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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집아이 Jul 06. 2021

너무 익숙해서 잊고 사는 것들

<항몽유적지>

항몽유적지
2021. 3. 23. 유채꽃 밭에서 <모델 : 지집아이의 엄마 & 럭키>


가족, 친구, 건강, 자연 그리고 아주 평범한 하루부터 행복한 웃음소리에 매 순간 숨을 쉬는 것까지.


우린 가끔, 너무 익숙해서 잊고 살 때가 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제주도민이 된 지 2년 하고도 8개월 째인 요즘, 내가 그랬다. '새로운 곳이 없을까?', '안 가본 곳을 가고 싶은데.' 이런 생각으로 마치 보물 찾기라도 하듯 낯선 곳을 찾아 헤맸으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예전엔 어딜 다녔지?'


정답을 찾기 위해 핸드폰 속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되감아봤다. 멋진 풍경에 감탄을 쏟아냈던 곳, 계절마다 어울리는 꽃이 폈던 곳, 그래서 행복함을 느꼈던 곳. 바로 항몽유적지였다. 


2020. 10. 08. 항몽유적지 코스모스 밭
2021. 1. 9. 항몽유적지 귤 밭


봄에는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춤을 추었으며, 겨울에는 달콤한 로 물들었다. 그래서일까? 단 한 번도 똑같은 적 없는 풍경에, 달라진 계절을 보여주는 모습에, 엄마와 나는 수도 없이 그곳을 찾았다. 


때론 산책을 하기 위해, 때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때론 사진을 찍기 위해 틈만 나면 달려갔다.


그래서, 너무 자주 봐서, 잠시 소중함을 잊고 있었나 보다.

눈앞에 놓인 그림 같은 풍경을 잊은 채 3달 동안 '새로운 곳', '낯선 곳'만을 찾아다녔으니. 


2021. 7. 2. 해바라기 밭에서
2021. 7. 2. 해바라기 밭에서 <모델 : 지집아이의 엄마>


장마를 코 앞둔 7월 초, 엄마와 나는 다시 항몽유적지를 찾았다. 


"어머! 해바라기네?"


먼저 여름을 맞이한 노란 해바라기가 마치 엄마와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겨우 찾아낸 새로운 곳에서도 힘들게 발견한 안 가본 곳에서도 이렇게 예쁜 해바라기는 보지 못했기에 더 반가웠다. 


"어휴~ 하마터면 이 멋진 풍경을 못 보고 지나갈 뻔했네."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행복한 미소로 연거푸 사진을 찍어댔다. 마치 여기가 처음 발견한 곳인 것처럼.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성의 의미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내가 보는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이 없음을, 작은 것 하나도 그저 주어진 것이 없음을 다시 깨닫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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