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이 Apr 17. 2023

일본 사람들의 깐깐한 골프룰

 멀리건도 오케이도 없는;;

3월 초  남편을 따라 일본 요코하마에 놀러 갔다.

마침 대학원 수업이 없는 목금토일이기도 했고

간 김에 내 친구 이츠코를 만나기 위한 동행이었다.

이츠코는 나와의 시간을 위해  미리  개인 일정을  조율하고 이틀 동안 나랑 무엇을 할지 꼼꼼히 계획을 세웠는데 그중 하루는 골프를 치는 일이었다.

작년에 골프 클럽 회원권을 샀으니 같이 가서 치자고 해서 얼마나 설레고 기뻤는지.

(해외골프는 처음이라서~^^)

그녀의 남편 마사미라운딩에 동참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냈다고 했다.  (우리 남편은 골프를 싫어하기도 하고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빠졌다)


이츠코 부부는 새벽 5시 반에  내가 묵는 호텔 앞으로 데리러 왔다. 도쿄 근교에 사는 그들은  네시에 일어나 네시반에 집에서 떠났을 것이다. 이츠코답게 그 새벽에 많은 간식을 준비해 와서 가는 내내 먹고  마셨다.


일본의 회원제 골프클럽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라운딩 전에  연습을 하자해서  '굳이?' 하며 따라갔는데 미국에서나 봤던 필드연습장이었다. 첫 번째  놀란 포인트.

공 한 바구니를 받아 연습 후  이내 라운딩을 시작했다. 일본도  이상 기온이라 3월 10일경이었는데도

날씨가 따스해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캐디는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캐디, 거리를 물어보면 일본말로  대답해서 이츠코나 마사미에게 또다시 물어봐야 했다 ㅠ


첫 홀이 끝나고 카트를 탔는데 앞에 탄 마사미가 '그레이스 몇 개 쳤어?' 하며 점수 적을 준비를 한다.

두 번째 놀란 포인트!

나는 조금  당황했다. 우리나라에선 캐디언니가 적어주는 게 내 점수다 하고 그저 나는 공만 열심히 치는데...   여러 번 치니 몇 갠지도 오락가락해서

글쎄~ 보기?라고 수줍게 얘기했더니 한마디 안 하던  할머니 캐디께서 더블 보기란다. (언제 내 걸 세고 있었대?))



물론 이츠코점수가 내 뒤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너무 창피했다.


뿐만이 아니다.  세 번째 놀란 포인트는 멀리건을 전혀 쓰지 않는 점이었다.

  드라이버에서 실수해도 모두들 다시 치지 않았다. 마사미에게 다시 치라했더니 단호하게 괜찮다며 걷길래 이츠코에게 

"네는 멀리건  없어? "물었더니 이츠코가 어깨를 으쓱하며  

 "글쎄 말이야 우리  미국에선 했잖아? 근데 여기선 멀리건  쓰는 사람이 없더라~~"

말인즉슨 나도 멀리건을 쓸 수 없다는  얘기가 되는지라 진심 슬펐다.   한국에선 친구들과 셋이 칠 땐 "맘 편히 멀리건을 쓰며 오붓하고 재밌게 치자"고 좋아하는데...(물론 넷이 쳐도 캐디언니 허락하에 멀리건을 이용한다)

다가 벙커에 들어간 공을 턱이 높아 두세 번에 걸쳐 겨우 빼는 것도 싹 다 세서 플러스 2~3점을 보태 점수에 올렸다.

와!! 무서웠다!

내가 이츠코보다 앞선 이유가 재수 없이 자꾸 어려운 벙커에 공이 빠진 이츠코 덕분?이었다.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끼리 치면서 지나치게 엄격한 스코어 관리 즐겁자고 공치는 내게는 부담스러웠다.  


놀란 일은  있다.

그린 위에 오르면 캐디가 공을 닦고 방향을  봐주는데 여기선 공을 닦아 그린에 도로 놔주기만 할 뿐 방향은  플레이어가 직접 본다. 그것도 우리처럼 쭈그리고 앉아 그린의 높낮이 등 모든 것을   계산하고 치밀하게 고민하는 게 아니라 공칠 때 에이밍하듯이 옆으로 서서 대충 눈대중으로 보고 퍼팅을 했다.

그런데도 쏙쏙 나이스퍼팅을 할 때가 많더라.

 놀라운 중에 그나마 맘에 드는 룰이었다.

캐디언니가 봐주는 대로 친다고 공이 들어가지도 않고 그린  위에서의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님 텀을 길게 두는 덕분인지 라운딩 내내 앞뒤 팀을 보지 않고 쫓김 없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인홀을 돌고 무려 한 시간 반가량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몸풀기부터 새로  해야 하나 할 정도로 긴 시간.

점심을 먹고 충분히 쉬다가 다음 나인홀을 준비했다. 이츠코에게 우리나라는 길어야 20분 보통 15분 내외라 말하자 이츠코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는 서로의 골프 문화를 이야기하며 진짜? 정말?  놀라기 바빴다.

기요가와 cc에서 이츠코 부부와~^^

스코어에 대한 엄격한 원칙을 지켜가면서도

라운딩  분위기는  편안하고 명랑했다. 

공이 비슷한 곳으로 가면

"그레이스 할 말 있구나."라든가 같이 망하면

 "내 세계로 온 걸 환영해"라든지  우리가 흔히 나누는 농담은 비슷해서 친근했다.

마사미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어느 누구도 망친 플레이에 대해 자학을 하거나

탓을 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고 어이없는 누군가의 실수에도 조롱하거나 훈수를 두지 않았다.

원칙은  프로처럼 지켰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며 즐겁게 쳤다.


휴식시간 포함해  5시간 반이 넘는 플레이를 즐겁게 마치고 마사미에게 점수표도 받았다.  센스 있게도  각자의   점수표  종이따로 나눠줬다.

아마도 그는 90대 초반일 것이고 이츠코와 나는

도긴개긴이었다. (여기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이라면 90대 반일 점수라고 믿는다^^)


조작없는 점수치곤 잘 쳤다고 칭찬받았다( 골프 접은 남편과 내 친구들에게~^^)

피곤한 몸을 풀기 위해 사우나에 갔는데 오로지 이츠코와 나 둘 뿐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원래 남자만 가입이 가능한 클럽이었지만 여자도 받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 여자 골퍼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매우 보수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글보글 뜨끈한 탕 속에서 이츠코와 수다를 떨고 나니 피곤함이 싸악 가셨다.


해외에서 일본인 친구들과의 첫 라운딩 경험은 기대보다 훨씬 특별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또한 일본인들의 골프룰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이 투영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추어로서 골프를 즐기는 어떤 방식이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역시 하나뿐이란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멤버!!!


요코하마의 밤




작가의 이전글 인연 맛집 브런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