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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화 May 11. 2022

엄니, 꽃구경가요

울엄마가 젤 좋아하는 꽃이 철쭉이란다. 마침 인근 황매산에서 철쭉제가 한창이었다. 엄마는 다리가 불편해서 산에 오르는 게 쉽지가 않다. 다행인지 황매산은 정상 가까이에 차가 올라간다. 휴일이면 엄두도 못냈을 건데 평일이라 올라가보기로 했다. 안 가겠다는 엄마를 설득해서 차에 태우고 합천 가회면 쪽으로 차를 몰았다.


황매산 정상으로 난 찻길은 함부로 오를 게 아니었다. 특히 축제기간에는 참아야 했었다. 평일인데도 정상에 오르려는 차들이 줄을 이었다.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오르막에서 차가 밀릴 땐 정말이지 아찔했다. 운전대를 잡은 두 팔이 달달 떨리고 손바닥에 땀이 날만큼 긴장되었다.

엄마도 눈치를 챘는지 도로 내려가자고 보챘다. 어찌어찌 정상 가까이 올라가긴 했다. 주차장이 혼잡해서 철쭉 군락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나야 한달음에 올라갈 가벼운 거리지만 절룩거리는 엄마 걸음으로는 험난한 산행이었다.


돌계단과 산비탈을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올랐다. 엄마는 몇 번이나 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 불편한 엄마가 1킬로 남짓 되는 오르막을 쉽게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내 잘못이었다. 엄마는 저만치 불타는 철쭉 군락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꽃을 봤으니까 됐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

그런 엄마를 어르고 달래서 꽃무더기 가까이로 자꾸만 끌고 올라갔다. 엄마가 젤 좋아한다는 철쭉꽃 속에 폭 파묻히는 그런 그림이 기어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졌다. 철쭉군락지로 들어서는 돌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잡고 있던 엄마 팔을 놓치고 말았다. 엄마가 돌계단 아래로 굴렀다. 계단 저 아래는 깊은 연못이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얼어붙고 말았다. 엄마가 연못 속에 곤두박질칠 것만 같았다. 천만다행으로 엄마는 두 손으로 돌계단을 꽉 붙잡고서 멈췄다.

바위에 무릎을 찧고 너무 놀라선지 기운이 없었다. 너럭바위에 엄마를 앉히고 까인 무릎을 살폈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엄마얼굴이 백짓장마냥 창백했다. 꽃구경 가자고 졸랐던 게 후회가 되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에 철쭉군락지 초입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면서 찍고 또 찍었다. 다행히 엄마가 웃어주었다. 웃으니까 꽃보다 고왔다. 또 언제 엄마랑 꽃구경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짧은 꽃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엄마에게 이야기 하나 들려줬다.

 “엄니 엄니, 꽃구경 가요. 어떤 아들이 늙은 어미를 업고 꽃구경을 갔다네. 아들 등에 업힌 어미 나뭇가지를 꺾어 길바닥에 하나씩 놓더래. 아들이 궁금해서 물으니 그 어미가 말하길, 너 혼자 내려갈 때 길 잃어버릴까봐 걱정이란다. 그랬다네.”

옆에 앉은 엄마가 아는 이야기라며 피식 웃었다.


‘엄마는 그런 걱정일랑 말아요. 다신 엄마를 놓칠 일도, 내가 길을 잃을 일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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