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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Apr 23. 2024

닭백숙, 치매 걸린 할머니의 기억

39. 닭백숙

"안 먹어."


꼬맹이 하나쯤은 충분히 들어갈만한 커다란 들통에 한약재 몇 가지를 넣고 뽀얗도록 우려낸 닭백숙. 스트링 치즈처럼 찢어지는 살코기에서는 터키탕 사우나에서나 볼 법한 따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다 못 해  닭 육수 살짝 굳은 기름장막을 얇은 사 실크 커튼처럼 살포시 덮고 있다.


우리집 닭백숙은 고생으로 끓인 음식이다. 본인의 팔을 증기로 덥혀가며, 시간 동안 스뎅 국자를 들고 느끼한 기름을 걷어내시는 어머니 덕에 만들어지는 메뉴다.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프리미엄 치킨 스프다. 그러나 할머니는 드시지 않는다.


"할머니가 어데 그런 거 먹는 거 봤간?"



어느덧  아흔이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할머니는 비슷한 나이대의 할아버지와 만나 결혼하셨다. 그 시절 대부분이 그랬듯이 중매로.


복불복이었던 것치고는 꽤 운이 좋으신 편이었다. 할아버지를 만나셨으니 말이다.


남존여비가 기본이었던 시대. 북어와 여편네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한다는 말이 속담이랍시고 돌아다니던 때였지만, 할아버지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뜨신밥이 있으면 이불장 속에 꽁꽁 숨겨두었다가 할머니를 챙겨주셨고, 몸에 좋다는 게 있으면 할머니를 줘야 한다며 천 리 밖이어도 한 달음에 다녀오셨단다. 시대를 한참 앞서간 스윗남이었던 셈이다.


할아버지가 손수 하셨던 게 또 있다. 바로 식재료 손질이다. 특히 고기 손질이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지던 시절이었다. 허나 어쩌겠는가. 당시만 해도 여리여리했던 할머니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던 그 시절 고깃덩이를 만지지도 못 하셨는데.


개를 잡거나 닭 목을 꺾는 일은 전적으로 할아버지 몫으로 남았다. 할아버지가 잡은 신선한 고기는 할머니의 손을 거쳐 밥상에 올랐다. 그게 일상이었다.



그 날도 그랬을 거다. 평소와 다름 없이, 할아버지는 마당에서 그 날의 식재료를 준비하고 계셨을 거다.


꼬옥꼭꼭 거리다가

금방

.


그 날의 소리는 그랬을 거다. 키우던 닭 한 마리를 해먹으시던 날이었으니.


다른 날과 달랐던 건, 할머니의 시선이었다.


-

하고 죽는 닭과, 하필 할머니의 눈이 마주쳐버린 거다.


웩-


할머니는 헛구역질을 하셨단다. 이미 수도 없이 할아버지가 잡은 닭을 먹어 왔었는데, 사선을 넘는 순간의 닭과 눈이 마주친 게 너무 큰 충격이셨단다.


그래도 식구들 밥은 해먹여야지. 할머니는 닭을 끓이셨다.


식사 시간.


"왜 안 먹어?"


밥상에는 듬성듬성 끓인 허연 닭 백숙이 올랐고,


"웨엑-"


할머니는 구역질을 멈추지 못 하셨다고 한다.


"허어, 참"


당혹스러워 하는 할아버지를 앞에 두고도, 할머니의 토악질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콧속을 파고드는 닭냄새가, 그렇게 비릿할 수가 없었단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닭 백숙을 드시지 않는다. 드시지 못 한다.


닭 백숙은 할머니의 트라우마다.



엊그제, 할머니는 동생을 잃으셨다.


1남 3녀, 4남매의 맏누이셨던 할머니는 이제 아래로 두 명의 동생만을 남겨두셨다.


실은 우리 할머니도 녹록지 않으시다. 진작 총기가 다 한 두 눈은 한껏 퀭해졌고, 이제 무언가를 짚지 않고서는 스스로 뉘인 몸을 쉬이 일으키지도 못 하신다.


슬슬 기억도 잃어가신다.

우리 할머니는 치매다.


할머니의 자손들은 조심스럽다. 혹여나, 할머니의 병세가 급해질까 두렵다.


우리는 할머니께 당신 손자의 죽음마저 숨겼었다. 그 묵직한 충격이 행여 견뎌낼 기운조차 없는 할머니의 뇌를 강타할까봐.


그런 할머니가 동생을 잃으셨다. 세상을 떴노라는 연락을 받으셨다.


트라우마. 친동생의 죽음이 할머니께 어떻게 남을지, 할머니 눈에는 아직 핏덩이일 손자놈이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저 바랄 뿐이다. 폭풍 같을 이 충격이, 단지 작디 작은 찻잔 속에 한 가닥 서늘한 바람으로 남기만을.


가능성은 희박한 얘기다. 우리 할머니는 60여 년 전의 닭 잡는 기억만으로도 평생 닭 백숙을 못 드시는 분이니까. 그렇게 순하고 맑은 분이시니까.


그래. 당장 어제도 그랬다. 할머니는 동생 소식을 들으시고는 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못 하셨다. 아들과 며느리의 강권에도, 일체의 섭식을 끊어내셨다.


그래도 바랄 뿐이다. 그냥 이 정도로만, 딱 이 만큼으로만 흘러가기를. 부디 깊은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기를.



우리 할머니는 낡은 고목이다.

작은 충격에도 픽 하고 쓰러져버릴, 썩은 나무다.


그러나 그 고목의 쓰러짐은 분명 내게 거대한 트라우마로 남을 거다.


그 순간이 내게 왔을 때, 나는 내 일상을 어디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회사? 못 다닐 거 같은데.

밥? 못 먹을 거 같은데.

눈물? 못 참을 거 같은데.


할머니,

보고 싶을 거 같은데.



이름 없는 닭 한 마리의 죽음은 할머니에게 닭백숙이라는 트라우마를 안겼다. 할머니의 죽음은 내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길까. 그 트라우마는 내가 견딜 수 있는 흔적일까.


아직 알 수 없다.

영영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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