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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니 Nov 10. 2022

영화 안 하고도 살 수 있을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스포일러 포함)


 의사가 꿈이었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의사의 꿈을 은근슬쩍 권유하곤 했다. 그러나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월요일엔 선생님, 화요일엔 인테리어 디자이너, 수요일엔 화가, 목요일엔 패션 디자이너, 금요일엔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직업에 대한 취향이 확고했고, 의사는 단 한순간도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가지 직업만 가지고 싶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영화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이석훈 감독이 만든 황정민, 엄정화 주연의 <댄싱 퀸>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순박한 서울시장 후보 정민의 아내 정화에게 오랜 꿈이었던 댄스 가수가 될 기회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하도 오래전이라 영화 자체는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전반부엔 웃고 후반부엔 울며 재미있게 봤었다.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서울시장 후보의 배우자가 댄스가수일 수 있다'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느끼며, 영화의 힘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어린 나였다. 이후 학교에서 자신의 꿈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에 나는 영화감독이 되어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싶다고 비장하게 선언하였다.


 조금만 '영화 같으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교과서에 영화 포스터가 나와도 두근두근, 과제로 UCC를 만들 때도 두근두근, 영화 감상 수업을 앞두고 두근두근. 감독에서 방향을 틀어 배우를 꿈꾸며 예고 진학 목표를 가질 때도 있었는데, 조심스럽게 '너가 객관적으로 아주 예쁜 얼굴은 아니니 배우가 되고 싶다면 학벌이 좋은 것이 눈에 띄기에 유리할 수 있다'는 아버지 말씀에 납득하여 인문고에 진학했다. 다시 감독에 대한 꿈으로 돌아온 후에는 봉준호 감독처럼 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영화를 배울 것을 목표로 공부했다. 결국 사회학과에는 못 갔지만 대학에서는 영화 수업도 듣고 실제로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아무리 지쳐도 영화는 호랑이 힘을 불끈불끈 솟게 하는 콘푸로스트와도 같았다. 연출 수업을 듣고 싶어 추가학기까지 다닌 후 대학을 졸업했고, 영화 대학원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코로나가 터졌고, 유학이 엎어졌다.


 국내 대학원 준비로 방향을 틀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열심히 찾아간 맛집에서 '개인 사정으로 오늘 하루 쉽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본 것처럼 힘이 빠져 의욕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모집요강을 살펴보기도 했지만 왠지 지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내가 합격하기 힘든 이유를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기 시작했고 일단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취준을 시작했다. 영화기획제작, 영화투자, 영화마케팅, 영화잡지 에디터 등등 대기업부터 처음 들어보는 곳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지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서류 탈락이었다. 딱 한 곳에서 면접을 봤는데 공고에 나온 것과 달리 정산이 주 업무였다. 내 자소서를 보더니 "감독이 꿈이었는데 여기서 하루 종일 정산만 하고 있어도 괜찮겠어요?"라고 묻는 면접관님에게 나는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에야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왜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을까? 어른 말씀은 틀린 게 없다더니. 내 꿈이 의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 혼자서라도 시나리오를 쓰며 감독의 꿈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머리가 커버린 나는 영화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곳이 얼마나 천재 집합소인지 느끼며 겁을 한 움큼 집어먹었다. 아픈 사람을 낫게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이과에 진학했으면 취준을 하더라도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까? 어쩌자고 나는 영화를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좋아해 버렸나.


 영화 속 찬실이는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낫고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한 상황에 처해 있다.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계에서 프로듀서로 살아있었다. 하지만 40대의 나이에 갑자기 망해버렸다.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일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똑 하고 끊긴다. 휘청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로듀서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주인집 할매에게 "저도 이제 잘 모르겠어요"라며 멋쩍게 웃을 뿐이다.


 그런 그녀 앞에 어느 날 갑자기 어릴 때 좋아했던 장국영이 등장한다. 그런데 자신에게만 보이는 유령 같은 존재에 자신이 알던 장국영의 모습도 아니다. 런닝셔츠에 트렁크 팬티만 입고 한국어를 하는 장국영은 불쑥불쑥 나타나 이런저런 말을 건네며, 찬실의 문제는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찬실은 "진짜 나 자신에 대해서 깊이깊이 생각을 좀 해"보기로 결심한다.


 물론 결심한다고 해서 바로 알게 될 만큼 자아와 인생이라는 것이 단순하진 않다. "확 남자라도 만나 정신을 좀 딴 데 팔아 보고도 싶"은 찬실은 친한 배우 소피의 불어 선생님이자 단편영화 감독인 영에게 급발진하며 고백했다가 얼굴이 뜨거워지도 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찬실이 쏟는 눈물은 아마 고백뿐 아니라 인생이 망했다는 좌절감의 역류일 것이다. 그녀는 영화 관련 물품들을 정리하여 방 밖으로 내놓는다.


 하지만 왜인지 찬실은 주인집 할매의 한글 공부를 돕다가,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는 할매의 글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 후 다시 물건들을 방 안으로 들여놓는다. "귀신 보면 나 좀 빨리 잡아가라고" 해달라면서도 한 자 한 자 한글을 배우고, 그게 콩나물을 다듬는 일이어도 "오늘 하고 싶은 일만, 대신 애써서" 하는 할매가 서툴게 쓴 시만큼 지금 찬실에게 위로되는 것이 있을까. 짐을 다시 들여놓은 찬실은 자신을 영화에 빠지게 한 영화, <집시의 시간>을 소개하는 옛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장국영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늘 목말랐던 것 같아요. 사랑은 몰라서 못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만은 나를 꽉 채워줄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잘못 생각했어요. 채워도, 채워도 그런 걸로는 갈증이 가시지가 않더라고요.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우리는 '망했다'는 말을 꽤나 자주 쓴다. 시험 망했다, 짝사랑 망했다, 오늘 망했다, 인생 망했다. 무언가 놓친 것이 불현듯 생각날 때 '아 맞다' 대신 '망했다'라는 말이 먼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 고백에 대차게 실패한 후 창피함에 다시는 영을 못 볼 것만 같아도, 찬실과 영은 누나 동생으로 호칭을 바꾸며 원만한 사이로 남는다. 하루아침에 삶 그 자체였던 영화계에서 도려내져 버려도 찬실은 일을 하고 밥을 먹는다. "우리 꼭 또 같이 영화 만들어요"라며 동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찬실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뒤이어 보름달을 보고 비는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에 대한 서술어를 영화는 괄호 속에 남겨두지만, 그녀의 기차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설국에 이른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이 마지막 즈음 소원을 비는 장면인데, 소원을 빌기 직전의 찬실은 보름달을 바라보지만 말로 내뱉을 때는 고개를 내리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들고 있는 손전등이 마치 달처럼 찬실의 안에서 빛난다. 아마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는 변하는 달에 대고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생각해보고 들여다보고 찾아보는 것이라는 걸.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어떻게 명쾌할 수 있을까. 다만 사는 건 환상이 해어지고 그 자리를 복으로 기우는 과정의 연속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어릴 때 진짜 좋아했던 장국영을 40대가 되어 마주했을 때 그는 기억 속 멋진 스타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찬실은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직업이 없어도 바쁘다고, 이제 할 거 많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복'의 사전적 정의는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이다. 찬실에게 영화는 복이지만 복은 그것 말고도 많은 것이다.


 영화는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돈도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사랑도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우정도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인생은 그 모든 것들의 합 그 이상이기 때문에 그중 무엇 하나가, 둘이, 셋이 망해도 인생이 망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영화감독이 되었거나 의사를 꿈꾸었다고 해서 삶이 아무런 걱정 없이 탄탄대로로 흘러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전구가 나가 눈앞이 캄캄해지고 집에 남은 전구가 없어도 괜찮다. 바깥으로 나가면 새 전구는 차고 넘치니까.


 "영이 씨는 혹시 영화 안 하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아직 그런 생각 안 해봤는데. 영화보다 중요한 게 더 많죠. 어,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거, 우정을 나누는 거, 사랑하고 사랑받는 거. 그런 것들도 영화만큼 중요하죠. 어, 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P.S. 이렇게 또 위로를 해주는데 영화를 어떻게 안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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