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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Mar 19. 2021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악몽과 맞서 싸우는 외국인

한국 생활 24년 차 외국인의 삶

난 그동안 타인에 의해 구해졌다. 정신적으로 말이다. 외국인의 삶이 너무 힘들 때 주변 사람들이 포기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앞으로 외국인의 삶을 감당할 수 있을지 불안해지면 부모님과 친구들이 할 수 있다고 위로해주었다. 내 마음이 너무 약해서 언제나 위험에 처한 사람이었고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용사처럼 달려왔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 외국인과 현지인의 차이를 모르고 행복하게 지냈다. 그 당시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다가 외국인과 현지인, 고향과 외국의 경계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두려움이 내 온몸을 감쌌다.


'네가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내 안에서 부정적인 속삭임들이 스멀스멀 나왔다. 그 속삭임들이 모여서 하나의 악몽으로 변했다. 악몽은 내가 힘없음을 강조했다. 떳떳한 외국인이 되려고 노력할 때마다 악몽은 무서운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다.


'넌 인종차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떳떳한 외국인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외국인을 싫어해. 꺼린다고. 그게 너야.'


외국인과 현지인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을 때,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듣게 되었다. 좋은 점은 다양한 경험이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면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다름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존중이 좋은 점이면 나쁜 점이 차별과 편견이다. 외국인과 현지인 사이에 일어나는 다툼을 듣게 되면 대부분 차별과 편견이 연관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게 된다. 


'나라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라면 잘 극복할 수 있을까.'

'그냥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외국인 어린이였다. 불안감 때문에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할 때마다 긴장과 불안감이 컸다. 외국인이라서 안 좋은 일을 겪게 되는 게 아닐까. 외국인이라서 소외되는 게 아닐까.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을까. 어디 갈 때마다 늘 그런 걱정을 안고 다녔다. 내가 한국말을 잘해도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변함없어서 그 불안감을 성인이 될 때까지 끌어들였다. 난 이것을 외국인 불안증이라고 부른다.


내 외국인 불안증은 처음에 작았다. 그런데 나중에 그 불안증이 점점 커지더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악몽으로 변했다. 악몽의 몸집이 커졌으니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인간 개복치'가 되었다. 내 불안감 때문에 생긴 악몽이 날 집어삼키려고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날 구했다. 외국인의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친구들이 포기하지 말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부모님은 내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대신 마주치기도 했다.


20년 이상 외국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강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강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속에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속으로 '난 안 될 거야. 외국인의 삶은 여기까지인가 봐.'라는 생각으로 쓰러지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이 '잠재력 있는 사람이 왜 그래.'하고 나를 일으켜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나한테 그들은 내 악몽을 물리치는 용사님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구했다. 그래서 문제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의 악몽은 자신이 직접 물리쳐야 비로소 악몽이 사라진다. 그런데 나는 두려움 때문에 칼을 들고 내 악몽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나타나서 나 대신 칼을 들고 악몽을 쓰러뜨렸다.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겐 다른 의미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직접 칼을 들지 않아서 나를 보호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타인이 계속 지켜줬기 때문에 이끌려서 버티는 것만 잘했다. 이젠 그 버릇을 놓을 때가 왔다.


오늘도 악몽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게 미래가 없을 거라는 말을 하면서 내 자신감을 깎아내렸다. 내가 불행한 외국인으로 살아갈 거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제부터 난 칼을 들고 악몽과 맞서 싸우려고 한다.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언제나 타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뒤늦게나마 깨달아서 맞서 싸우려고 한다.


난 현재 악몽 앞에 서서 칼을 들고 벌벌 떨고 있다. 물리치고 싶은 의지가 강하지만 벌벌 떨린 손이 남아 있는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난 아직 내 인생의 강한 주인공이 아니지만, 벌벌 떠는 상태로 이를 악물고 극복하려고 한다. 내 손이 떨리지 않을 때까지, 나를 위해 싸울 것이고, 나를 위해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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