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버지의 정기 치매검사와 진료가 있었다. 아침에 동생이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 올해 봄부터 아버지는 파주에 있는 노인공동생활가정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를 뵈러 가는데, 병원 진료 날짜를 맞추느라 이번에는 열흘 만에 뵙게 되었다. 이날의 여정은 집에서 출발해서 파주에서 아버지 픽업, 집 근처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다시 파주, 집으로 돌아오는 300km의 장거리 길이다. 역할을 분담해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는 건 동생이 맡기로 했고, 나는 가는 길 운전을 하기로 했다.
동생이 아버지 휠체어를 밀면서 병원 입구로 들어섰다. 먼 거리라 아버지에게 무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둘 다 표정이 밝다. 날 보자마자 동생이 물었다.
“언니, 아빠가 오는 길에 뭐라고 했는지 알아? 들으면 깜짝 놀랄걸.”
말기 치매로 접어들면서 아버지는 말수가 줄었다. 말을 해도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을 하거나 알아듣지 못할 이상한 말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표정도 반응도 줄어들었다. 무엇을 잘 느끼지 못하는 건지 아님 표현을 못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앞에서 호들갑을 떨어도 아예 쳐다보질 않거나 무감각하게 멀뚱히 있는 때가 많다.
“왜, 뭐라고 했는데?”
“아까 차에서 나한테 ‘니가 옆에 같이 함께 있으니 참 좋다’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진짜?”
“어. 진짜 그렇게 말했어. 니가 옆에 같이 함께 있으니 참 좋다고, 듣고 깜짝 놀랐다니까.”
동생을 알아본 것도 놀라웠고, 아버지가 또릿한 문장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도 우리에겐 엄청난 일이었다. 옆에 있어서 좋다고 말하다니.
검사실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검사실 안에서 검사를 받는 동안 동생과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틈으로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
“아버님, 이름이 뭐예요? 이름!”
“......”
“아버님, 이 단어를 따라 읽어볼까요? 소나무, 비행기...”
“......”
언성을 높인 검사자 선생님의 목소리만 애처롭게 들릴 뿐, 아버지는 평소처럼 모든 질문에 묵묵부답이다.
치매를 노래로 비유한다면 치매는 확실히 변박의 노래일 거다. 아버지의 머리와 마음 안에서는 가끔 이렇게 스파크가 인다. 조용한 골목길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 태연하게 날 바라보는 고양이처럼, 아버지의 치매는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우리를 반짝 놀라게 하고 미소를 짓게 한다. 보이는 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 이면에는 내가 볼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진료를 마친 후, 늦은 점심을 같이 먹고 차에 탔다. 파주로 향하는 길, 아버지는 뒷자리에서 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차창 밖의 풍경을 구경했다. 비록 병원 진료 때문이었지만 딸들과 함께 한나절을 보낸 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평소보다 우리와 눈도 잘 마주치고 자주 웃었다.
“아이고, 먼 거리 다녀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아버님 잘 다녀오셨어요?”
노인공동생활가정의 원장님은 외출을 마치고 온 아버지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버지가 침대에 앉자마자 기저귀부터 확인해 주셨다. 차 안에서 불편해하는 내색 없이 웃고 있어서 알지 못했는데 아버지의 기저귀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원장님이 아버지 기저귀를 교체해 주는 사이 나는 동생을 재촉해 금세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퇴근길 도로정체가 시작되고 있을 시간이었다.
우두커니 침대 위에 앉아있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출발을 서둘렀다. 우리가 없어진 걸 아빠는 알까?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매번 그랬던 것처럼, 아빤 우리가 왔다 간 것도 금방 또 잊어버릴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덮어보려 했지만 오늘은 잘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