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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Apr 14. 2024

일요일은 푹 자야겠어요

   호링이가 다니는 학교는 대전에 사는 학생과 타 지역에 사는 학생이 섞여 있다. 기숙사 생활이 원칙이지만 기숙사가 문을 닫는 의무 귀가 주말에는 모두 학교를 떠난다.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는데 꼭 대전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거나 집이 아주 먼 경우는 인근에서 머물기도 한다.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사는 호링이는 종종 친구들을 데려온다. 아이들은 금요일 오후에 왔다 일요일 저녁에 간다. 학업 스트레스가 있는 고등학생에게 이런 주말을 슬립오버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각자 할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보드게임을 하거나 킥보드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등 틈틈이 즐거움을 누린다. 나로서는 고등학생 세 명의 음식을 준비하고 침구를 챙기는 임무가 가볍지 않지만 묵을 곳을 찾는 주변인의 필요를 살피고, 이만저만한 이유로 친구를 집에 데려와도 되는지 정중하게 묻는 호링이가 대견하여 요청을 들어주는 편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작년 이맘때 호링이는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다. 한데 시험 날짜가 의무 귀가 주간과 겹쳤다. 응시 장소가 대전에 있는 한 대학교다 보니 다른 지역에 온 아이들 상당수가 집에 가지 못하고 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집에는 호링이 친구 두 명이 머물기로 했다. 

  

   시험을 하루 앞둔 금요일 오후, 나는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집으로 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뒷좌석을 향해 물었다.

「얘들아, 내일 시험장에 가지고 갈 신분증 챙겼어?」

한 명이 ‘아 맞다!’를 외쳤다. 신분증이 지갑에 있는데 지갑을 두고 왔다는 거다. 나는 급히 차를 돌려서 사감 선생님이 퇴근하시기 전에 기숙사에서 준비물을 챙겨 오라고 했다. 차에서 기다리며 무심결에 한숨을 쉬었더니 아들이 나를 힐끗 보며 말했다. 

「고등학생도 아직 애들이야. 엄마가 이해하세요」

    친구들이 집에서 자고 간다는 것은 아이들의 임시 보호자가 되는 것임을 실감했다. 토요일 오전, 셋은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볼링장에 들려 뒤풀이를 하고 집에 왔다. 응시자가 종료 버튼을 누르면 합격 여부를 알 수 있는 시험이라서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호링이는 시험이 끝난 후 ‘저 합격했어용’이라는 짤막한 문자를 보냈다. 그날 밤에 아들에게 친구들은 시험을 어떻게 봤느냐고 물었더니 한 명만 합격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 집에 머물면서 시험을 보는 만큼 셋 다 붙었으면 싶었는데 아쉬웠다. 아이들의 시험 준비도는 내 영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집이 먼 친구 두 명이 다녀갔다. 친구들이 오기 전 호링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부담 갖지 않아도 돼요. 제 친구들이 척척 알아서 잘해요. 그냥 밥만 준비해 주세요」 

밥‘만’이라니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나는 금요일 저녁, 토요일 아침, 토요일 점심 식사를 준비한 후 토요일 저녁은 외식하자고 제안했다. 그날 밤 식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저희 내일 아침은 못 먹을 것 같아요. 오늘 아침 먹느라고 일찍 일어났더니 다크 서클이 진하게 생겼더라고요. 아무래도 일요일은 푹 자야겠어요」

   나는 아침잠이 고픈 손님의 청을 받아들여 손님맞이 전략을 수정했다. 일요일 조식 준비가 간단해진 덕분에 나도 편하고 아이들도 잠을 보충했다. 친구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인데 거절하긴 난감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솔직하게 말한 친구 덕분에 호스트와 게스트 모두 만족도가 올라갔다. 


Photo Credit: https://www.pexels.com/ko-kr/photo/278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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