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그녀의 덕질만을 이야기했다면, 여기서 잠시 나의 덕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질긴 인내, 그럼에도 가혹한 외면으로 점철된 나의 덕질, 그것은 실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서러운 이야기... 개봉박두!!!
이 애틋한 덕질의 대상은 바로 이 '덕질일기'의 주인공인 그녀, 바로 나의 따님이다. 어쩌다 나는 딸의 덕후가 되었을까? 그 과정을 짚어보자.
1. 모태 까칠
그녀는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모든 아기들이 엄마 품에서 고이 잠들 때, 그녀는 엄마가 안아줄 때면 귀찮다는 듯 연신 발로 찼다. 그녀는 배고플 때를 제외하고는 잘 안겨 있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눈에 콩깍지가 씐 엄마에게 까칠함은 도도함으로 해석되었고, 그 무엇이라도 입덕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녀의 태생적 까칠함에도 사실 그녀는 온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행운아였다. 특히 그녀의 외가에서는 유독 그 사랑이 각별했는데, 그것은 초등학교 1학년까지 그녀가 집안의 유일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녀 하나만 바라보는 광팬이 무려 6명( 외조부모+부모+외삼촌+이모)이나 있었으니 까칠함이 무슨 대수랴.
<괭이네 가족> by 토갱이를 사랑하는 막내
3. 동생 한정 무한사랑
그러나 그녀의 매력에 포텐이 터진 것은 그녀에게 동생이 생겼을 때부터다. 장장 8년 동안 온 집안의 사랑을 독점했던 그녀인 만큼 동생에게 질투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동생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무한사랑이었다. 8년 간 혼자 받은 사랑을 오롯이 동생에게 전가한 그녀는, 방년 17세가 된 지금까지도 그 무한사랑을 지속하고 있다.
이 시크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가 동생을 향해 무한 하트를 날릴 때, 그녀의 덕후인 나 역시 두 딸에게 무한 하트를 발사한다. 물론 그녀들의 하트는 절대 내게 오지 않지만 말이다.
4. 팬의 변심에도 쏘쿨
초1. 그녀에게는 전환의 시기였다. 동생뿐만 아니라 외사촌 동생들도 줄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 그녀가 독점적 애정의 대상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나의 그녀. 팬들의 변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유의 까칠함을 유지함으로써 '집 나간 팬심'까지 다시 사로잡았다. 예비 고1인 그녀에게 아직도 온 식구가 조공을 바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더구나 그녀는 조공 역시 가려 받는다. 주는 용돈에도 'NO'를 발사하는 그녀, 네가 진정 갑이다.
5. 효율적인 팬 관리
그것만이었다면, 나는 이 외로운 짝사랑을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흑흑. 그러나 나의 귀여운(!) 따님은 이 팬을 위한 역조공에도 능수능란하다. 피곤하다고 하는 엄마에게 툴툴대면서도 남아도는 힘을 발휘해 마사지 시전. 타고난 정리 능력을 발휘해 집 청소 말끔. 그래 놓고 툴툴거린다.
그뿐이랴. 덕력으로는 저기 멀리 하급 레벨에 머물러 있는 엄마에게 가르침을 주는 일에도 열정적이다. 주말 밤이면 자는 엄마 깨워서 2시간 정도는 너끈히 본인의 주간 덕질 활동을 얘기해준다. 확실히 츤데레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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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나의 그녀를 향한 덕질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의 방문을 열어 필요한 것을 물을 때마다 온갖 구박을 당하지만 그래도 꿋꿋하다. 엄마는 너의 덕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