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클 Dec 01. 2023

귀여운 치매 할아버지의 비트박스  


예전에는 아버지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주변 사람들을 웃기려고 농담을 종종 던지면 어쩐지 아주머니들에겐 잘 먹히곤 했지만, 나에겐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치매에 걸리고 나서 아버지의 유머는 우리에게 잘 먹혔다.       


아버지는 방귀로 장난을 쳤다. 뽀옹, 퓌식 등 방귀가 소리 내서 나오면, 연이어 “풋, 풋.” 입으로 방귀 소리를 냈다. 방금 자신이 낀 방귀도 입에서 난 소리인 것 마냥 가장하는 것이다. "뭐야 아빠~!" 우리가 눈을 흘기며 볼멘소리를 하면 또 콧구멍 사이즈를 키우고 계속 풋풋~ 비트박스를 했다. 치매가 진행되어서 많은 걸 잊어가도 방귀로 우리를 웃기려는 시도는 계속 됐다. 자기 이름은 잊어버렸으면서 방귀 장난을 잊지 않은 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기저귀를 찰 정도의 시기에 아버지는 비트박스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농담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의도치 않게 웃음을 준다.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하루 종일 제 말을 잘 따라주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아버지에게 미운 마음이 들었단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일어난 걸 보고도 일부러 아는 체하지 않고, 아버지 침대를 지나쳐 바로 화장실로 쌩하니 지나쳐 갔다. 평상시 동생은 아버지가 일어나면 다가가서 아빠. 일어났어? 하며 다정하게 머리를 쓸어준다. 그리고 침대를 일으켜 물 한잔을 챙겨주곤 한다. 평소와 다르게 자신을 외면하고 걸어가는 동생을 보자 아버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여보세요~ 나 여기 있어요~! 여기!! ”     


딸들에 대한 호칭은 진즉 잊었다. 뭐라고 부르긴 해야겠고, 다급한 마음에 여보세요~라고 외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한 것이다. 동생과 전화를 붙들고 아버지가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식사를 할 때도 덕분에 웃는다. 아버지는 밥과 반찬을 균형 있게 못 드시고 반찬만, 특히 한 가지 반찬만 계속 가져갈 때가 많다. 고르게 먹을 수 있게 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어줘야 한다.      

“아빠, 이거 좀 먹어봐~ 아~” 

아버지가 흘긋 반찬을 보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너 먹어 너~” 


너 먹으라며 우리에게 친절히 권유한다. 재차 권유를 해도 아버지는 우리의 손을 살짝 밀며 우리에게 먹으라고 양보한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은 입을 잘 벌려서 꼭꼭 잘 받아 드시면서. 자신이 먹기에 좀 꺼림칙하게 느끼는 음식은 우리에게 넘겨준다.       


날 바라보는 아버지 표정에 장난기가 배어있다. 눈과 눈썹이 웃고 있다. 입꼬리와 양 볼을 씰룩 들어 올렸다. 콧구멍이 커졌다.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보고 있지만 금세 입 밖으로 푸푸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다. 여전하시구먼.      


치매라서 더 웃는다. 치매에 걸렸는데도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아버지가 더 귀엽다.        


치매 어르신들 중에 우리 아빠가 제일 귀여운 어르신이라 자부한다.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 구독과 좋아요! 

https://youtube.com/shorts/P_nymVaORE0?feature=shar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