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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인간 Aug 29. 2021

베르트 모리조 작품에서 나타나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

베르트 모리조는 초기 인상주의 사조를 이끈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같은 시기에 여러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함께 토론하고, 그들의 작품을 칭찬했던 평론가 테오도르 뒤레는, 독창적인 개성으로 인상주의를 발전시켰으며 '인상주의 정회원'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평가할 수 있는 다섯 명의 화가(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모리조)를 거론했는데, 베르트 모리조는 그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의 주장을 차치하더라도 베르트 모리조는 서양 미술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소수의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임이 틀림없다.

     물론 예술 작품을 평가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것을 창작한 이의 성별을 전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현 시대의 흐름이다. 부득이하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일하거나 더 높은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다른 남성 예술가의 업적에 가려져서 잊혀진 여성 예술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경우에도, 그러한 작업 이후에는 다시 동일한 자격과 조건에 위치시켜서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적/남성적이라는 표현이 나타내는 예술 작품에서의 정서는 여전히 특정한 성질과 질감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감상자들이 그러한 표현을 통해 연상하는 특성들도 어느 정도는 일치하고 있다. 베르트 모리조를 포함한 일부 예술가의 작품들은 이러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의 독창성이나 매력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에 있어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정의를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성질'과 '남성에게서 나타나는 성질'과는 무관한 것으로 인식하는 편이 옳다. 예술 앞에서 만큼은 여성성을 실제 여성 인간의 특성과, 남성성을 실제 남성 인간의 특성과는 분리해서, 그저 서로 대비되는 성질을 간편하게 이분화한 특정한 성질들의 집합으로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은 전적으로 여성적이다. 그 근거는 그가 다루고 있는 대상의 인상에 있다.

     인상주의 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전까지 주류로 자리 잡고 있던 낭만주의, 고전주의, 사실주의 회화와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선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여성은 대상화되어 있거나 육체적으로 이상화되어 있으며, 사실주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여성은 그들의 나체가 노골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마네가 그것을 패러디한 <올랭피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르네상스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화폭 안에 담긴 여성의 육체를 이상화하고 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피부는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몸의 곡선이 완만하게 이어지면서 자연스러운 그림자를 만들어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동시에 몸매를 부각시킨다. 또한 몸에 비해 작게 그려진 얼굴은 안정적인 비율로 다가온다. 반면에 마네의 <올랭피아>는 인상주의적인 특징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실주의에 가깝게 그려진 작품이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동일한 구도로 그려졌음에도 여성의 나체를 묘사한 방식에서는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올랭피아>에서는 여성의 몸이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투박하게 도드라져 있다. 때문에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는 다르게 어딘가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며, 평면적으로 다가온다. 얼굴과 몸의 비율도 이상화되지 않아서 키가 작아 보이기도 한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여성은 지그시 바라보는 듯하며, <올랭피아>의 여성은 빤히 노려보는 듯하게 느껴지는 점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두 그림은 언뜻 유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쪽은 여성의 육체를 이상화해서 탐미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여성의 육체를 사실적이고 노골적으로 그리면서 도발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귀스타브 크루베의 <세계의 기원>

     드물게는 귀스타브 크루베의 <세계의 기원>처럼 여성의 육체를 탐미적 가치나 원초적 욕구와는 분리시키고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해당 작품에 관해서는 여성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그려내면서 고의적으로 논란을 일으켜 일단 관심을 끌고 보려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노렸으며, 그러한 그림에 '세계의 기원'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붙이면서 여성의 역할을 필요 이상으로 드높였다는 점은 부정할  없다. <올랭피아> <세계의 기원> 모두 매춘부를 모델로 해서 그려졌다는 사실 또한, 서양 미술사에서 여성을 다루던 일부의 시선이 어떠했는지 부분적으로 유추할  있도록 만드는 단서가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인상주의 회화 중에서는 여성을 이러한 방식으로 묘사한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시기에 도달해서야 회화 속에서의 여성은 다른 무엇도 아닌 평범한 여성이 될 수 있었다(다른 의미에서는 남성도 마찬가지다). 이는 인상주의라는 사조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철학의 덕분이다. 왜냐하면 인상주의는 무엇보다 '인상' 자체를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을 그리는가 하는 제재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징, 은유, 알레고리, 의미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인상주의 화가는 자신이 그리는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그것을 바라본 방식 자체를 그릴뿐이다. 그 덕분에 여성을 그릴 때도 불필요한 시각을 추가적으로 덧칠하지 않았으며,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더 나아가지도 못했다. 이를 비판 받을 만한 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상주의 회화가 갖는 필연적인 한계인 것은 분명하다. 대상에 관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니, 순수하고 일차적인 아름다운만 느낄 수 있을 뿐 그 이상을 얻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대부분의 인상주의 회화 속에서의 여성(남성도 마찬가지)은 그저 군중의 일부이거나 모델 역할만을 수행하는 존재, 즉 충분한 생명력을 얻지 못한 전체의 요소에 불과했다. 그림 속 인물은 그림을 그려야만 할 명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베르트 모리조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주로 풍경화를 그리던 여느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르게, 소수의 특정한 인물에게 주목하는 그림을 그렸다. 물론 다른 화가들이 인물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물화는 보통 도시의 일상적인 모습이나 모임에 참석한 군중의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물이 풍경으로 소비되는 역설적인 형태의 풍경화에 가까웠다. 때로는 그러한 군중 속에 화가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거나, 전경을 자신의 동료들로 채우기도 했지만, 그들이 '인상'의 재료로 소비되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에는 언제나 인물이 중심에 등장했고, 3명을 넘는 일이 드물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당시의 기술 발전과 그가 상류 사회 계층에 속한 여성이었다는 점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왼쪽 :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뱃놀이 일행의 오찬>   /   오른쪽 : 구스타프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인상주의 사조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는 최초로 튜브 형태의 물감이 개발되었던 시기와 맞물린다. 기존에는 사용할 물감을 즉석에서 직접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실내에서 작업하는 것이 강제되었다. 그러던 중에 개발된 튜브 형태의 물감은 휴대성이 좋고 원하는 색을 만들기에도 수고가 덜한 덕분에 야외에서 작업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질감을 포착하려 노력해 왔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를 계기로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거나 한 자리에 모인 군중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르트 모리조는 상류 사회 계층에 속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이었던 그는 항상 조용하고 고요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의 전기를 집필했던 아르망 푸로는 이에 관해 "단 한 번도 폭우에 출렁거린 적이 없는 아주 조용한 호수처럼, 그녀의 삶은 자신의 예술만큼이나 고요하고 차분하다. 이런 삶은 모험에 굶주리고 격정을 탐하며, 비장한 사건을 찾아다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그림 같은 이야기라도 찾아내려는 전기 작가를 절망적인 기분에 빠트린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미술품 수집가였던 루이 루아르는 "그녀는 보통 자기 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거실에 화폭을 늘어놓고서, 가구 위에 붓과 팔레트를 올려놓고 후딱 그렸다. 예정에 없던 방문객이 들이닥쳤을 때나, 한 해 몇 달을 보내던 시골에서는 주로 자기 주변 사람을 그렸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부르주아 여성이라는 신분 탓에 어쩌면 강제적으로 실내에서 소수의 인물만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은 오히려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 세계에 독창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다수의 군중을 그리기보다는 소수의 특정한 인물에 집중했고, 그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여성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던 그의 작품은 어딘가 모르게 깊은 연대 의식을 담고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이에 관해서는 성을 근거로 한 선입견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이 받은 인상 자체를 재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정당한 감상 방법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받은 '인상'이라는 것은 그가 가진 지향성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외부의 대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르트 모리조가 무언가(여성)을 인식할 때 연대 의식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그가 느낀 인상에는 그러한 연대가 포함될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럽게 그 인상을 그린 작품에도 그와 같은 연대가 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이러한 관점은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과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을 비교 감상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후경에 군중이 배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시선은 중심에 있는 한 여성에게로 쏠린다. <요람>에서는 요람에서 잠을 자고 있는 아이와 그를 돌보는 한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결국 두 작품 모두 2명 이하의 특정한 여성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에는 차이가 있음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또한 훌륭한 작품임이 분명하지만, 화폭 중앙에 서 있는 여성에게는 특정한 감정이 이입되기 힘들다. 여기서 어떠한 이유로 이 여성에게 일종의 애정이 느끼게 된다고 해도, <요람> 속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애정과는 확연히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

마네가 그린 술집의 종업원에게서 느껴지는 애정은 순간적이고 퍼져나가는 애정이지만, 모리조가 그린 요람 앞의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애정은 지속적이며 은은하고 깊다. 이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베르트 모리조가 <요람>에서 그린 여성은 사실 그의 친언니다. 그리고 그가 돌보고 있는 아이는 마네의 동생과 낳은 자신의 딸이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연대의 감정이 담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요람>이 담고 있는 애정은 어릴 적부터 자신과 함께 그림을 배웠던 언니를 향한 애착과 자신의 딸을 향한 모성애로 정의할 수 있다. 실제로 베르트 모리조는 자신의 딸 쥘리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시켰는데, 그 정도는 그의 작품 세계를 '쥘리의 성장 과정'이라 부를 수 있을 수준이다. 이렇듯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그 이전 시기의 화가들이 갖지 못했던 작품 속 대상과의 연대 의식과 섬세한 애정 교감은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여성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이러한 여성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동시에 남성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거친 스트로크가 그것이다. 인상주의 회화는 주체에게 도달한 인상 자체를 표현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신속하게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로 인해 사용되는 물감이 원색에 가깝고 붓 자국이 화폭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뚜렷한 스트로크, 즉 '붓 자국'은 인상주의 회화의 공통점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베르트 모리조의 붓 자국은 다른 화가들에 비해 유난히 거칠고 투박하다. 이 질감만을 놓고 본다면 여느 남성 화가들보다 더 남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퐁네프>
카미유 피사로의 <시드넘 거리>

 베르트 모리조를 제외한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서는 붓 자국이 얇고 짧은 형태로 나타나 있다. 또한 그러한 자국들은 주변의 색상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크게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조의 회화들과 비교했을 경우에는 여전히 부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숲이 아니라 나무를 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체적으로 그림을 감상하기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베르트 모리조의 <화장하는 젊은 여인>
베르트 모리조의 <빨래>
베르트 모리조의 <주방에서>

그러나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에서는 붓 자국이 얇고 짧은 것에서부터 길고 굵은 것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심지어 주변과 대비되는 색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빈번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감상하려고 해도 세부적인 부분에 눈길이 끌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부분적으로는 그림을 그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탓에 대부분의 작품이 실내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조차도 주변인을 빠른 시간 내에 그려야 했던 탓에 붓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른 남성 화가들에 비해서 더 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이러한 질감은 오히려 그림을 감상하는 데에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인상주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붓의 질감은 숲을 감상한 뒤 나무를 분석하려는 감상자들에게 깊은 잠재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인상주의 회화를 감상할 때는 가까이에서 한 번, 멀리서 한 번, 총 두 번을 감상해야 해당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작품을 감상할 때는 드물게 휴대용 망원경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질감을 즐길 줄 아는 감상자에게 투박하고 거친 남성적 붓 자국은 오히려 독창적인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붓에 묻어 있던 물감과 화폭에 묻어 있던 물감이 섞이면서 하나의 선에도 복수의 색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베르트 모리조의 선조차도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일에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에는 이렇게 대비되는 두 성질, 즉 여성적 감성과 남성적 질감이 함께 공존한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를 배척하거나 밀어내는 이질적 요소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어우러져서 독창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마치 헤겔의 변증법처럼, 정과 반이 합을 도출하는 형식이다.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여성성과 남성성은 서로 섞이며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한다. 특히 그의 여성적 감성은 딸 쥘리를 그릴 때 더욱 도드라지며, 남성적 질감은 1870년대 후반에서 1880년대를 거쳐 후기로 진행되며 강화된다. 때문의 어느 정도 성장한 쥘리의 그림에서는 극대화된 두 성질의 결합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시기의 그림이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인상주의를 넘어서 후기 인상주의적 특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가 있다.

베르트 모리조의 <욕실>
베르트 모리조의 <그레이하운드와 소녀>
베르트 모리조의 <꿈꾸는 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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