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육십 네 번째
집 앞 전신주에 까치가 집을 짖기 시작한 지 어언 달포가 지났다.
벌써 다섯 번째 집이다.
반쯤 짓다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기도 하고, 설계도가 잘못되었는지
거의 지어진 집이 통째로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할 법도 한데 까치는 여전히 어디선가 나뭇가지를 부지런히 물어 나르고 있다.
그 지칠 줄 모르는 집념에 박수가 절로 난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 안 되겠니? 하는 마음도 굴뚝같다.
주말마다 부서져 떨어진 나뭇가지를 치우는 일도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아무튼 둥지를 트는 일이 중대사인 까치의 세계에서
분명 둥지 짓기 공부시간에 딴짓한 녀석들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 허술할 수 있겠는가?
덕분에 시골 살이 미덕 중 하나인 야외 바비큐용 밑불 땔감이 수북해졌다.
자연에 들어앉아보니 세상이 온통 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 하나 고리 끊긴 단독자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부서진 까치집의 마른 나뭇가지는 밑불재료가 되고, 타버린 재는 다시 작은 텃밭의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은 푸성귀가 되고, 식탁에 오른 텃밭 채소들은 삶의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성질깨나 났을 까치들은 자신들의 부서진 집이 바비큐의 밑불이 될 줄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계절의 영고성쇠가 분명한 시골에서 독불장군의 고집은 언제나 어리석은 결말을 낳는다.
선택된 고립은 자기를 가라앉힐 뿐 아니라 주변의 사물들과 사람들까지 위태롭게 한다.
시골에서 살다 보니 주변의 뾰족한 것들과 화해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이 깨달아진다.
일견 무질서하게 보이는 숲 속의 작은 풀잎 하나도 있어야 할 자리에 돋아있고
들꽃 하나도 피어야 할 곳에 피어 있다.
그래서 자연은 자연스럽다.
모두가 주변과 넉넉한 마음으로 화해하며 조금씩 자리를 내주고 있는 모습이다.
하물며 자연이 그러할 진데 뭘 그리 제자리 차지하고 앉아 뭉개느라 몸부림들인지 원.
듬성듬성 돋은 산나물은 제자리를 보존해도 군락을 이루며 떵떵거리는 산나물들은 모두 뽑히게 마련인 것을. 적당히 틈새를 내어주는 여유가 오래도록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나 자연이나 매일반이다. 지금 누리는 것이 내일도 여전할 리 없고, 지금 독점한 것이 영원히 남겨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이 덧없다 싶지만 덧없어서 오히려 조화로운 것이 자연이다.
참 신비한 일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마음의 품을 넓히든지, 더 많은 틈새를 내어 주든지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어야겠다.
그나저나 밑불 땔감도 이만 되었으니
“까치야! 칠전팔기 같이 질리는 말에 그만 현혹되고 이번엔 꼭 둥지를 틀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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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썼었는데...
간밤에 바람소리 울울하더니 그만 다섯 번째 집도 무너지고 말았다.
아침 창문너머로 올려다본 전봇대 꼭대기는 마른 가지 하나 없이 말끔했다. 아니 허전했다.
그리고 식전 댓바람부터 시끌거렸던 까치마저 온 데 간데없다.
아~ 부디 바람 잔 양지 녘, 어느 포근한 나무둥치 하나 잘 골라 이사라도 갔으면 좋겠다.
널뛰는 가격에 바람 잘날 없는 북새통이 아닌 곳,
허황된 욕심에 삶이 망가지는 곳이 아닌 살아가는 즐거움이 가득한 고요하고 잔잔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