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아버지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주변 사람들을 웃기려고 농담을 종종 던지면 어쩐지 아주머니들에겐 잘 먹히곤 했지만, 나에겐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치매에 걸리고 나서 아버지의 유머는 우리에게 잘 먹혔다.
아버지는 방귀로 장난을 쳤다. 뽀옹, 퓌식 등 방귀가 소리 내서 나오면, 연이어 “풋, 풋.” 입으로 방귀 소리를 냈다. 방금 자신이 낀 방귀도 입에서 난 소리인 것 마냥 가장하는 것이다. "뭐야 아빠~!" 우리가 눈을 흘기며 볼멘소리를 하면 또 콧구멍 사이즈를 키우고 계속 풋풋~ 비트박스를 했다. 치매가 진행되어서 많은 걸 잊어가도 방귀로 우리를 웃기려는 시도는 계속 됐다. 자기 이름은 잊어버렸으면서 방귀 장난을 잊지 않은 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기저귀를 찰 정도의 시기에 아버지는 비트박스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농담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의도치 않게 웃음을 준다.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하루 종일 제 말을 잘 따라주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아버지에게 미운 마음이 들었단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일어난 걸 보고도 일부러 아는 체하지 않고, 아버지 침대를 지나쳐 바로 화장실로 쌩하니 지나쳐 갔다. 평상시 동생은 아버지가 일어나면 다가가서 아빠. 일어났어? 하며 다정하게 머리를 쓸어준다. 그리고 침대를 일으켜 물 한잔을 챙겨주곤 한다. 평소와 다르게 자신을 외면하고 걸어가는 동생을 보자 아버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여보세요~ 나 여기 있어요~! 여기!! ”
딸들에 대한 호칭은 진즉 잊었다. 뭐라고 부르긴 해야겠고, 다급한 마음에 여보세요~라고 외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한 것이다. 동생과 전화를 붙들고 아버지가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식사를 할 때도 덕분에 웃는다. 아버지는 밥과 반찬을 균형 있게 못 드시고 반찬만, 특히 한 가지 반찬만 계속 가져갈 때가 많다. 고르게 먹을 수 있게 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어줘야 한다.
“아빠, 이거 좀 먹어봐~ 아~”
아버지가 흘긋 반찬을 보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너 먹어 너~”
너 먹으라며 우리에게 친절히 권유한다. 재차 권유를 해도 아버지는 우리의 손을 살짝 밀며 우리에게 먹으라고 양보한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은 입을 잘 벌려서 꼭꼭 잘 받아 드시면서. 자신이 먹기에 좀 꺼림칙하게 느끼는 음식은 우리에게 넘겨준다.
날 바라보는 아버지 표정에 장난기가 배어있다. 눈과 눈썹이 웃고 있다. 입꼬리와 양 볼을 씰룩 들어 올렸다. 콧구멍이 커졌다.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보고 있지만 금세 입 밖으로 푸푸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다. 여전하시구먼.
치매라서 더 웃는다. 치매에 걸렸는데도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아버지가 더 귀엽다.
치매 어르신들 중에 우리 아빠가 제일 귀여운 어르신이라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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