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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Jan 01. 2024

2023년 우아한 실패

우렁찬 성공 회고가 넘쳐나는 시즌에 실패를 꺼내본다

새해를 맞아서 한 동안 헬스장을 가도, 영어 학원을 가도, 일터에서 우렁찬 분위기가 넘칠 예정이다. 


편 나에게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때가 있었다. 한 해를 더 하면서, 하나씩의 성취를 쌓아올리는 것만큼, 꺼끌거리는 순간을 마모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새해 첫 포스트는 버그 수정에 대한 것이다. 물론 2023년은 좋은 일도 참 많았다. 월마다 나열해보니 올 한해는 감사한 일이 정말 많았고,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부지런히 편지를 전달하기 바쁠 예정이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부침도 겪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자극이 오면 발버둥쳤고, 발 버둥은 우아하지 못하다. 


언젠가 3년 뒤에 또 인생의 전환 다리를 필연적으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우아한 쇠퇴를 맞이하기 위해 나를 위해 메시지를 남겨둔다. 그리고 새해의 우렁찬 분위기 속에서 속을 앓고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해.



2023년 회고 중 - 잃은 것 파트


닭의 일생 동안 매일 먹이를 주던 농부가
결국 그 닭의 목을 비튼다.
-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처음에는 왜 나에게 이렇게 억울한 일이 생겼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와 마찬가지로 커뮤니티도 규모의 확장을 이루다 보면, 당연히 이의 '역'도 발생한다. 사람들끼리 가십이라든지, 배타성이라든지, 이 아름답지만 불평등한 우주에서는 확률적으로 누군가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게 내가 아닐 특권은 어디있겠는가? 그리고 이 아름다움의 특권을 가장 누렸던 내가, 이 불행을 맡는 다는 것은 어찌보면 공정한 일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그 아름다움의 시간만큼 파괴적이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사람마다 주기는 다르겠지만 나에게 하나의 문이 닫히고 열리는 시간이 3년에 한번씩 왔었다. 그래서 2022년 가을,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는 동시에 떠날 때가 되었다고 직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평온함에 머무르려던 관성이 너무 강했고 그래서 부정적 사건이 한 두차례씩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 커뮤니티에서 다른 가십에 휘둘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는데도 묘한 동정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 정도 일쯤이야 하기엔 사실 힘들었지만, 아 아름다움을 위해 나는 이 어두움도 견뎌야 한다고 다짐했었다. 힘든 일이 공개적으로 생중계 되고도 의연하게 다시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감정이입이 되었다.


운명은 내가 버티려는 힘만큼 더 강한 반작용을 준다. 결국 버티다가 순응한 죄로 그 후유증 컸다. 이별을 겪을 때 마다 염세에 빠지면서 새로운 시작도 별 거 아닐 거라고 한다. 그 어떤 새로운 자극도 시간의 빨리 감기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별거 아니라고. 그 어떤 인생의 순간도 빨리감기를 하면 죽음에 도달할 거라는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처럼 말이다. 함께 했던 시공간에게 우아한 쇠퇴를 내어주고, 새로운 문을 향해서는 어린 아이처럼 두려움 없이 다가가자.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실패에 우아할 것] 글을 다시 읽어보자. 




우리는 꾸준히 실패할 거예요.
그때마다 우아한 실패를 기억하세요

우리는 앞으로 꾸준한 실패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일하는 장면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장면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겠지요. 우리는 그때마다 우아한 쇠퇴, 우아한 실패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늘려갈 회복탄력성에 기반해, 내가 지금 실패한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거리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성공할 때에는 아이처럼 굴어도 좋지만, 실패할 때 만큼은 더 세련되고 우아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대를 하지 않으려 애쓰지 마세요. 당신의 기대는 한 번도 죄였던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그냥 순수하게 기대했던 것뿐이고 당신의 기대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아무 이유 없이 운 좋게 성취될 때도 있고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기대는 죄가 없고, 당신도 죄가 없습니다. 그냥 상황이 그랬습니다. 당신에게 불행감을 가져오는 사건들을 많은 경우 당신의 노력과 기대와는 상관없이 운과 상황에 의해 좌우됩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한다고 했습니다. 수백 번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일으켜가며 어떻게든 끝까지 하려 했습니다. 당신이 모두 알지요.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주인공이 나였으면 좋았을 일이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따위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억지로 만들어 낸 가치가 아니어도 당신과 나는 이대로 충분합니다. 


우리의 취미는 꾸준히 '기대하는 것'
백번을 실망한대도


기대하세요. 내일의 날씨, 이따가의 점심메뉴, 오랜만의 시내 외출, 개봉할 영화와 새로운 드라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에도 다시 일어나는 힘은, 지치지 않는 기대에서 나옵니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달걀샌드위치가 형편없었대도, 저녁으로 먹을 소고기덮밥은 괜찮을 수 있습니다. 이번 학기의 학점이 개판이었대도, 내일 보기로 한 영화는 재밌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취미는 '기대하는 것'. 백 번을 실망한대도.


우리의 뇌는 이미 그렇게 설계되어 있고 당신은 그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잔소리를 더 하겠습니다. 잦은 실패 경험으로 만성적인 무력감과 공허감을 겪는 시기에도, 당신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사랑받지 못했고, 실패했고, 무쓸모한 사람> 이라는 과거의 기억은 명확한 근거나 디테일이 없고 무턱대고 당신을 규정해버립니다. 내가 정말 모든 사람에게 불쾌한 존재였을까, 내가 정말 살 이유가 없을까, 나는 그동안 계속 불행했을까, 모든 일이 실제로 실패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면 그간 습관처럼 과잉일반화하고 파국화한 막연한 세계와 나의 실제 사건들 간 균열이 생깁니다. 엄밀히 말해 내가 상상한거지 실제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https://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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