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약간은 호기롭고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동결 이식 돌입에 관한 글을 썼다. 쿨한 척한 게 아니라 정말 그때의 마음이 그랬다. 그런데 너무 무색하게도 그날 저녁부터 아주 큰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트리거가 된 사건은 엄마의 안부 전화였다.
퇴근 후 저녁 준비 중일 때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평상시와 같이 안부를 물으며 통화를 하다가 엄마가 4주 정도 후 주말에 시간이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아직 먼 일이기에 괜찮다고 무슨 일이시냐 여쭤보니 같이 휴양림에 가고 싶다며, 딱 숙소 예약 가능한 날짜가 그때라고 하셨다. 어차피 한 달에 한 번은 부모님을 뵈러 가니 그때 같이 좋은 곳에서 만나면 좋겠다 싶어 알겠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신난 목소리로 숙소 예약해야겠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아무 생각 없이 저녁을 먹고, 치우고, 야채를 다듬고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소소한 활동을 하다가 소파에 누워 쉬었다. 아까 남편의 일정도 확인했으니 캘린더 앱에 휴양림 일정을 저장하려고 보니 여행 예정일은 동결 이식 예정일 바로 1주 뒤였다.
사실 예전만큼 무슨 일만 있다 하면 난임 카페를 들어가서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시험관 이식 후 1주일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하나도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등산 같은 심한 운동이나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엄마에게 안될 것 같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시험관 이식을 한다는 얘기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달력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나의 이식 일정도 너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회사일 때문에 생리 후 24일째에 이식을 예정하고 있는데..... 너무 늦는 것은 아닌지 정말 너무 신경이 쓰였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동결배아.... 점점 미뤄지는 임신, 출산, 다음 커리어.... 이번에 성공하는 것이 너무너무 간절했다. 아까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상태와는 전혀 다른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남편에게 고민이 생겼다고 말하고 나자 눈물이 줄줄 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생각이 들자 뭔가 억울하고 원통하며 서러웠다. 엄마가 실망하실 걸 생각하니 더 눈물이 마구 났다. 그렇지만 무리해서 진행했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면 그 여행이 원흉 1순위로 지목되고 두고두고 후회될 게 뻔하다. 그리고 임신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부모님들께 알리고 싶지 않다. 결과가 나올 시기까지 아직 멀었는데 계속 걱정하실 것도 마음이 쓰이고, 안 좋은 소식을 들려드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도 원치 않는다. 좋은 결과만 뿅! 하고 알려드리고 싶다.
혼자 누워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생각과 우울한 감정에 빠져있었다.
이식 후 얌전히 지내라고 하는 것은 의학적인 조언이 아니라
나중에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을 때 어떤 일에 귀인해서 후회하게 될 수도 있으니 가급적 특별한 일을 하지 말라는 소리 같다.
그렇게 혼자 끙끙 스트레스받다가 이틀 뒤 오후에 병원에 갔다. 초음파를 보고 진료를 기다리면서 회사일을 조정할 테니 일정을 조금 당길 수 있는지 여쭤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선생님께서는 내 마음을 아시는 것처럼 이식 예정인 주에 있는 임시공휴일에 일정이 되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당연히 된다고 했다! 병원은 임시공휴일에 안 쉬신다며 그날 하자고 하셨다. 선생님과 나 둘 다 좋은 일정을 맞출 수 있어서 기뻐했다! 내막 두께도 상태도 좋다고 하셔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다.
일정이 너무 늦는 것은 아닌지 계속 걱정했는데, 이렇게 바로 해결되다니.... 너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허탈했다. 이게 난임, 임신이지 싶다. 아무리 내가 혼자 걱정하고 머리 쓰고 해도 맘처럼 되지 않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