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소장 Apr 20. 2023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내 마음 알기 2

자신에 대해 몇 % 나 알고 계신가요?


존경하는 한의사분이 ‘몸이 힘들었던 기억은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고 말하는데 너무나 공감되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간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흘러도 힘들었던 감정은 남아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와 비슷한 사건을 만나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묻혀있던 감정이 건드려지면서 현실보다 더 크게 자극받게 된다. 


 청소년기에 믿었던 친구로부터 거절이나 배신당했던 경험은 이후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 후 더 열심히 신경 쓰고, 더 맞추고, 또는 쉽게 마음 내주지 않고 경계의 벽을 치며 살았다고 한다. 상담을 받으면서 그때의 경험이 현재 관계에서 어떻게 든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고는 좌절을 한다. 극복한 것이라 믿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알고 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항상 부분만을 알 뿐이다. 상담을 시작할 때 가끔 묻는 말이 있다. “자신에 대해 몇% 나 알고 계신가요?” 이렇게 물으니 눈치가 뻔하지 않는가? 어느 누구도 100%라는 대답은 하지 않는다. 자신만만하게 살고 있는 상태에서는 상담에 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보통 30%~ 70%라고 말한다. 대답은 은근히 겸손한 수준이다. 잘 살다가도 어떤 사건에 의해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상담에 온다. 




신입직원 A 씨; 아침에 일어났는데 회사도 가기 싫고 너무 우울하다. 어제 일처리를 잘못해서 상사에게 혼이 났다. 그동안 회사생활도 잘하고 사람들과 관계도 좋았는데 실망을 시켜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며 앞으론 좀 더 세세하게 보면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A 씨가 혼난 상황은 신입직원으로서는 당연히 힘들만한 일이다. 이 마음에는 아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데 스스로 통제될 수 있는 것이다.      


신입직원 B 씨; 아침에 일어났는데 회사도 가기 싫고 너무 우울하다. 어제 일처리를 잘못해서 상사에게 혼이 났다. 그동안 회사생활도 잘하고 사람들과 관계도 좋았는데 앞으론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하철을 탔다. 조용히 앉아서 가다 보니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른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네’. ‘그동안 가식적으로 살아온 건가?’ ‘역시 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지’, ‘날 무시하면 어떡하지?’ 등등의 소리들이 하루 종일 괴롭힌다. 


B 씨는 혼나고 나서 통제할 수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현재 벌어진 일들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머리를 흔들어봐도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 그렇게 힘들만하지’라고 여겨지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 아는 마음(의식)을 넘어선 모르는 마음(무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통제할 수 없다. 바로 괴로움의 원천이고 해결해야 할 마음이다.       

A 씨와 다르게 B 씨의 스토리에선 과거 삶에서 아팠던 파편이 보인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이미 무능함, 무시, 거부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가 자극되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처럼 보인다. 앞서 이야기했던 ‘마음이 힘들었던 기억은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는 말이 떠오른다.무의식 속에는 삶을 살아오면서 힘들어서 묻어놓았던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존재한다.      




오죽하면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아주 옛날 옛적의 소크라테스 시절부터도 그 말을 했겠는가? 그만큼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심리학용어로 ‘무의식의 의식화’라 할 수 있다. 가끔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부끄러울 때가 있다. 뭐가 그리 잘났다고 1인분이 아닌 3인분, 5인분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말이다. 또한 애를 쓰면서 타인의 삶을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살아오느라 내면에선 부대꼈던 마음도 남아있다. 좋은 사람(?)이란 기억도 사실은 나만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남들은 내 안에서 참느라 부대끼면서 삐져나온 공격성과 우울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억압하는 내 감정도 모른 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의 정신을 안다와 모른다의 비율을 따져보면 아는 마음은 50%에도 못 미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걸 느낄 때면 과잉팽창되었던 나를 발견하고 부끄러워진다.내 사이즈가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부족한 모습을 마주하는 경험들이 쌓이며 왠지 단단해지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