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전락의 이야기다. 다른 이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의 텃밭에 거름을 준다. 동정과 연민이라는 마스크를 벗기면 일말의 고소한 감정을 옅게 띄고 이 따끈따끈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퍼뜨리고 싶어 간질간질해진 입만이 남는다.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부재가 다른 핑계로는 설명되지 않을 곳에만 신속하게 사실을 전했다. 입 밖으로는 내고 싶지 않아서, 아니 내어지지도 않아서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오는 위로의 말을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읽다 보면 금세 눈물이 고였다.
그 후로는 ‘눈물이나 흘리고 자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자다가도 깨야 할 밤들의 연속이었다.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고 새로운 상황, 장소, 사람들에 적응하느라 뇌는 과부하에 걸렸다.
병에 걸린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그냥 다른 사람들 보다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마치 교통사고처럼. 그렇다면 내가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이 병동은 재수가 옴 붙은 사람들만 모인 곳인가. 수학적 확률로만 보면 로또 당첨자들과도 다름이 없는데.
비슷한 슬픔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도 결국은 서로 다른 인간들이다. 다들 똑같이 수척하고 초췌한 얼굴을 하고 애통함을 나눠 먹고 있진 않다는 말이다. 원래 말 많던 사람은 자식이 아파도 말이 많다. 이 틈에도 또 다른 거름을 얻어 ‘나만의 작은 행복 텃밭’을 비옥하게 가꾸느라 바쁜 이들이 보인다.
병원은 잠자리가 편치 않다. 그 외 나열하기도 귀찮은 갖가지 불편함들이 제멋대로 쌓여 테트리스 한 판이 순식간에 GAME OVER … 내일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판이 시작되고 결말은 어제도 오늘도 똑같다. 집에 가기 전까진… 예민함에 날이 서고 인간 혐오가 짙어진다. 종교와 신에 대한 회의와 불신은 부화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래, 시간은 가겠지. 시간은 어차피 가니까. 내가 일 년의 4분지 1 되는 시간 동안 보고 겪은 일을 생각하면 이미 백 살은 넘긴 것 같지만. 시간은 가고. 백 살이 아니라 반 백 살이라도 되었을 땐 오늘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복기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