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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May 12. 2023

여전히 쿠키와 크림이의 집입니다.

내 고양이 크림이가 별이 되었지만요.

21년 2월,  갑자기 쿠키엄마에서 쿠키앤크림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도 있어 고양이"

크림이가 온 뒤로 나는 항상 웃음이 났던 것 같다.

우리 집엔 다이아몬드( 쿠키)도 있지만 루비나 블루사파이어도 있지롱.  은근히 부자가 된

그런 느낌이랄까.


한 마리 작은  하얀 고양이가 왔을 뿐인데, 집  구석구석이 그 녀석의 발걸음 닿는 곳마다 불이 켜지는 듯  환해졌다. 쿠키 하나로  즐겁고 행복했는데 그 행복이 몇 배가 되었다

고양이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바깥나들이를 좋아하던 내가  집순이가 되어갔다.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 두렵기까지 한

행복이었다.

크림이를 파양한 사람 복 받아라,  제일 혐오하는 동물 파양자에게도 고마웠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큰

행복과 축복 하나를 모르고 사는 것 같아 측은했다.

집에서 두 아이와 뒹굴거리며 이들 사진을 찍으며  나는 스스로가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틈만나면 크림이와 사진을 찍고
쿠키와크림이를 찍고 또 찍고


그런데 지난 2월, 두 달 반전부터 하루아침에 나는 최고로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크림이의 만성 신부전 진단.

20년 8월에  태어나 이제 겨우  두 살 반,

사람나이로 팔팔한 20대인 애기 고양이가 걸릴 병이 아니었다.

 품종묘의 비극 ㅡ비실비실하고 약한 유전자 ㅡ이 크림이를 쓰러뜨렸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선천적으로 신장이 약해서 살려는 몸부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물이라면 질색하는 고양이들의 일반적인 특성과 달리 애기 때부터 유난히 물을 좋아하고

 잘 마셔서 더군다나 걱정이 없던 냥이 었다.

발톱하나 세울 줄을 모르고 하악질 한번 안 하고

쿠키와도 잘 지내던 여배우같이 이쁘고 이쁘고

이쁜 크림이었다.


신부전으로 길면 5년 짧으면 1년 안에  별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매일 울고 절망했다.  

아직은 멀쩡한?아니 멀쩡해 보이는 고양이를 보면서도  마음이 무너졌다. 신장이식이 가능하면 내 신장 하나도 기꺼이 주고 싶었다.

매일매일 고양이 카페에 들어가 신부전 정보에 집착하고 결국은  크림이의  하루하루가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하면서 나 역시 죽어가는 것 같았다. 캘린더에 잡힌 일정들로 집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 내 목을 조르기도 했다. 대학원도 휴학하고 싶었고 약속들도 다 취소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젤 부러운 사람은

돈많은 사람도,  팔자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오로지 열살 넘은, 잔병치레나  하는  노묘를

기르는 집사들이었다.


크림이의 상태에 따라 울고 웃고 업다운이 반복되면서 팔이랑 손가락이 저리는

디스크  증상이 왔고

  하루는 허리가 어서 눕는 바람에 이웃동생이

약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마음이 무너지니 몸도 이상이 생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꾸역꾸역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하지만 모든 일이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다.

나머지 시간엔 집에만 있으려 최선을 다했고 또 집에서 크림이를 보고 있는 시간이 젤 편했다.

불과 두어달전인데.


그럼에도 크림이는 조금씩 나빠졌다.  

언니나 수의사선생님도 모르는걸 나는 알 수 있었을까.  그래서 정신이 그렇게 피폐해지고 몸이 망가질 만큼 슬펐던 것일까? 하루하루  크림이의 행동과 눈빛, 야옹 하는 울음소리  하나하나에서 외면하고픈 사실이 감지된 것도 같다.  미세한 변화에

자꾸 눈물이 쏟아져 맨날 수시로 우니까

늘 부은 눈으로 다녔다.

항상 그늘진 얼굴로 크림이 얘기만 하니까

주위사람들도 지쳤을 것이다.  인간관계... 끊어지면 말지 뭐.  그런 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매일 크림이가 먹은 약들과  밥양 대소변 등

강일지를 썼다.  

약은 더 늘었다. 매일 약 먹이고 몸무게를 재보고 밥을 먹이며 일희일비했다.

크림이에게 캡슐약먹이는 것도 식은 죽 먹기가 되었는데 ,  아이가 구토도 별로 하지 않고 대소변도 잘 봐서 다행이었지만  먹는 양이 적어선지

야위어갔다.

4월은 그럭저럭 잘 넘어가는듯 했는데.


4월 말경부터 눈에 띄게  활력이 떨어지고  

그러면 또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병원에 데리고 가서 대사 주사 마늘주사를  맞히기도 하고 선생님을  졸라 정맥주사로 수액을 서너 시간씩 놔줬다.

내맘 편하자고 발버둥치는 크림이를 잡아다가

병원을 다녔다. 아니 그래야 오래 살줄 알았다...

신부전  진행을 더디게 하는 일은 크레메진 아조딜 등의 여러 가지 약들과 수액 요법 그리고 무엇보다

크림이의 체력이었지만  생긴 대로 노는 크림이는

입이 짧은 날씬한 고양이었다.

고양이 카페에서 신부전 간병을 하는 베테랑 엄마들의 간병기를 참조하며 종류별로

 사료와 츄르와 캔으로 된 간식을  사먹이고  

 신장에 특화된 간식과 영양제를

해외직구로  잔뜩 구입했다.

 뜯지도 않은 영양제와 간식들이 쌓이는 것을 보며 나는  문득,  우리  크림이가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이 영양제들과 사료들을 다 먹을 때까지만이라도  살았으면 했다.  


별나라로 떠나기 일주일 전인가,

약을 간신히 먹이고 아이도 힘이 좀 없는 것 같아 닭죽을 해서 주었는데도 안 먹었다.

학교도 가야하고 그날은 30분  분량의 과제발표

날이라  크림이에게 지치고 짜증도  났다.

이렇게 안먹어서 어쩔거냐고

화도 냈는데...지금도 목에 가시가 걸린 것같이

따끔거린다...너무 미안해.


병원에 다녀왔는 데도 상태가 신통치 않았다.

 병원에  다녀 오면  좀  쉬다가 이튿날부턴 밥도

 곧잘 먹고 놀기도 했는데  

크림이는 내 곁에도 오지 않고 식탁 및 방석이나

거실에 깔아준 담요 위에

식빵 굽기를 하며  앉아만 있었다.  

불길했다.

홈캠도 사서 마루와 부엌이  보이게 설치하고 방에있으면서도  수시로 홈캠을 보며  크림이를

주시했다.

주로 식탁및 방석에만 앉아 있었다....내껌딱지였는데 ㅠ 고양이는 너무 아플땐  숨어있는다.
침대에 데려다놓으면 잠만 잤다...우리애기 티도 안내고 얼마나 아팠을까.

결국  너무 힘이 없는 크림이를 보는 일이 무서워

 또 병원행. 변이 배에 가득 차있어 관장을 해서

변도 시원하게 빼내고  수액도  맞고

한 달 치 크레메진을 받아 집에 왔는데  

이상하게 아이 활력이 전혀 없고 마른 몸으로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의사선생님은 빈혈주사도 놔주며 빈혈이 심하니

육회라도 사서 먹이라고 하셨다.

무조건 뭐든 먹는 게 사는 일이라고.


육회를 사서 사료랑 으깨 조금 먹이다가 학교에 갔다.  다녀와서도 힘없이 웅크린  크림이를 따라다니며 각종 먹이를 권하느라  나도 녹초가 됐다.

우리 크림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억지로 먹는 일보다 역인 일은 없는데.


아이는  밤새 잠을 못 자고 온 집안을 비틀거리며 다녔다.  픽쓰러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야옹 하며 고통스럽다고도 말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이렇게 보낼수는 없었.

그런 크림이를 따라 날밤을 새면서  밥을, 물을

조금씩 먹였다ㅠㅠ  

먹으면 기운을 차리겠지 생각했다.

힘없이 싫다고  야옹 거리면서도 억지로 입을 벌리면 꿀떡꿀떡 순하게 받아먹었던 내 아기.

몇 시간 후 토해버렸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지금도 가슴이 찢어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응급실에 가서 여러가지 처치를 했지만 네 시간만에  끝내.


어린 아기가 그 약들을 먹으면서 수액도 계속  맞았는 신부전 진행이 이리 빠른 건 아마도

자가면역성 신장질환이었을 거라고  

의사도 안타까워했다.

"많이 아팠을 텐데  아마 크림이가 보호자님과

더 지내고 싶어서... 티를 잘 안냈나  봅니다..."

그 말에 풀썩 주저 앉고 말았다.


의식이 없는 두 살 반 애기 크림이는  그렇게 내 손을 잡고  배웅을 받으며 안락사를 통해  별이

되었다.  

8월에 만 세 살이 되면 정말 큰 생일파티를 해주고 싶었는데.

먼길 떠나기엔 너무 아가라 애통함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크림아 너무 미안해.  생각해보니  작년에 널 두고 너무 많이 집을 비웠어... 물론 이모가 엄마만큼 사랑해 줬지만  어쨌든 너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잠든 크림이는 평온해 보였고 병원의 배려로 나는 오래도록 크림이와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크림이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내내 내 품에서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며 잠들어  있었다.


집에 돌아올 줄 알고 응급실로 갔는데 그 길로

장례식까지 치르다니... 골프 치던 언니도 채를 내던지고 중간에 달려와 오열했다.  

엄마와 이모,  우리 크림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던 두 사람이 함께 했으니

크림이는 웃으며 떠났을까.

부디 그랬길 바란다.

크림이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크림이의 유골함을 들고 오니 저녁이다.

쿠키가  크림이만 데리고 어디 갔다 왔냐고 묻는다.

크림이는 이제 없어,  쿠키야.

크림이의 사진과 유골함을,  크림이가 비비고 좋아했던 성모 마리아상과  항상 맛있게  먹던  츄르와  제일 좋아했던 장난감과 함께 두었다


마루엔 여기저기  어질러진 크림이의

밥그릇들이 있고

비벼놓은 각종 음식이 말라붙어 있다.

그리고  물컵들,

깨끗한 물을 담아 다시 두고 잘먹던 사료를

접시에 새로 담아 두었다.

부엌과 마루, 안방 곳곳에 크림이가 앉던 캣타워와 방석과 담요들도 잘 깔아두었다.

그리고 크림이  사료들과 화장실, 숨숨집이 있는  크림이의 방과

크림이의 감자와 맛동산을 담아둔

쓰레기봉투까지.

당분간 치울 생각은 없다.  

어디선가 야옹~하며 나올 것만 같은데.




새벽에 눈을 뜨니 마루의 카메라에 움직임이 감지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있다.  

쿠키는 내 옆에 있었는데 혹시 우리 크림이가

 왔다 갔을까. 

자주 놀러와 우리애기.

우리 집은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쿠키와 크림이의 집이니까.


나중에 꼭 만나 골골송 들려줘.


PS  우리 크림이의 갑작스런  슬픈소식에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보내준 가족들 특히 우리 언니, 오빠,  내  친구들과 BY팀 언니들 그리고

대학원선생님들  

나에게 시달렸던?  수의사선생님

마지막으로 카톡으로 온갖 정보를 다주시고 우리 크림이를 내 고양이처럼 응원해주시고 슬퍼해주신

 싸리 작가님.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가 있어서 최고로 행복한 2년이었어.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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