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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아니 Feb 11. 2020

입대

#이지안 이야기-16 어린이집과 국가의 존재의미

됐다.


어린이집 말이다. 그것도 국공립 어린이집. 비록 너른 마당이 있는 3층 단독건물은 아니지만, 집 앞 상가건물 2, 3층에 든 조그만 어린이집이지만, 이리 기쁠 수가 없었다. 지안이가 당첨됐다는 소식을 아내에게 전해들은 날, 2001년 대입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의 카타르시스를 다시 느꼈다. 이 무슨 기대 안한 로또요 대박인가. 그 덕분에 3월 아내의 복직은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됐고 나 역시 양가에 다시 손을 벌려야 하나, 두통처럼 몇 날 며칠 달고 살았던 근심거리를 쳐낼 수 있었다. 처음 적응기간에는 잠깐 할머니들 손이 필요하겠지만, 이내 적응되면 내 출근 시간과 아내의 퇴근 시간 사이 아이를 보내고 데려올 수 있다. "이지안 합격했습니다" 그 전화 한통이 아니었으면 아내의 복직은 무산됐을 것이고, 나의 시름도 길어졌을 것이고, 독박 육아 장기화로 인한 가정의 스트레스로 집안 분위기는 퉁퉁 불어버린 라면마냥 험악했을 것이고, 아직 동네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지안이는 내내 엄마와 아빠만 물어뜯으며 하루를 보냈을 것인데, 이 모든 '혼돈의 카오스'를 마치 복음 같은 어린이집 전화 한 통이 날려주셨다. 아멘.


그러면서 든 생각은, 그런데 이런 상황이 정상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이 키우가기 난망하고 고된 일이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 어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원시시대부터 고조선을 지나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에도 힘든게 당연하지만, 이렇게 부모의 일상 기반을 뒤흔들고 맘 졸여야 하는 일인가, 싶었다. 돌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국경을 넘어가면. 지금의 한국에서는 출산과 육아가 아빠 엄마의 직업을 흔들고 생활 기반을 흔들고 가족을 흔들고 미래 계획을 흔든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어린이집 학대 뉴스, 병원이나 조리원의 신생아 학대 뉴스에 부모들은 분개하며 무력감을 느낀다. 엄마 아빠의 눈이 닿지 않는 공간에서, 육아와 보육의 2차 책임을 진 이들이 그들에게 기대하는 책임을 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사회를 불신 투성이로 만든다. 그래서 CCTV가 등장하고, 녹화 기록을 보려는 부모들이 등장하고, 그 기록을 감추거나 숨기려는 어린이집이 등장하고, 그러다 보면 경찰이 등장하고 기자가 등장한다. 이 무슨 막장 드라마. 그런데 드라마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인 점이 더 서글프다. 이런 스토리는 그저 영화 속에서만 봤으면 싶은데, 경악스럽게도 뉴스에서 본다.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심심풀이 땅콩처럼 "우리 나중에 이민갈까?" 하는 농담 아닌 농담을 아내와 나눈다. 그런데 대화가 끝나고 잠자리에 누워선 그 농담의 5년 뒤, 10년 뒤 희망찬 미래를 나도 모르게 상상한다. 저 푸른 밴쿠버 스탠리파크 잔디밭에서 아이들은 뛰놀고, 엄마 아빠는 일찍 퇴근하고, 좀 덜 걱정하며 자식 새끼, 손주 새끼들을 키우는 상상을.


이런 생각들은 생각으로 흘러가고, 그 와중 아이는 어린이집 입소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다. 물론 아이가 하는건 아니고 부모가 '시킨다'. 뭐랄까, 내가 아기라면 '어린이집에 간다는 것'은 꼭 입대하는 기분일 것 같다.



시간 맞춰 밥 공짜로 주지, 단체생활 하지, 혼날 때도 있지, 그리고 가기 싫은데 가야하지. 그렇지. 비슷하지 않은가.


선생님한테 이쁨은 둘째 치고 미움이라도 받지 않으려면 숟가락질부터 잘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시켜보는데 난장판이 따로 없다 아주. 의자 아래 돗자리를 깔고 밥을 먹여도 30여 분의 식사가 끝나면 거실 구석 구석에 찰진 닭고기, 소고기, 브로콜리, 팽이버섯, 시금치 조각 따위가 눌러붙어 있다. 내가 직장에 간 사이, 이 구석 구석을 닦는 건 고스란히 아내의 몪이다. 가끔 못 보고 지나쳐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것들을 발견하고 손톱으로 긁는 건 내 몫이다.


어린이집은 낮잠 시간도 따로 있다고 들었다. 아내가 상담차 방문했을 때, 그 시간에 자는 애들은 자는데 잠이 안 오는 애들은 멀뚱멀뚱 누워 있다가 갑자기 등장한 낯선 방문객을 뚫어지게 쳐다본단다. 지안이도 낮잠을 자긴 하는데 시간이 대중 없다. 12시, 1시, 2시, 어떨 땐 저녁 7시, 8시. 자는 시간도 대중 없다. 짧으면 30분, 길면 두시간 반. 입사 동기에게 물어보니 "오빠, 어린이집 가면 다 따라서 하게 돼!"라고 한다. 아 정말 그럴까. 나의 바람처럼, 그 동기의 경험처럼, 아기는 그렇게 새로운 현실과 환경에 스스로 적응할까.


어디든지 올라갈 여지만 있으면 딛고 올라가려는 습관, 밥먹을 때 입을 조그맣게 벌리는 모습, 유난히 큰 목소리, 자고 일어나서 엄마나 아빠가 없으면 대성통곡하는 일관됨. 이 모든 것들이 어린이집 입소를 앞 둔 근심거리다. 어차피 닥칠 일은 닥쳐야 하고 겪어야 할 일은 겪을 수 밖에 없으니 걱정하는 것도, 근심하는 것도 부질은 없다. 그런데 알면서도 회사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이지안의 대환장 식사파티를 떠올리는게 아빠 마음인 것 같다.


원래 맨 처음 연락 받았던 어린이집은 다른 곳이었다. 사립이었고 거리가 좀 멀었다. 지금 사는 집에서 걸어서 한 20분~25분. 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길. 마을버스와 수많은 차들이 다니는 도로와 몇 개의 높은 턱을 거쳐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어차피 우리 부부는 어디든 너무 절박했기에 그 곳에 보낼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내가 먼저 혼자 상담차 다녀온 뒤 좀 먼 것 같다고 말했고, 며칠 뒤 밤에 산책 겸 유모차를 밀고 같이 다녀왔는데. 맙소사. 겨울에 오르막길 눈이라도 얼면 대참사가 날 것 같은 길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냐"며 체념하던 차, 다른 곳에 있던 동네 국공립 어린이집이 바로 우리 아파트 앞으로 이사왔고, 그 곳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새 어린이집은 우리 집 거실에서 내다 보인다. 대기 줄을 이리저리 고민하며 갈아타기를 수 차례 했던 아내의 베팅이 잭팟을 터뜨린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어린이집은 집에서 가까운게 짱이야!". 그걸로 치면 여긴 짱이다.


그 즈음에 다른 집 사정도 물어봤다. 처지는 참 다양했다. 멀쩡하게 다니던 어린이집이 폐원해 난감한 경우도 있었고, 결국 월 220에 입주 도우미를 쓰는 집도 있었고, 친정 혹은 시가에 아이를 맡기도 생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나라에서 정부는 아이를 낳으라고 홍보하고, 전문가들은 제각각 저마다의 저출산 해법을 신문에 길게도 쓴다. 해법과 대책이 없어서 현실이 이지경인 것이 아니다. 그걸 실행하지 않는, 실행할 예산을 중간에서 헤쳐먹는, 그리고 선거를 의식해 때마다 말을 바꾸는 사람들 탓에 현실이 이지경이다. 서울의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고 학생은 더 줄어들테고, 아기는 그보다 더 빠르게 줄어들테다.


그럼에도 내 주변에는 신기하게도 애 둘 이상을 가진 또래들이 꽤 있다. 게중 많은 부모들은 이유를 말한다. "혼자 노는거 보면 좀 짠해서, 동생 있으면 좋잖아요."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기생충 오스카상 수상장면을 보는 것보다 더 뭉클하다. 첫째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둘째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그들의 모성애가, 결국 이 도시와 국가를 지탱하는 셈이다. 수많은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그런 비장한 결심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갑자기 둘째를 가졌지만(그래서 태명도 '갑작이') 예쁘게 낳아 잘 키웠으면 한다. 단, 우리의 자손으로 이 도시와 국가를 지탱할 생각이나 사명감은 추호도 없다. 국가도 도시도, 점점 더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지자체는 이 도시의 모든 엄마들에게, 정부는 이 영토의 모든 부모들에게, 임산부들에게, 잘 해야 한다. 그래주었으면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어딜 갈 수가 없다. 내내 방콕여행이다. 동네 아기 엄마 아빠들과 빨리 안면을 터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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