 관련해서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었을 때는 없다고 하더니 아침에 확인해 보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엄마 이번 학기에 제가 룸메이트들보다 먼저 나가서 간단하게 선물 남기고 가려는데, 뭐가 좋을까요? 주문하기 늦은 감이 있지만, 혹시 아이디어 있으시면 공유해 주세요」

이번 학기에 돌돌이는 고향과 전공이 다른 세 명의 룸메이트와 같이 지냈다. 전해 듣기로는 돌아가며 과일 한턱 내기, 생일 챙겨주기 등 소소하게 이벤트를 열었다고 했으니, 한 학기 동안 친해졌을 것이다. 시험 기간에는 룸메이트가 방에 있는 시간이 드문데, 돌돌이가 제일 먼저 이사가 결정되어 마지막 인사를 못 하게 되는 게 마음이 쓰였나 보다.   

   

아끼는 이들을 챙기려는 발상은 좋았는데, 온라인 주문을 하려니 배송 시기가 늦고, 시내로 쇼핑을 하러 나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돌돌이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선물을 찾는지 물어보니, 부담 느끼지 않을 가격이면서, 부피가 작고, 받으면 기분 좋은 선물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집 근처 상점에서 수제 초콜릿을 사서 다음 날 차에 싣고 가면 어떨까 하고 말했다.

「오, 그거 좋네요. 사실 처음부터 엄마한테 적당한 선물을 구해 달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제 일을 엄마한테 넘기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아이디어만이라도 얻으려고 했거든요. 근데 초콜릿이 아주 괜찮겠어요. 룸메이트들 시험 기간에 힘내라고요」

아들한테 선물 비용을 받지 않았으니, 심부름하고 손해 본 셈이지만, 입대 전에 주변 정리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보기 좋았다. 이것 역시 남편 눈에는 돌돌이가 엄마를 이용했다고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일 만큼은 ‘엄마 찬스 쓸 수 있을 때 쓰는 거지’하고 넘어가는 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Photo Credit:  https://www.pexels.com/ko-kr/photo/1721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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