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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시언니 Mar 15. 2020

그렇게 나는 반격하지 못하는 순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선생님께 <나에게 폭력을 가르친 건 다름 아닌 당신이었다.>(3)





<2학년 7반 담임선생님께>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쯤에 있을 때였습니다. 선생님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내 다이어리를 집어 들었습니다. 나는 영문을 몰랐고, 선생님은 그걸 그대로 교무실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는 점심시간에 나를 교무실로 불렀습니다. 다이어리 속에 있는 오 씨가 누구냐, 왜 이렇게 자주 만나냐고 추궁했습니다. 오 씨 집에는 왜 갔냐? 거기서 뭐했냐?라고 상세하게 물어봤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해서 어리둥절했습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선생님 책상 유리 사이에 빼곡히 꽂혀 있는 보디빌더들의 사진만 멀뚱히 보고 있었습니다.




P.S 난 진짜 모르겠어요. 왜 내 다이어리를 선생이 뒤져 보는지. 왜 내가 철수 오빠 만나는 걸, 다른 오빠도 아니고 선생이 싫어하는지.











<에필로그>

  

폭력의 기억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폭력은 학교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였다. 시험문제 답을 못 맞힌 것도 속상한데 손바닥까지 맞아야 했다. 왜 맞아야 하는지는 도무지 알 턱이 없었다. 빨간 회초리 자국이 난 손바닥이 아팠다.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을 끔뻑 뜨고 (어쩌면 선생님 눈에는 부릅뜨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칠판을 보고 있는 나를 선생님은 슬쩍 피했다. 미안해하는 기색마저 보였다.

그 후로 그녀는 내가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뭐든 칭찬을 퍼붓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실 창틀도 내가 닦은 날은 윤이 반짝 나 다른 반 선생님들의 부러움을 산다고 했다. 어떤 날은 운동장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사는 얘기도 주고받곤 했다. 그리고 다음 학년에도 그녀는 나의 담임이 돼주었고, 지금도 그때의 일기장에는 선생님의 생각들이 빨간 글씨로 적혀 남아 있다. 약간은 교환일기 같기도 하다.


선생님이 체벌 대신 칭찬을 선택한 이후로 분명 나는 더 좋은 어린이가 되었다. 창틀을 닦는 소소한 일도 살갑게 바라봐 주는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닦기 전과 닦은 후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도... 창틀에 윤이 나는 것이 우리 학급에 그리 대단한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끔뻑 뜬 눈물 맺힌 눈에서 자신의 매질에 대한 아이의 상처를 읽은 것일까?

아니면 부릅뜬 눈에서 회초리는 아무 쓸모가 없다..라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은 것일까?

이 분과 함께 한 2년 나는 존중받는 어린 인간이었다.







이후 해를 거듭하며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워 갔다.

선생님 얼굴이 벌게지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면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선생님이 때리면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끄덕임과 침묵으로 순종을 표현하게 되었고, 반성하는 눈과 두려워하는 몸짓을 연출하게 되었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연기까지 불사하게 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이른바 비위 맞추기 같은 것을 알아갔고, 그것은 세상살이를 편하게 하는데 도움이 됐다.

저들과 함께 한 시간, 나는 통제받고 다스려져야 할 요즘 애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반격하지 못하는 순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P.S 이봐, 이제 납작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반격해.

불쾌한 말에 애써 웃어 주지 마.

잘못하지 않은 일에 용서를 구하지 마.

함부로 고개 숙이지 마.

누가 너한테 소리 지르거든, 목소리 낮추라고 말해.

누구든 너를 때리도록 내버려 두지 마.














글/그림: 두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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