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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Aug 26. 2024

브런치, 불행 경진 대회로 전락하지 않기를...

브런치는 글쓰기 플랫폼이다. 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나아가 작가로서의 길을 꿈꾸는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글이 생산되는 분야에서는, 브런치의 글쓰기 풍토가 조금 변질, 혹은 특정 영역이나 소재에만 치우치는 느낌이 든다. 조금 세게 말하면 일종의 '불행 경진 대회'로 변모해가고 있는 듯하다. 불륜, 시월드 문제, 이혼과 같은 가정사와 자극적인 내용들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순위권에 든 인기 브런치북 10권 가운데 8권이 모두 이혼을 소재로 한 책인 것을 목격한 적도 있다. 


물론, 인생에서 겪는 부정적 경험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자신을 치유하고, 또 다른 길을 개척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글로 승화시키면서 내면의 갈등을 풀어내고,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글쓰기는 개인적인 치유의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영향력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브런치에서 눈에 띄는 글들의 경향은 단순히 개인적 치유를 넘어선, 더 자극적이고 더 극적인 내용을 통해 주목받으려는 일종의 '불행 경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제 접한 글은,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상간녀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의 행태를 보였다. 그 글을 쓴 작가는 그러한 과정을 시리즈 글로 써내려가고 있었고, 브런치 기준으로는 정말 많다고 볼 수 있는 2천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댓글과 좋아요도 동급의 브런치 채널보다 훨씬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글쓰기 플랫폼이라는 외형적 품위에 가려져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전시하고 이를 통해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는 모습에서 인스타그램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인스타그램이 사진과 짧은 글로 자신의 '행복한' 일상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면, 브런치는 그 반대의 방식으로 자신의 '불행한' 경험을 전시하는 공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플랫폼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글의 깊이나 진정성보다는 얼마나 자극적이고 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지가 중요해질 위험이 있다.


물론, 브런치에 올라오는 모든 글이 이러한 부정적 흐름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다양한 주제와 깊이 있는 글들이 존재하며, 많은 작가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의 풍토가 자극적인 내용에 치우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양질의 콘텐츠는 주목받지 못하고,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글을 위주로 소비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브런치를 통해 세상을 접하는 이들이 브런치의 예외적일 수 있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되면서 유튜브와 마찬가지의 확증 편향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 브런치 앱의 "발견" 탭에 어떤 알고리즘이 적용되고 있는지 약간의 의심도 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자체의 운영 방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자극적인 내용을 단순히 배제하기보다는, 보다 다양한 주제와 깊이 있는 글들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큐레이션 방식을 개선하고, 독자들에게 질 높은 콘텐츠를 추천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작가들 스스로도 주목받기 위해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경험만을 담아내는 글쓰기가 아닌, 진정성과 깊이를 가진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1년에 책을 1권이라도 읽는 국민이 전체의 30% 남짓밖에 되지 않는 시대에, 글쓰기 플랫폼의 존재는 정말 귀하다. 브런치는 정제되고 품위 있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타인과 소통하고, 여러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러한 이 공간이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가득 차게 된다면, 그 본질적 가치는 크게 훼손될 수 있다. 글쓰기 플랫폼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브런치의 사용자와 운영자 모두가 그 역할과 책임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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