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ing Trend X Insight
2025년 7월 최근, LG전자는 사상 최초의 시니어 전용 가전인 ‘시니어TV’를 연내 출시한다고 밝혔다. ‘시니어 전용’ 제품답게 글자도 큼지막하게 키웠고 리모콘의 접근성도 향상시켰다. 더구나 같이 살지 않는 자녀들도 부모의 근황을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 기능까지 넣었다고 한다.
‘최초의 시니어 가전’이라고는 하지만, 가전에 시니어 ‘기능’을 넣은 건 그전에도 있었다. 원래 자는 동안 급격한 위급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됐던 스마트워치를 비롯해, 다소 분야는 다르지만 은행 ATM 기기의 글자를 크게 키워 시니어 소비자의 은행 접근성을 향상시킨 신한은행의 사례 등이 그렇다.
골자는 ‘시니어의 가전 접근성’ 향상이다. 나아가 스타트업 쪽에서는 따로 살고 있는 자녀가 부모에게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홈 CCTV를 통해 원격 건강탐지나 이상상황 발생 등을 대비하는 기술이나 서비스까지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연령, 계층을 떠나 디지털 접근성이 향상된다는 건 긍정적인 소식이다. 갈수록 디지털 기술이 더 발전해 나갈 것은 당연하다. 그 큰 흐름에서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점차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시니어 층을 소외시키는 것은 정치적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옳지 않다. 그보다 급격히 노령화되어가는 한국 사회를 비롯해, 글로벌 시니어들이 활발히 가전을 비롯한 디지털 시장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관련 기능이나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게 적절하다.
여기까지는 딱 시니어TV 출시 자체에 대한 평가라 할 수 있다. 다만, LG전자의 제품 그 자체를 떠나 논의하고 싶은 게 따로 하나 더 있다. 시니어TV 자체의 기능이나 작동성 문제가 아니다. 그 점은 국내 선도업체로서 LG전자가 잘 해결해 출시할 문제이기 때문.
관건은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기존과 달리, 사회 문화 등에 적극적인 새로운 노년층 개념)다. 사실 액티브 시니어를 포함해, 최근 늘어나는 노령층은 하나의 세대로 묶기엔 곤란하다. 은퇴 연령인 65세 이상을 노령인구로 간주할 때, 90대 초반까지 ‘노인’으로 잡으면 거의 1세대에 달하는 광범위한 연령층이 만들어진다.
이들을 전부 하나의 그룹으로 묶기에는 그 내부의 편차가 연령대의 폭만큼이나 너무 크다. 이중에는 디지털 기기를 잘 모르고 접근성 문제가 절실한 그룹도 있는가 하면, 디지털 초창기부터 학습해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오히려 어린 세대보다 더 디지털에 익숙한 이들도 있다. 이들은 SNS는 물론, 각종 첨단 디지털 기기와 함께 게임기, 스마트워치 등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를 구매하고 마음껏 즐기며 살아간다.
이런 계층까지 포함할 때, 과연 시니어 제품에 대한 고려가 ‘디지털 접근성’의 문제만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보다 노령 인구에겐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하나 더 있다. ‘고립’, 고독한 노후가 그것이다.
물론 디지털에는 이를 해결할만한 탁월한 접근법까지 이미 마련돼 있다. 바로 디지털 특유의 ‘연결성’,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시계를 약 25년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2000년대 초, 세계는 Y2K의 공포를 갓 벗어나 디지털 붐이 한창이었다. 한국도 IMF의 위기에서 벗어나 IT 비즈니스를 필두로 새로운 먹거리 마련에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에서 개발한 ‘원조’ 기술 중 하나가 MP3 플레이어였다. 조그마한 플레이어에 약 3~4MB 정도면 한곡의 노래를 담을 수 있으니, 젊은 세대가 간편하게 휴대하며 다니기에 딱 좋았던 것이다.
반면, 음악 저작권자들은 불법 MP3 파일 유통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소리바다’라는 거대한 음원유통 앱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불법 공유 시비는 한창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올려지는 파일에 대한 걱정과 이를 재생할 플레이어가 더 싸고 가볍냐, 혹은 구하기 쉽냐의 논쟁을 벌일 때 아예 장을 바꿔버린 플레이어가 있었다. 故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애플이 그것으로, 애플의 주요 혁신 중 하나로 불리는 ‘아이튠즈’가 그것이었다.
원래 아이튠즈는 PC에서 애플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으로 음악을 옮겨 담기 위한 동기화 도구였다. 그러던 것이 비틀즈를 포함한 디지털 음원 공개로 음원 유통 채널이 되더니, 급기야 팟캐스트를 통해서는 ‘음성’으로 제작되는 모든 것을 중개하기에 이르렀다. 파일 동기화를 넘어 음원의 공유로, 다시 공유에서 ‘소리로 중개되는 네트워크’의 세상을 연 것이다.
애플의 핵심 성공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처럼 남들이 기기나 성능에만 신경 쓸 때 이들이 연결된 커다란 세상, ‘네트워크’를 꿈꿨다는 데에 있다. 사실 하드웨어야 처음 나올 때는 혁신적일지 몰라도 나중에 보편화되면 웬만한 기능으로는 이름도 못 내밀 정도로 시장에서 넘치고 차이기 마련이다. 그만큼 수익이 떨어질 것도 당연지사.
네트워크는 다르다. 흔히, 도박판에서 돈 버는 이는 도박꾼이 아니라 장소를 빌려준 호텔이나 여관업자라고 한다. 아이튠즈는 ‘디지털 음성’을 이용하는 전 세계 유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파일을 올리고 나누며 나아가 거기에서 소득까지 올리는 거대한 ‘공유세상’을 만들었다. 디바이스가 돈을 많이 벌까. 아니면 이들이 맞물린 거대한 플랫폼이 더 돈을 많이 벌까.
이런 네트워크 아이디어의 사례는 애플 말고도 많다. 예를 들어 영상공유 사이트인 ‘유투브’가 그렇고, 그전 한국의 싸이월드를 온라인으로 확대한 듯한 ‘페이스북’이 그렇다. 다 됐고 텍스트만 간단히 공유하자는 ‘스레드’와 ‘트위터’도 그렇고, 이미지가 중요한 전 세대의 공유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이 또 그에 해당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것은 다 똑같다. 바로, 네트워크-. 언제 어디서든 어떤 디바이스를 쓰든 – “Anytime, Anywhere, Any Device”는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컴퓨팅에 대한 비전이기도 하다 –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정보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며, 나아가 퍼가는 것까지 무한확산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무수한 경쟁자들 틈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것도 당당히 자신만의 시장을 재정의하고, 글로벌 트렌드를 만들어내며.
이제 유투브는 네트워크를 넘어 거대한 ‘미디어 연합체’이다. 간단히 웃긴 영상을 공유하려던 사이트가 이제는 얼마나 수많은 ‘TV’들을 그 안에 담고 있는가. 말 그대로 디바이스를 넘어선 생활, 세계의 혁신을 담고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디바이스를 넘어선 ‘네트워크’의 세상을 통해.
다시 눈을 돌려 시니어 가전으로 돌아와 보자. 분명 LG전자가 출시한 것은 시니어 연령층도 보기 쉽도록 디지털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가전’ 제품이다.
다만, 이를 사회적으로 보면 그 함의는 조금 달라진다. 마침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해 가고 있으며, 그 중에는 디지털 접근성 개선이 필요한 시니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디지털에 친숙한 것은 물론 리더급인 이들도 꽤 많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는 앞으로 꽤 긴 세월 동안 홀로 고독한 상태에서 ‘네트워킹’을 원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미 이런 이들을 겨냥한 스타트업들도 꽤 많다. 이 중에는 시니어끼리의 만남 주선이나 액티브 시니어를 대상으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까지 있다. 이런 서비스들은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떨어지는 출산율과 급증하는 시니어층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 아닐까.
그 늘어나는 시장을 가전으로 중개할 수는 없을까. TV를 만들어진 콘텐츠를 ‘보는’ 기기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또 다른 고독한 나’로 중개하는 ‘네트워크’로 만든다면 어떨까. 마침 TV는 우리 삶의 가장 내밀한 부분, 바로 내 집 거실에 떠억 놓여서 세상을 우리에게 중개하지 않은가.
방향을 바꿔보자. TV를 세상이 내게 오는 채널이 아니라,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채널로 바꾸어보는 것이다. 물론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LG전자에서 이런 소프트웨어나 플랫폼까지 만들기엔 벅찰 수도 있다. 다만, 이런 모습이 바로 얼마 전까지 가전회사들이 지향했던 IoT, 혹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는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은 디지털과 연계되기 전에, 그 디지털을 이용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전으로 중개되는 거대한 ‘인간’ 네트워크의 모습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서로 떨어진 커플이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을 공유하며 채팅하거나, 자녀들이 부모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도 공유되는 세상 말이다.
상상은 서비스다. 외로운 인구가 TV를 디바이스가 아니라 ‘터미널’로 변화시켜 많이 그 외로움을 덜면 좋겠다. ‘고독 비즈니스’의 새로운 접근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