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보는 필리핀 신화와 전설
필리핀은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고 각각 고유의 신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주제 안에 한 개 이상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번 신화는 월식에 대한 것으로 두 개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Bakunawa(바쿠나와), 필리핀 신화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뱀 괴물로 지하 세계의 정령으로 불린다. 구글에서 Bakunawa를 검색하면 이미지를 찾을 수 있는데 한국에서 등장하는 이무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영어로 Giant라는 단어가 수식될 만큼 거대하기 때문에 그의 입도 넓은 호수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 바쿠나와의 넓고 큰 입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그 입으로 달을 삼켜 월식을 일으켰다.
필리핀 신화에 따르면 모든 것을 창조한 태초의 신인 Bathala(바탈라)가 어두운 밤을 보고 일곱 개의 달을 만들었다. 바탈라가 만든 일곱 개의 달 덕분에 사람들은 달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안전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인간만이 달의 아름다움에 빠진 것이 아니다. 바쿠나와가 하늘에서 빛나는 일곱 개의 달을 본 순간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버린 것이다.
바쿠나와는 한꺼번에 일곱 개의 달을 삼키지 않고 하나씩 집어삼켰다. 달의 아름다움을 꼭 소유하고 말겠다는 집착 때문에 어느새 한 개의 달만이 남았다. 바탈라는 바쿠나가 여섯 개의 달을 삼켰음을 뒤늦게 알고 하나 남은 달을 지키기 위해 대나무를 자라게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사람들이 힘을 합쳐 바쿠나와를 물리치기로 했다. 바쿠나와가 마지막 달을 삼키려고 하는 순간 사람들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달을 당장 돌려줘!"
사람들이 목이 터지라 외치면서 온갖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연 사람들의 외침으로 바쿠나를 멈출 수 있을까. 결과는 효과 만족. 사람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를 참을 수 없었던 바쿠나와는 삼키려는 달을 뱉고 후퇴했다. 이로써 마을 사람들은 마지막 달을 지켰다. 그 후 바쿠나와가 생각을 바꿔 달을 삼키려고 날아갈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달을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새로운 루틴을 지켰다고 한다.
Minokawa(미노카와)는 바쿠나와처럼 바다 위의 섬만큼 몸이 큰 전설의 동물이다. 바쿠나와가 뱀에 가까운 전설의 동물이라면 미노카와는 날개 달린 전설의 새다. 미노카와는 지구 밖 우주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달뿐만 아니라 태양까지 탐냈다.
미노카와의 이야기의 경우, 하나의 달이 동쪽 하늘에서 여덟 개의 구멍을 내고 서쪽 하늘에서 여덟 개의 구멍을 낸다고 한다. 달에서 일어나는 형상을 '달이 구멍을 낸다'로 표현한 것이다. 미노카와는 바쿠나와처럼 욕망을 참지 못하고 달을 삼키기 위해 두 개의 날개를 펼쳤다. 달과 태양, 그리고 인간까지 집어삼키려고 작정한 무서운 새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노카와를 향해 소리쳤다.
"미노카와! 미노카와!"
사람들은 공(Gong)이라는 악기를 두드리면서 미노카와를 계속 불렀다. 미노카와는 악기 소리와 자신을 끊임없이 부르는 사람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달을 뱉어냈다. 이로써 사람들은 미노카와로부터 달을 지켜낼 수 있었다.
나도 친구와 함께 밤 산책을 하다가 보름달을 보면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와, 달이 맛있어 보여. 무슨 맛일까.'
배고픈 상태로 동그랗게 뜬 달을 보면 대보름 빵과 크림빵이 떠올라서 달 위에 설탕 가루를 뿌리는 상상까지 했다. 아마 바쿠나와와 미노카와는 달이 맛있어 보여서 삼키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도 보름달을 보면 맛있어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바쿠나와 혹은 미노카와 같은 전설의 동물이 등장하면 용감한 용사가 나타나서 쓰러뜨리거나 중간에 협상해서 인질을 구하는 전개를 자주 보았는데 필리핀 신화의 경우, 사람들이 '목소리'와 시끄러운 악기 소리로 적을 물리친다. 다른 말로 소음 공격. 마력을 부리는 것도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소음 공격이기 때문에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