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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영 Jul 20. 2021

결핍에 대하여

결혼작사 이혼작곡2

  나는 바닷가에 살고 있다. 바닷가 옆에는 산책하기에 좋은 산도 있다. 집 안에서 보이는 풍경들이기도 하며 도보로 3분 정도의 거리에 있기에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운동 삼아 걷는 친숙한 곳이다. 산과 바닷가를 걸을 때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주로 팟캐스트를 듣는다. 평소 즐겨 듣는 책 관련 팟캐스트에서 어느 날 진행자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방송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애 사건을 듣게 된다. 진행자인 딸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알게 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님은 같은 중학교 선생님으로 만났고 어머님은 역사 선생님, 아버님은 국어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두 분은 책을 좋아했으며 “책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네!”라는 공통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두 분 모두 스탕달의  『적과 흑』 등 문학 책을 좋아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당시 어머니에게 “이 책 읽어보셨나요? 이 구절 너무 좋네요.” 라면서 책을 건네고는 했는데, 항상 책 속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7시, 흑다방’. 그리고 정신 차리고 보니 결혼하였더라는 것이다. 두 분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두 분 모두 책을 좋아하셨는데 특히 어머님이 더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로부터 듣게 된 아빠의 장점이 있었는데, 젊은 시절 어머님이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있어도 그런 아내를 존중하였으며, 어머님이 건네는 책들은 아버님이 거의 다 읽으셨다고 한다. 평상시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책을 소개하고 저자와의 인터뷰를 이끌어가는 진행자가 참 돋보였는데 부모님의 영향이 컸겠구나 싶었다. 


  나는 두 분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쩌면 두 분의 삶이 내가 꿈꿔왔던 삶일 수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머리통을 한방 얻어맞은 것처럼 나의 어린 시절이 겹쳐서 떠올랐다. 부모님을 창피해하던 경험. 나는 왜 그랬을까? 왜 그랬던 걸까? 바로 이 날 내가 왜 부모님을 창피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나의 배우자로 왜 공부하는 유학파를 선택했는지도 이해해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의 부모님은 장사를 하셨고 내가 막내여서 크게 돈 걱정을 한다거나 생활의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학교 정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부모님이 창피했던 것이다. 특히 그때는 학교에서 부모님 학벌을 왜 손을 들게 해서 파악을 했던 건지. 내가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부러워했던 선생님이 있다. 그 선생님은 교련 선생님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생물 선생님이셨다. 부녀지간에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인 직업이 부러웠다. 그들은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고 그래서 지적인 대화가 풍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서로 대화가 많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의 배우자 선택, 내가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 뒤늦게 박사 공부를 다시 한 것 등을 보면 그 모든 것은 나의 결핍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최근 7월 18일 방송된 TV 조선, 주말 미니 시리즈인 <결혼작사 이혼작곡2>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 대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두 주인공의 대사로만 100분을 채웠다. 이에 대해 시청자들의 반응은 “지루하다”, “2인 방역 모범 드라마냐”, “막장이 아니라 문학이다” 등의 다양한 의견이 있었는데 나는 꽤나 몰입해서 보게 된 신선한 회차였다. 이 날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 사이에서 오고 갔던 여러 대화들 중, 심리학적으로 감정 변화를 잘 나타낸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결핍과 관련된 대화였다. 결국 남편은 일찍 돌아가신 친모(생모)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아내는 어린시절 이혼가정에서 자란 친부에 대한 결핍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나의 삶은 가르치는 일보다 상담하는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각자가 지닌 내담자들의 결핍을 자주 보게 된다. 자신의 결핍을 알면 현재 자신의 행동 패턴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가까운 주변 사람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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