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절약보다 중요한 건 ‘돈 쓰는 법’이다
스무 살을 지나고 처음 돈을 벌었을 때, 나는 부자가 되는 것 같았다. 학생 때는 만 원, 이만 원에도 눈치를 보며 쓰던 내가, 사회에 첫발을 디디고 몇 백만 원을 받았을 때 느꼈던 그 짜릿한 자유감. 카드를 긁을 때의 쾌감은, 그동안 참아왔던 갈증을 한 번에 풀어내는 것 같았다. 필요한 물건뿐 아니라 갖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담았고, 주말이면 여행과 맛집에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야근과 업무를 익혀나가는 데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지만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월급날도 금세 왔다. 그런데 한 1년쯤 지나니까 통장에 남은 돈은 늘 비슷하거나, 오히려 부족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어? 많이 번거 같은데 왜 남는 게 없지?”라는 의문은 사회초년생 누구나 겪는 생각일 것 같다. 돈은 스스로 쌓이지 않고 사라졌다.
점점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플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예금과 적금을 했다. 나름 열심히 찾아서 이율이 높은 은행에 3년 미만의 기간으로 저축 상품을 가입했다. 만기가 되어 원금과 이자를 받았다. 근데 소득세 14.5%를 떼고 보니 생각보다 이자가 크지 않았다.
회사생활 3년 차 되니 주변에는 결혼 자금을 준비하는 동기, 출산으로 인생 2막을 여는 선배, 은퇴 준비에 들어간 부모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제야 ‘나도 진지하게 목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금융 지식이 전무했다. 서점에서 책을 샀다. ETF, JEPI, 배당, 양도 소득세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은행 창구에서 권해준 IRP(개인형 퇴직연금)에 순진하게 가입했다.
IRP는 분명히 좋은 상품이다. 연간 300만 원까지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에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20대에게 IRP는 너무 먼 이야기일 수 있다. 왜냐하면, 결혼·독립·이직·유학 같은 5년 내 필수 자금 이벤트가 계속 터지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IRP는 해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결국 결혼 시점에 해지했고, 중도해지로 세액 공제는커녕 손해만 봤다. 이게 나의 20대 스토리다. 보통 월급이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과정을 겪지 않을까 싶다. 결혼 전에는 목돈이 필요한 경우, 혼자 살더라도 독립자금으로 퇴직과 같은 먼 미래의 자금은 중도해지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돈 벌 시간이 많으니 퇴직연금인 IRP보다는 3년 내에 비과세 해택을 받을 수 있으면서 목돈을 만드는 ISA를 추천한다. 물론 급여가 많거나 당장 저축을 많이 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면 두 개다 하는 것이 좋지만 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사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여행도, 하고 싶은 경험도 정말 많은 시기였다. 학생 때도 풍족하지 못했는데 너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절제한다면 행복지수가 하락했을 것이다. 금전 지수 늘리자고 행복지수 하락하는 것은 ㅜㅠ 너무 슬픈 일이니 두 개다 챙기는 방향으로 하는 게 낫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최대 2000만 원까지 납입할 수 있고, 200만 원(24년부터 500만 원으로 바뀌었다)까지 수익이 비과세, 초과분도 9.9% 낮은 세율로 과세된다. 예금, 펀드, ETF까지 한 계좌에서 운용할 수 있으니 20대에게 ‘5년 내 목돈 + 절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계좌였다. 또 ISA는 국내 상장 해외 ETF로 간접 투자가 가능하여 해외 지수 투자도 가능하다. 24년부터 바뀐 정책으로는 연 2000만 원 금융소득세 대상자도 가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다시 20대라면, 먼저 너무도 잘 알려진 ‘풍차 돌리기’를 활용했을 것이다. 풍차 돌리기는 적금을 여러 개 분산해 매달 만기 상품이 나오도록 설계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매달 50만 원씩 12개월 적금을 하나씩 개설하면, 1년 뒤부터는 매달 50만 원 + 이자가 돌아오게 된다. 이 돈으로 다시 적금을 굴리면 ‘돌아가는 풍차’처럼 자금 흐름이 안정된다.
풍차 돌리기의 장점은 단순하다. 적금을 강제적으로 쪼개면서도, 매달 만기라는 작은 보상이 주어지니 지루하지 않다. 사회초년생에게는 소비를 조절하면서도 ‘돈이 자라는 경험’을 체감할 수 있는 좋은 첫걸음이다.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실 숫자가 아니다. ‘내 행복지수와 금전지수의 균형’이었다.
20대는 여행도 가야 하고, 사랑도 해야 하고, 실패도 해봐야 한다. 학생 때 부족했던 자유를 보상받듯 누리는 시기다. 만약 그때 허리띠를 너무 졸라매고, 모든 소비를 잘못된 것처럼 죄책감을 느꼈다면 어땠을까? 분명 돈은 조금 더 모였을지 몰라도, 삶의 만족도는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20대에게 “절약”이 아니라 “경험 투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외여행, 새로운 공부, 소소한 취미에 쓰는 돈은 단순히 사라지는 지출이 아니다. 그것은 자산의 또 다른 형태, ‘나라는 브랜드’의 성장에 쓰이는 투자다. 단, 이 경험 투자도 ISA나 풍차 돌리기 같은 시스템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유지된다.
ISA 먼저 개설: 5년 내 목돈 마련을 목표로 하되, 해외 지수 ETF(간접투자)·예금·펀드 분산으로 운용.
풍차 돌리기로 저축 습관: 소액이라도 꾸준히, 매달 만기 자금이 돌아오게 구조화.
행복 소비는 계획적으로: 여행·경험에 쓰는 돈을 ‘예산’으로 잡아두고, 죄책감 없이 즐기기.
세금 공부 필수: 금융상품의 세금 차이를 아는 것만으로도 연간 수십만 원이 달라진다.
30대 자산 로드맵 미리 준비: 결혼, 전세, 창업 같은 이벤트에 대비한 자금 플랜을 머릿속에 그려두기.
20대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시기다. 이때 돈을 어떻게 쓰느냐는 단순히 저축액을 늘리는 문제를 넘어, 인생 전체의 성장 자본을 마련하는 문제다. IRP와 연금저축이 노후를 위한 장기 투자라면, ISA와 풍차 돌리기는 20대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위한 단기·중기 전략이다.
내가 20대라면, 무조건 절약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ISA로 목돈을 만들고, 풍차 돌리기로 저축 루틴을 굳히며, 경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균형을 잡을 것이다. 그렇게 금전지수와 행복지수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것이야말로, 20대를 가장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