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라도봄 Oct 31. 2024

남편과 첫사랑을 만나고 오다.

그와 결혼하지 않아 아직도 그가 좋은 거겠지

그를 처음 만난 건

29년 전 고2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이었다.

'너의 마음 그대로 내게 와.'라는

달디단 말에 홀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듯

그에게 빠져버렸다.

그때 나이. 나는 열여덟, 그는 스물둘.

(요즘 나이인 만으로는 열여섯, 스물이었다.)


모든 게 운명 같았다.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에.

그의 생일이 2월 28일이고

내 음력생일이 2월 28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치가 반가운 것이 사랑 아닌가.

아니 어쩌면 억지로 끼워 맞춰서라도

운명으로 느끼고 싶은 게 사랑이니까.

그가 다니고 있던 대학의 지하철역이

또 2호선의 28번 역이라.

이 라임을 맞춰보겠다고 독서실 책상에 228을 써놓고

발버둥 쳤지만 그와 동문이 되지는 못했다.


'익숙해진 손짓과 앙금같은 미소'라는 그의 워딩에

독서실 휴게실에서 친구와 한참을

이 남자의 감성과 표현력에 감탄을 했더랬다.

중3 때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삶의 여성학'의 저자가 그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더더욱 그분의 며느리가 되기를 기도했지만

인연의 끈은 그리 쉽게 닿지 않았다.


그는 나를 '아직' 모르고

일상에서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라도 있는 듯 그는 노래했다.

좋은 사람이 좋은 마음을 내어주었는데

내 마음이 그를 받아들이지 못해 마음이 아픈 날엔

'해가 지고 별이 뜨고

긴 바람이 울어대면

그때라도 내 생각해줄래

난 정말 미안해.'

라고 내 마음을 헤아려 주었고

이 길이 맞나 싶으면서도 포기하기 힘든 때엔

'언제고 떨쳐낼 수 없는 꿈이라면

쏟아지는 폭풍을 거슬러 달리자.'라며

내 꿈을 지지해 줬다.


결혼을 포기해야 하나 싶을 즈음

괜찮은 사람을 만나 안도하던 그때엔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라며 같이 결혼 준비를 했다.


그가 결혼하고 넉 달 후에 내가 결혼했고

그가 첫째를 낳고 두 달 후에 나도 첫째를 낳고

그가 둘째를 낳고 일주일 후에 나도 둘째를 낳았다.


이적과, 우연이지만 비슷한 삶의 궤적.

(나는 기 씨니깐 필명을 기적으로 할 걸 그랬나.)

그렇게 서로 다른 가정을 꾸리고 세월이 흘러 흘러

그가 나를 불렀다. 콘서트를 한다고.

이적의 노래들.


열여덟 고딩은 중2아들 초5 딸을 둔 아줌마가 되었고,

스물둘이었던 신인스타는 중2딸 초5 딸을 둔

쉰이 넘은 아저씨가 되었는데

어찌 된 게 그의 목소리는 더욱 멋지고

가창력은 더더욱 좋아졌다.


신곡이 '술이 싫다'여서 듣고 나오면 행여라도

술이 싫어질까 봐 남편과 2시간 전부터 만나

이탈리안에서 화이트와인 한 병을 가볍게 비우고

살짝 취한 채 콘서트장으로 들어갔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지나온 29년이

콘서트 2시간 반에 다 녹고 스며들어서

그 두 시간 반을 진짜로 울고 웃었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던 이적노래들은

나의 29년을 쓰다듬어 주었고,

그리운 카니발 시절이 재현된 그 순간엔

1997년 스무 살의 심장이 다녀갔다.

대단히, 너무, 심히, 더없이, 아주, 엄청 등

어떤 말을 붙여도 다 표현이 안될 만큼

좋아서 또  그리워서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김동률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번져 사람을 적시는 듯한 목소리라면

이적의 목소리는

밀도감이 있게 뻗어나가는 목소리여서

말로만 설명하면 둘의 듀엣은 어울리지 않을 것도 같다.

그러나 이 둘의 목소리는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인 듯한 느낌이랄까.


교환학생을 가는 해에도 다 짊어지고 간 그의 CD들.

이제는 유튜브에 검색만 하면 언제나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지만 콘서트장에서 듣는 음악은

분명, 살아있는 그 무엇이었다.


가수와 관객이 '공연(公演)으로

한 '공간(空間)'에서 '공명(共鳴)'한다는 것은

분명 소리와 진동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그것은 음악과 울림을 넘어선 그 무엇이었다.

눈부셨던 순간, 설레었던 날, 벅차게 충만했던 시간도

쓸쓸했던 순간, 버거웠던 날, 고단했던 시간도

그리워서 애틋해서 처량해서 서러워서

그리고 또 아름다워서,

표현 못할 수많은 감정이 노래에 다 녹아

눈물과 웃음과 환호로 범벅이 되었다.


나에게 설렘이고 위로였던

노래들로 지난 29년의 시간을 추억하고

또 그 시간 자체가 또 하나의 추억이 되는 감동.


결혼 17년 차 아줌마의 뻔뻔함인지

어머님의 아들을 내 아들처럼 키워온 내공인지 모르지만

남편이 바로 옆에 있어도

저 남자가 내 첫사랑이다 당당히 밝히고

돌고래처럼 소리 지르며 나 혼자 했던 첫사랑을 추억했다.


이적의 '노래'라는 노래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노래는 소리칠 수 있게 해 줬고

노래는 울어도 괜찮다 해줬고

노래는 꿈을 꿀 수 있게 해 줬고

노래는 다시 힘을 내게 해줬고

이번 콘서트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가사를 한 줄 추가하라고 한다면

"노래는 남편도 예뻐 보이게 해 줬고"

남편이 설레지 않는 이유는 남편과 17년을 살아서이고

그가 여전히 멋진 이유는 그와 결혼하지 않아서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수채화, 35년 전 나를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