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작업일지
1200자가 목표였으나 4000자를 썼습니다.. 뭘 써야할지 고민하다 A4 한 장만 쓰자 생각하고 빈 화면을 켰는데, 그렇게 됐다...
실제로 걷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여러 번의 산책에 대한 글을 쓰고나니 5년 전에 읽었던 독일 사상가 발터 벤야민이 생각났다. 강독 수업을 들을 때 밤새 발제문을 쓰고 동이 튼 후 근처 공원을 걸으며 보았던 장면들이 다른 어느 시간대의 공원보다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서였을까. 벤야민이 보들레르를 분석하며 도시를 산책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플라뇌르의 사유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하고 싶었으나 (분명 그날 아침 도시를 산책하며 깊이 공감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확한 문장을 찾는 것을 실패했다. 분명 어제 구글링하다가 다시 찾아 기뻤지만 메모를 하지 못했다.
어제는 출근하며 집에 있던 책인 <일방통행로>를 읽었다. 이 책에서 발견한 말을 대신 인용해보자면... "(점을 보러 가는) 사람이 자기 운명이 밝혀지는 것을 지켜볼 때 보여주는 순종적인 둔감함보다 더 용감한 자가 미래에 손을 댈 때의 과감하고도 민첩한 손놀림과 닮지 않은 것도 없을 것이다. (...) 지금 이 순간에 진행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이 저 먼 미래를 예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잘 기억은 못하지만 점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마음으로 첫 번째 글을 발송했다.
몇 번의 퇴근 길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떠올려 다시 적는 것이 지금 이 순간 진행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에 대한 작은 시도가 될 수 있을까. 어떤 결정적인 것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벤야민이 과거의 기억을 다시 재생하는 것이 지닌 잠재력에 대해서도 말한 바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얼마전 보냈다가 취소한 편지를 다시 발송하고 읽어보니 그 글에 이 프로젝트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A가 B가 되는 과정을 쓸 수 없다면, A가 뭐가 되는지 한 번 지켜보자.
글을 보낸 순간부터 이런저런 길고짧은 반응들이 도착하기 시작하고 나는 그걸 보면서 심장이 곤두박질 쳤다가 다시 비정상적으로 점프하기를 반복하는 중인데 일상이 이렇게 다이나믹할 수가 없다.
임경선 작가님은 '날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에서 벗어나라'고 했고, 오늘 본 어떤 영화는 내 글이 읽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느껴지게 할까봐 조금 두렵게 했는데, 그래도 내가 계속 쓰기를 다짐하고 늦은 작업일지를 올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벤야민의 이 말 때문일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이 섬멸의 광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산출 Zeugung의 도취 속에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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