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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의 묵상, 비아나

18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기 09 - 순례 6일차

아즈퀘타 숙소에서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순례길을 나섰다. 밤새 비라도 내린 것인지 쌀쌀한 가운데 맑은 아침 하늘이 한창 피어 오르고 있었고, 내가 잠든 3층과는 달리 2층 살림방에서는 모녀가 분주한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3층에서 2층 계단을 지나 앞으로 빠져 나왔다. 길가에서 보이는 창문으로 어린 딸이 분주히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 모녀가 곧 다가올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간단히 기도 드리고 출발하려 할 때, 어머니가 나를 발견했는지 2층 창에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낯선 땅에서 느끼는 왈칵거리며 올라오는 따스한 정 같은 것, 우리 모두 나그네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아침 하늘이 붉게 타오르며 하루를 끌어오고 있었다. 붉은 아침노을을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걸음을 걷다가 멈추고 몇 번이나 휴대폰의 카메라 아이콘을 눌렀다. 붉게 물든 하늘이 내 모든 순례길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아 기분 좋으면서도 자연의 신비에 경탄하게 되는 그런 아침이었다.


모녀의 알베르게를 나온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지친 나그네의 하룻밤을 보내게 해준 그녀들에게 감사하며 상쾌한 아침 순례를 시작했다


평원길의 묵상



이후 오후길은 긴 평원길이 이어졌다. 아즈퀘타를 포함해 지금 걷는 길은 포도밭을 비롯해 다양한 농사가 이뤄지는 지대였던 것 같았다. 추수가 끝난 너른 들녘이 있었고, 이제 수확이 다 끝나 잎도 말라가는 포도밭들도 있었다. 한참동안 아무도 보이지 않는 너른 평원과 포도밭 사이 길을 걸으며 나에 대해 생각했고, 원래 출발할 때 생각했던 2가지 질문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했다.


입술은 어느덧 부르터서 검게 말라가는 부분도 있었다. 6일차 행군, 이제는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앉아 있으면 쌀쌀하고 걸으면 땀이 나는 날씨에 매일 20~30km씩 걷다 보니 자연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짬짬이 스틱에 가방을 기대어 놓고 따스한 수프와 간단한 쿠키를 먹으며 쉬었다.


수프는 한국에서 가져온 마른 수프 토막을 아침에 보온병에 넣고 나선 것이었다. 걷다 보면 보온병의 뜨거운 물에 자연 녹아서 수프 물처럼 되는데, 11시나 오후에 출출할 때 마시면 아직 온기도 남아 있고 해서 갈증과 간단한 허기는 쉽게 달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국 수프가 다 떨어졌을 때는 동네 마트에서 간단한 건조 수프를 사서 마찬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서 먹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맛은 한국 수프만 못했다. 그들이 맛없기보다는 한국인인 내 입맛에 안 맞았을 것이다.


식사는 대부분 샌드위치였다. 따스한 빠헤야나 스파게티를 절실히 원했지만, 아쉽게도 순례길 대부분에서 이 2가지 음식을 만나기란 어려웠다. 여름 순례에선 순례객이 많다 보니 이런 메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겠지만, 11월 초겨울 순례에선 샌드위치를 파는 상점이라도 만나면 다행이고 없는 경우에는 동네 슈퍼라도 들어가 긴 바케트 조각을 사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나바라 지역은 와인으로도 유명한 평원 지대다. 가을 추수를 끝낸 들녘엔 한껏 평화로이 노란색 가을 빛깔이 이어졌고, 거의 대부분 홀로 걷는 길에 나만의 묵상이 이어졌다.



순례 초기 하도 식사 때를 놓치다 보니, 이맘때에는 아예 슈퍼나 레스토랑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 오렌지나 초코렛, 바나나 같은 간단한 요기가 되는 식품류를 꼭 확보해 두었다. 너른 들판을 걷다 보면 아무래도 식사를 놓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평원에서 좋은 것은 자신 혼자만의 생각을 온전히 하기 좋다는 것이고, 나쁜 것은 마땅한 쉴 곳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발상을 바꿔 그냥 들녘 전체가 내 길이고 쉴 곳이라 생각해야 한다.


사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다 그렇다. 언뜻 보면 내게 참 안맞는 일도 뒤집어보면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좋아하는 영어 표현 중에 “Half full half empty”라는 말이 있다. 물잔에 물을 절반 정도 채워 놓으면, 긍정적인 이는 ‘물이 절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하지만, 부정적인 이는 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즉, 절반 차 있냐, 아니면 절반이나 비었냐의 관점 차이인데, 물이 절반 있는 것은 똑같을지라도 이를 해석하는 이의 태도가 삶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모처럼 친구와 수다를 떨러 카페에 갔더니 공부하러 온 사람들 때문에 눈치가 보여 수다는커녕 눈치 보며 얘기하다가 커피만 대충 마시고 나왔다고 하자.


커피 마시며 수다 떨러 간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겠지만, 새로 사업을 모색하는 이에게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공부하는 카페를 만들면 되겠다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요새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스터디카페가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긴 평원길을 걸으며, 낮의 태양이 지나치게 뜨겁고 내리쪼일때는 잠시 물을 마시며 한가롭게 들녘에서 편히 쉬었다. 오늘 어디서 끝낼지는 내가 정할 몫이었다. 순례를 처음 시작할 때 비바람 맞아가며 산을 넘던 때에 비하면 너무나 한가한 길들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도 덜했다. 중간중간 다리를 주무르며 내게 주어진 삶과 내가 가는 길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경찰에게 전화까지 해야 했던 저녁 숙소 정하기

평원에 가방을 내려놓고 한 컷 찍었다. 18일간 내 등에서 항상 함께 다닌 가방은 뒤에서 부는 바람을 막아주고 지탱할 식사와 옷가지 등을 껴안아 준 든든한 동반자였다.



평탄했던 순례길과는 달리, 저녁 숙소를 정할 때 일이 생겼다. 비교적 순탄한 순례를 마치고 비아나(Viana)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려 했는데, 원래 가려 했던 공립 알베르게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알베르게 자체는 문을 열고 있었고 굉장히 좋아 보였다. 하지만, 문을 지키고 있던 스페인 아저씨는 6시 이후에 체크인을 하려면 경찰이 와서 신분확인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경찰이 언제 오냐고 했더니 그건 직접 내가 전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아저씨 또한 어딘가로 가야 하는 것 같아서 계속 잡고 얘기하기도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벽에 붙어 있는 경찰서 번호를 보고는 스카이프에 충전해 놓은 인터넷전화 머니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해외 여행을 다닐 때면 현지 통화를 할 때가 간혹 생기는데, 이럴 때는 이런 스카이프나 바이버 같은 인터넷 전화 앱을 쓰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유용하다.


무턱대고 로밍해간 국내 전화로 전화하면 현지 – 국내 – 현지로 연결되는 방식이어서 전화비용이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요새 국내외 모두 공중전화를 찾기도 힘드니, 데이터 연결만 되면 이렇게 인터넷 전화 앱을 쓰면 생각보다 저렴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까스로 경찰서와 통화되어 30분 내로 오겠다고 했으나, 처음 약속한 30분이 지나도 경찰은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로비에서 안에 시설만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한번 전화를 해보니 아직 출발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다 그 경찰까지 퇴근한다면 영락없이 잘 데 없는 미아가 될 판이어서, 까미노 앱을 다시 이용해서 인근 펜션이나 알베르게를 알아보러 다녔다.


모든 곳이 다 닫았는데 딱 한곳 사설 펜션 하나가 검색됐다. 사설 펜션은 국내로 생각하면 모텔이나 여관을 생각하면 딱 맞다. 보통 개인이 하는 2~3층짜리 조그마한 주택에 방 한 칸을 빌려 쓴다고 보면 되고, 다만 여러 명이 샤워하고 같이 자야 하는 알베르게에 비해 생각을 조용히 정리하거나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분들은 이용하면 괜찮다. 하루 이용료는 대략 30유로, 우리 돈으로 약 4~5만원 정도면 잘 수 있다.


간신히 ‘산 페드로’(San Pedro)라는 펜션을 발견해 한참 길을 따라 갔는데 아무리 봐도 펜션을 찾을 수 없었다. 지도 앱이 잘못 된 것인가 몇 바퀴나 다시 돌아보고 인근 스페인 분들에게 길을 물어봐도 결과는 같았다. 저 골목길 안에 있다는데, 그 골목길 안에 들어가면 일반 생활 주택만 담을 지어 서 있었다.


해는 이미 지고, 경찰이 와야 한다는 공립 알베르게도 문을 닫았다. 작은 도시 같지는 않은데 영락없이 길을 잃을 판이었다.


그때, 사설 펜션 앞으로 한 떠꺼머리 총각 하나가 나타났다. 가죽점퍼를 입고 있는 그는 외출하려는 듯, 집 앞에 서 있는 차에 다가가다가 나를 보더니 ‘펜션?’ 하고는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바로 몸을 돌리며 따라오라고 시늉했다.


그를 따라 갔을 때, 그렇게 몇 번이나 지나쳐 갔으면서도 찾지 못한 펜션이 드디어 나타났다. 일반 주택을 개조해서 하는 것이라 별도 간판도 없고, 1층은 두꺼운 문이 있고 그 안에는 간단한 로비가 있는 것이어서 전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비아나 사설 펜션에 짐을 풀었다. 전혀 고급스럽지도 그렇다고 아주 낡지만은 않은 펜션에서 모처럼 평원의 순례길을 다시 한번 되뇌이며 포근한 잠에 들었다.



체크인을 하고 몸을 뉘어 쉬면서, 연속 이틀 집주인을 만나 투숙하게 된 행운에 감사했다. 아즈퀘타에서도 여주인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야간 순례를 해야 했을 것이고, 비아나에서도 그 주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닫힌 알베르게 앞에서 밤을 새야 할 수도 있었다. 상황은 항상 절박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계속 빠져 있지 않고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하루였다.


사실 길을 떠날 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리는 몇 번이나 계속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문과, 이과 계열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이 생각난다.


어느 길로 가든지 그건 내 자유지만, 그 선택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할 것이고 이 인생 자체는 계속 그런 선택의 연속일 것이라는 얘기.


그 말씀대로 나는 내 자발적인 의지로 2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 순례길에 나섰고, 그 길에서 매일 표지판 하나에 의지해 멀고먼 순례길을 망망대해의 배 한척처럼 떠돌고 있었다. 내가 풀어놓은 자유, 그 자유가 내게 어떤 깨달음을 갖고 올지 내가 지나온 산과 들을 다시 떠올리며 순례 9일차를 조용히 내려 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비아나 사설 펜션에 짐을 풀었다. 전혀 고급스럽지도 그렇다고 아주 낡지만은 않은 펜션에서 모처럼 평원의 순례길을 다시 한번 되뇌이며 포근한 잠에 들었다.





내 자발적인 의지로 2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 순례길에 나섰고,
그 길에서 매일 표지판 하나에 의지해
멀고먼 순례길을 망망대해의 배 한척처럼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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